카지노 앵벌이 작가 김완 "유튜버로 진짜 앵벌이 모습 보여줄 것"
'카지노 앵벌이', 은둔 생활 14년 접고 '유튜버'로 컴백
[홍춘봉 기자(=정선)(casinohong@naver.com)]
'오방TV' 김완(52)씨는 “강원랜드 앵벌이의 일상을 고백한 ‘카지노 앵벌이의 하루’를 출간한 뒤 천당과 지옥을 넘나드는 험난한 여정을 거쳐 유튜버로 새롭게 출발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 2007년 2월 ‘카지노 앵벌이의 하루’라는 소설을 출간해 카지노 노숙자에서 하루아침에 인기 작가와 유명인으로 강원랜드 주변을 ‘평정’했었다.
▲오방TV 유튜버 김완씨가 최근 자신이 쓴 '카지노 앵벌이 하루' 1, 2권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프레시안(홍춘봉)당시 책 서문에 기록한 김씨의 솔직 담백한 표현은 강원랜드 고객과 앵벌이들에게 뜨거운 공감을 받기에 충분하다는 평가를 들었다.
“나는 강원랜드 앵벌이다. 알뜰살뜰 모은 돈에다 빚까지 내어 생돈 11억을 날리고, 아직도 대박에 대한 미련을 접지 못하고 카지노 주변을 맴돌고 있다. 사람들은 나를 인생의 패배자로, 도박중독증 환자로 여긴다. 이 책은 내가 카지노에서 직접 모고 듣고 겪은 것들을 있는 그대로 써내려간, 차마 부끄러워 누구에게도 밝히지 못한 나의 이야기다.
카지노에서는 한순간의 선택에 따라 승자와 패자로 갈리고, 모든 가치가 결정된다. 그리고 다양한 만남과 이별,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 그 현장을 생활터전으로 삼아 살아가는 카지노 앵벌이의 하루는 분명 우리 시대의 또 다른 자화상이다......!”
14년을 방황하며 심지어 잠적 소문까지 났던 김씨가 유튜버로 컴백해 예정보다 활발한 ‘오방이’의 모습을 온라인 카페와 종이 지면대신 유튜브 방송으로 종횡무진 활동하고 있다.
그는 “각별한 인연을 맺은 홍춘봉 기자와 꼭 만나고 싶었다”며 “강친닷컴에서 인연을 맺고 책 출간기사를 소개한 이후 제가 마카오 바다에 수장되었다는 기사에 이어 유튜버까지 15년의 인연”이라고 회상했다.
이어 “할 말이 너무 많았는데 강원랜드가 재개장 했다고 해서 겸사겸사 온 것”이라며 “20년 가까이 허송세월을 보낸 것이 아닌지 두렵기도 했는데 많은 분들이 성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아 유튜버로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최근 강원랜드 인근에서 ‘진짜’ 카지노 앵벌이 김완(필명)씨를 만났다.
-카지노 앵벌이의 하루 출간 이후 14년의 세월이 흘렀다.
“2007년 2월 책이 출간된 이후 3개월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바쁘고 행복한 시간들로 기억된다. 카지노 앵벌이의 실화소설이 언론에 보도된 뒤 SBS 8시 메인뉴스에 소개되면서 난리가 났다. 매일 한 두 곳의 언론에서 인터뷰 일정이 끊이지 않고 주간지 연재에 이어 여성지에도 인터뷰가 실렸다.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에서 카지노 앵벌이가 상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영화사에서 영화를 찍자는 연락까지 왔는데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기분이었다. 심지어 국회의원이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달라는 요청까지 왔다. 국정감사에서 강원랜드의 문제점을 앵벌이 주인공을 내세워 따지겠다는 것인데 이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당시 책 출간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책 서문에서 나는 이렇게 읊조렸다. ‘처음부터 앵벌이는 없었다! 앵벌이는 누구나 될 수 있다!’는 말처럼, 앵벌이들 역시 거액의 재산을 탕진하고 사회로 돌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된 사람들이다. 나 ‘오링방지’ 역시 그 중 한 사람이다. 카지노에서 전 재산을 탕진하고 강원랜드에 출근해 살아가는 앵벌이 표현은 당사자들이 듣기는 거북하지만 그렇게 불려졌다. 그러나 대중적이지는 않았다. 강원랜드에 출근하면 하루에 노랭이(10만 원칩)1개 이상은 벌 수 있는 앵벌이들은 당시 수천명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방이(김완) 역시 강원랜드에서 전 재산을 날리고 ‘강친닷컴’에 아무 생각도 없이 내가 경험한 이야기를 연재했다. 연재가 계속되자 강친닷컴과 바카라 군단 등 온라인에서 카지노앵벌이 이야기가 큰 화제가 되었다. 출판사에서 소문을 듣고 책을 내자는 제안이 왔다. 처음에는 거절했는데 본명 대신 필명과 오방이의 사진 및 프로필을 내지 않는 조건으로 책을 내기로 했다.
