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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서 1000억 탕진한 ‘50대 겜블러의 비극’

보헤미안 0 1705 0 0





강원랜드 VIP룸에서 6년 넘게 겜블러와 ‘꽁지’로 명성을 날린 하진명(가명)씨는 주먹세계와 연예계를 거쳐 카지노에 입문한 ‘마당발’ 인맥으로 유명하다.

그는 DJ정부시절에 국정원장을 지낸 신건 전 원장과는 2005년 여름, 강원랜드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했고 호남출신의 유명 정치인과도 역시 같은 장소에서 라운딩을 할 정도였다.

또 그는 VIP룸 회원 신분으로 출입정지를 당하게 되자 강원랜드 조기송 사장과 면담을 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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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랜드 VIP룸. ⓒ프레시안


청주가 고향인 그는 강원랜드 스몰카지노가 개장하던 2000년도만 해도 재산이 1000억 원에 달하는 지방의 갑부로 떵떵거리면서 살았던 사람이다. 

1970년대 호국청년연합회 중간 간부로 활동하면서 인맥을 다진 그는 연예계로 뛰어든 뒤 사교적인 성품과 호남형의 얼굴에 운동으로 다져진 체력과 빠른 두뇌 회전력으로 코미디언 매니저로도 나섰던 인물이다. 

이런 과정에서 그는 무명의 이주일씨를 만나게 되었고, 그는 이씨가 언젠가는 유명한 코미디언이 될 소질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는 적극 후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당시 서울 외곽지역의 밤무대와 지방 쇼를 따라다니던 이주일씨를 텔레비전과 극장식 나이트에 출연할 수 있도록 도와줄 정도로 물심양면으로 후원했다는 것이 주변의 전언이다.

20년간이나 설움을 받으며 무명시절을 보냈던 이주일씨는 1979년 당시 TBC-TV의 코미디 프로에 출연했다가 ‘수지 큐’ 음악에 맞춰 뒤뚱거리며 걷는 ‘오리 춤’을 추면서 대박을 터뜨렸다. 

이씨가 오리 춤을 추면서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라는 멘트를 날리자 그는 하루아침에 대한민국 최고의 코미디언으로 등극하면서 ‘사람팔자 시간문제’라는 사실을 그대로 입증하였다.

하지만 무명 코미디언 이씨가 하루아침에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로 떠오른 뒤 관계가 소원해지자 하씨는 심한 배신감과 모멸감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화가 치민 그는 이씨를 폭행한 뒤 미국으로 도피했다가 ‘도박의 도시’ 라스베이거스에 거처를 마련하게 된다.  

이곳에서 하씨는 한국의 재벌 2세와 돈 많은 사업가를 카지노에 연결해 주는 에이전시로 활동하는 임상규(가명)와 이석구(가명)를 만났다. 

하씨보다 7, 8년 연상인 이들은 한국에서 인기 연예인을 폭행하고 도피한 그를 잘 챙겨주면서 끈끈한 정을 나누며 형제처럼 가까워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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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라스베이거스 중심지. ⓒ프레시안


라스베이거스의 에이전시로 활동한 임씨와 이씨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를 주름잡은 한국의 ‘7공자’ 가운데 언론사 회장인 조장호(가명)의 현지 카지노 가이드로 활동하였다.

당시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는 한 번에 100만 달러를 베팅할 정도로 한국인 가운데 가장 큰 손으로 알려진 조 회장은 라스베이거스에서 2조원 이상을 탕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역대 한국인 겜블러 가운데 조 회장은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 가장 큰 거액을 베팅했던 인물로 업계 관계자들은 기억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의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던 이모(전 강원랜드 VIP 회원)씨의 증언.

“한국의 유력 언론사 회장인 조 회장은 보통 1주일에 수천만 달러를 카지노에서 베팅을 했던 최고의 VVIP 고객이었다. 카지노 VIP룸에서 일반 VIP 고객들은 보통 수십만 달러를 베팅하지만 조 회장은 한 번에 100만 달러를 베팅하는 큰 손으로 유명했다. 

현지 카지노에서 조 회장이 나타나면 임씨와 이씨는 24시간 수발을 들었다. 베팅으로 돈을 따면 조 회장은 이들에게 1만 달러짜리 칩 여러 개를 팁으로 주었다. 보통 조 회장이 라스베이거스에서 1주일을 체류하는 동안에 이들은 웬만한 사람들의 연봉을 벌었다. 

조 회장이 카지노에서 탕진한 돈이 최소한 2조 원 이상이 되는 것은 당시 해당 언론사 간부들에게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 바람에 해당 언론사는 나중에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조 회장은 한국에서 7공자의 대표 주자로 알려진 인물로 강남 유흥가도 주름잡았다. 이 때문에 라스베이거스에서 임씨 일행은 실력자로 행세할 수 있었고, 뒤늦게 합류한 하씨도 이 덕을 보았다.” 

이런 조회장이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하면 임씨와 이씨는 공항에서부터 카지노 VIP룸까지 24시간 밀착 수행을 하면서 조회장이 돈을 따면 수만 달러에서 10만 달러 이상을 수고비로 받아 챙겼다. 

졸지에 라스베이거스에서 도피생활을 한 하씨는 이들 때문에 카지노 꽁지사업과 에이전시, 정켓업은 물론 카지노 게임을 배우게 되었다. 

그는 나중에 카지노 게임 때문에 자살로 인생을 하직하게 될 줄은 당시로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1980년대 후반에 귀국한 하씨 일행은 속초 설악호텔에 설치된 외국인전용 카지노를 인수해 카지노사업을 펼쳤다. 

그러나 속초 카지노에 외국인 고객들이 썰렁한 사실을 뒤늦게 안 하씨 일행은 워커힐 카지노에서 일본인 야쿠자들의 롤링업을 하는 한국인 에어전시에게 부탁해 일본인 고객들을 속초카지노로 유인하였다. 

이때부터 이들 롤링업자들은 돈 많은 재일교포와 일본인 사업가들을 속초 카지노로 불러들여 카지노 도박을 하도록 하게 하면서 속초설악파크호텔 카지노는 한동안 재미를 보았다.





출처 :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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