제목도 ‘카지노 앵벌이’를 살려 ‘카지노 앵벌이의 고백’, ‘카지노앵벌이의 하루’, ‘카지노 앵벌이의 독백’등으로 가자고 했다. 내가 강친닷컴에 올린 글이 맞춤법도 틀리고 문학적이지 않지만 상업적인 흥행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회적 이슈로 제목 자체로 먹힐 수 있다는 것이다.
-책 출간으로 돈을 좀 벌었다는 소문도 돌았다.
“내가 알리로는 5만 부 이상의 책이 팔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후 출판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최초 계약금 670만 원을 받은 것이 전부였다. 나중에 책이 많이 팔리면 인세를 받기로 했는데 출판사가 망해 더 이상 받지 못했다. 이후 다른 출판사에서 판권을 산 것인지 ‘어느 카지노 앵벌이 하루’라는 제목으로 바꾸어 팔리고 있더라. 내가 쓴 책은 최근까지도 마카오 민박집이나 고한 사북의 찜질방에서 하도 많은 사람들이 책을 봐서인지 너널 너덜 해져 있더라.”
-카지노 앵벌이 영화는 어떻게 되었나.
“카지노 앵벌이 하루 책자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자 영화사에서 연락이 왔다. 영화로 찍을텐데 판권을 계약하자는 것이었다. 계약금 1500만 원을 받기로 했는데 먼저 선수금으로 300만 원을 받았다. 그런데 영화사가 촬영에 들어가면 나머지 1200만 원과 영화가 극장에 걸리면 추가로 판권을 받기로 했는데 투자자 모집 실패로 영화제작도 실패했다. 그 영화사와 판권 계약 후 얼마 뒤 다른 영화사에서 계약하자고 연락이 왔는데 이미 계약했다고 아쉬워하더라. 영세한 영화사가 판권을 가져가는 바람에 출판사와 마찬가지로 좋다가 말았다.”
-책 출간이후 인기가 급상승하면서 여러 제안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 당시 강원랜드 주변에서 인기가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았다. 사북의 전당포 주인이 찾아와 ‘오방 전당사’ 간판을 내걸고 동업하자는 제안이 가장 먼저 들어왔다. 카지노 앵벌이 주인공이 하는 전당포는 고객들에게 신뢰를 얻어 많은 손님들이 찾아올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오방이 식당’을 하면 손님이 많을 것이라며 찾아왔고 마카오에서 민박집을 하자는 사람까지 줄을 이었다.”
-전당포와 식당 제안은 거절하고 마카오로 간 것인가.
“당시 마카오는 샌즈와 윈 등이 개장하고 베네시안이 개장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강원랜드 VIP 고객들이 마카오 원정을 나가면 한 번에 수억씩 베팅할 정도로 물이 좋았다. 2007년 당시 마카오는 한국인들에게 ‘기회의 땅’이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카지노를 강원랜드에서 처음 경험한 나는 강원랜드가 엄청 규모가 큰 줄 알았다.
그런데 마카오의 모든 카지노들은 강원랜드보다 훨씬 컸다. 샌즈의 경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수백대의 게임 테이블이 끝없이 펼쳐지고 라이브 음악과 화려한 조명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역시 마카오는 카지노 왕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당시 마카오에서 ‘대통령’으로 불리던 이건주에게 측근들이 ‘저 친구가 카지노 앵벌이 쓴 작가’라고 소개하자 이건주가 ‘저 친구 도와줄 일이 있으면 도와주라’는 말까지 하더라.”
-그런데 마카오 생활을 바로 청산하고 귀국했다.
“강친 닷컴에서 만난 분과 민박집 동업을 위해 마카오에 왔다가 돈 사고에 말리면서 동업자에게 910만 원 정도의 손실을 입히는 일이 생겼다. 사업 시작도 전에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고 서로 오해 아닌 오해가 만들어져 오방이가 돈 몇 푼에 나쁜 이미지가 만들어질지 우려돼 마카오를 뜬 것이다. 사실 배신감도 들었고 나를 나쁜 사람처럼 대하는 태도에 정말 화가 났다.
나중에 소문에는 몇 천만 원 배달사고를 냈다느니, 베팅으로 돈을 날렸느니 하는 가짜 뉴스가 떠돌기도 했다. 근거도 없는 소문이 많았는데 홍춘봉 기자가 2014년 ‘앵벌이 작가, 마카오에서 고깃밥이 되다’라는 기사를 보고 차라리 속이 편했다. 나에 대한 온갖 억측과 루머가 떠돌았는데 그 주인공이 마카오에서 죽었다는 기사가 나갔으니 이제 다시는 그런 썰이 나돌지 않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귀국 후 어떻게 살았나.
“마카오에서 귀국한 뒤 다시 강원랜드에 출입하고 사설 카지노바에도 다녔다. 카지노앵벌이는 다 알려졌지만 내 얼굴이 노출되지 않고 본명도 모르기 때문에 한동안 편하게 강원랜드에 다시 출입한 것이다. 서울의 카바에 출입하다가 문방(문지기)으로 취업해 고객을 받았는데 능력을 인정받아 고객을 유치하는 에이전시로 승진했다.
이어 딜러들을 감독하는 핏보스까지 승진했는데 지분 수천만 원을 투자했다가 다 날렸다. 그것도 모자라 재수에 옴 붙었는지 경찰에 검거돼 도박전과 2범이 되었다. 강원랜드와 마카오 다니면서 도박전과가 없었는데 그놈의 카빠 때문에 전과자가 된 셈이다. 코로나 사태이후 서울에서 카빠와 홀덤바가 성업하고 있다. 물론 불법 온라인 카지노를 찾는 도박중독자가 훨씬 많은 편이다.”
-지난 2019년에는 큰 시련을 겪었다고 들었다.
“은둔의 세월을 보내던 2019년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다. 다행히 생명은 건졌지만 우울증이 찾아오고 삶의 회의가 나타났다. 카지노 게임에 대한 설렘과 흥분이 싹 사라졌다. 병원생활 이후 신기하게 없어진 것이다. 젊어서 너무 오랜 시간 도박에 젖어 살았다. 미리 이런 일이 찾아왔으면 덜 방황하고 빨리 정착했을 것인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책을 내고 잠시 행복했지만 냉혹한 현실에서 마카오, 강원랜드, 사설 카빠를 다니면서 세월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오방TV' 김완씨가 최근 강원랜드 인근에서 유튜뷰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프레시안(홍춘봉)-유튜버로 전업한 동기도 궁금하다.
“유튜버로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는데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은둔의 카지노 앵벌이 작가가 얼굴을 팔며 방송을 하는 일이 두려웠다. 어차피 카지노 앵벌이 작가로 알려진 마당에 앵벌이 생활을 중심으로 내가 경험한 카지노 이야기를 유튜브 방송으로 내보내는 것이라면 해볼만 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남들은 사실을 왜곡하고 포장해 썰을 푼다고 하지만 오직 팩트와 경험을 이야기하자는 생각이다.
마카오에서 귀국 후 강원랜드에 갔다가 흡연실에서 만난 사람들이 카지노 앵벌이 작가에게 돈을 수백만 원 빌려줬으니, 내가 밥과 술을 사줬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주인공을 앞에 두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니 웃음밖에 더 나겠는가. 지금 유튜브 방송 4개월째를 맞고 있는데 나에게 돈 빌려준 사람이 있다면 벌써 연락이 왔을 것인데 한 명도 없다. 나는 방송에서 진실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내보내고 있다.
가장 솔직하고 공감 받는 이야기 때문에 방송을 시작하면 동시 접속자가 300명 이상에 달한다. 또 사설 카빠와 온라인 카지노에서 광고 유혹의 손길도 오지만 이미지가 구겨질까봐 응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15년간 쌓아온 카지노 앵벌이 작가 이미지를 돈 몇 푼에 추락하고 싶지 않다. 솔직히 유혹을 뿌리치기 쉽지가 않지만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면 단명하기 때문이다.”
서울 동대문시장에서 의류점으로 성공했던 카지노 앵벌이 작가 김완은 어느 날 친구를 따라 강원랜드에 왔다가 순식간에 9억 원을 날린 뒤 본전을 찾기 위해 도박중독자가 되었다가 결국 카지노 노숙자로 전락했다.
그는 “눈을 뜬 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PC방에 달려가 강원랜드나 사우나, 찜질방 등에서 있었던 체험담, 심지어 마카오에서 경험했던 이야기를 올린 것이 카지노 앵벌이의 하루였다. 댓글이 수백 개씩 달리며 응원하는 바람에 신바람이 나서 매일처럼 사연을 올렸다. 강원랜드를 경험했거나 앵벌이라면 누구나가 공감하는 내용을 올리니 그처럼 열광한 것이다.”고 2006년 카지노앵벌이 연재 당시의 심정을 덧붙였다.
[홍춘봉 기자(=정선)(casinoho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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