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 성생활, 부부 생각 다를 땐 어떻게?
[사진=게티이미지뱅크]사랑은 사람을 치료한다.
사랑을 받은 사람,
사랑하는 사람 할 것 없이 모두
-칼 메닝거(미국의 정신의학자)
필자는 인간 관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암 치료는 우리의 사랑에 어떠한 영향을 줄까? 안타깝게도 많은 환자들이 암을 진단받으면 사랑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나 성생활은 포기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성생활에 대해서는 지극히 개인적으로 다루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고, 특히 생사가 걸려있는 암투병이라는 큰 문제에 '성생활'을 언급하는 것이 어려운 현실이다.
설령 문제가 있어도 누군가가 성생활에 대해 물어보면, 자신의 숨겨진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고 또 의사가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얘기를 꺼리게 된다. 또한 진료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이런 질문을 할 시간적 공간적 여유도 안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실제 암을 겪은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암 진단 후에도 성욕은 지속되거나 오히려 증가할 수도 있다. 실제 배우자나 연인과 이런 상황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하지 못하면 서로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전처럼 사랑을 나눌 수 있을 지, 치료 중이나 치료 후에 정상적인 성생활이 가능할지 걱정이 된다고 한다. 암이 전염되는 것은 아닌지, 암 치료 중에는 항암제나 방사선 등이 파트너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치거나 부담이 될까 망설이고 피하는 이들도 있다. 암환자 스스로 달라진 건강 상태에 자신감을 잃고, 치료로 인해 생긴 신체적 혹은 정신적인 변화로 성생활이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매일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일처럼 성욕도 자연스러운 인간의 욕구이다.
'암과 부부의 성'이라는 교육과 자료를 제공하는 암교육센터는 성생활과 관련하여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는 곳이다 보니 다른 곳에서는 얘기하지 못하는 다양한 성 고민들을 접하게 된다.
실제 암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20대 젊은 남자 A씨는 성생활에 대한 전화 상담을 요청했다.
"종격동암으로 항암치료를 받았어요. 지금 6개월정도 지났는데 여자친구와 성생활을 해도 되나요?"
성에 대한 욕구가 생기는데 성생활을 하면 내 건강에 무리가 가는 것은 아닌지, 여자친구에게는 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고 했다. 진료 시 묻고 싶었지만 암환자가 그런 걸 물어보냐고 이상하게 쳐다볼까 봐, 입도 떼지 못하고 전화로 물어본다고 했다.
또 다른 60대 남자 폐암 환자는 알고 싶은 것이 있다며 상담을 신청했다. 입을 떼기 어려운 듯 몇 번을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지금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가 끝난 지 3개월이 되었는데 부부관계를 해도 되는지, 혹시 부부관계를 하면 몸에 무리가 돼 암에 안 좋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되어서 물어본다고 했다.
어떤 때에는 보호자가 상담 요청을 하기도 한다. 50대 여성은 조용히 찾아와서 남편이 위암 환자인데, 지금 항암치료 중에 성관계를 원하는데 응해도 되는지 물어봤다. 더욱이 아내는 암 진단 전에는 꽤 오랫동안 각방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남편의 말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실제 암교육센터가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암환자와 배우자의 성생활에 대한 태도나 어려움의 정도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2013~2015년 서울시 3개 대학병원과 한국혈액협회를 통해 조혈모세포이식(골수이식) 환자와 배우자 91쌍을 조사했더니, 정상적인 성생활이 가능한 환자 가운데 절반만이 성생활을 하고 있었다. 환자와 배우자는 각각 성생활에 대한 태도, 느끼는 어려움 등 모든 영역에서 차이가 뚜렷했고, 특히 환자가 느끼는 성생활의 중요도가 배우자보다 높게 나타났는데 4점 만점에 환자들의 평균 점수는 2.57점, 배우자는 2.14점이었다.
특히 주목할만한 부분은 성생활에 대한 중요도와 관련, 부부간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혀 일치하지 않음이 '0'이고 완벽하게 일치함이 '1'이라고 했을 때, 일치도는 0.17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남자환자에게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났는데, 남자(2.81)가 여자(2.07)에 비해 삶에 있어 성생활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남자 환자와 여자 배우자일 때 부부간의 불일치가 더 높았다.
무엇보다 상대방의 거절을 두고 오해의 골이 깊었다.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든지에 대한 질문에 환자의 15.4% 와 배우자의 22.0% 상대방이 꺼려하는 것이 힘들다고 답변했다. 성생활의 방해 주요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엔 환자의 체력저하라고 답한 환자는 46.2%인 반면, 배우자는 37.4%이여서 생각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차이가 생기는 가장 큰 이유는 '대화의 부족' 때문이었는데 성생활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환자의 48.4%, 파트너는 23.1%가 그렇다고 답하였다. 실제로 이 연구에서 의미 있게 나온 결과는 환자와 배우자 모두가 성생활이 중요하다고 생각할수록 정상적인 성생활을 할 가능성이 5.5배 더 높았다는 것이다.
실제 환자들은 암을 진단받았다고 해서 성생활에 대한 중요성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똑같이 중요한 부분이기에 암환자의 성생활에 대해 금기시할 필요가 없다. 물론 항암요법이나 방사선치료, 호르몬요법처럼 적극적인 치료를 하고 있는 중이라면 백혈구 수치의 감소로 인해 감염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에 안전한 성생활이 필요하다.
또한 유방암, 자궁경부암, 전립선암 등은 수술 때문에 외형이나 성기능의 변화가 생기지만 잘 대처하면 된다. 치료 중에도 임신은 가능하지만 선천성 기형을 유발하는 치료가 많아 피임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암은 성생활을 통하여 타인에게 옮는 전염병이 아니며, 성생활이 암의 재발이나 전이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특히 연구결과처럼 암환자의 건강한 성생활을 위해 필요한 것은 상대방과의 의사소통이다. 실제 암교육센터에 상담을 오는 대부분의 환자와 배우자도 서로의 관계에 대해서는 걱정을 하는 반면, 상대방과 의사소통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으며 특히 성생활 관련해서는 서로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따듯한 눈맞춤, 손을 잡거나 등을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일, 자주 안아주고 격려하며 서로를 포용해주는 너그러운 마음까지. 건강하고 만족스러운 성생활도 마찬가지이다. 환자와 파트너 모두가 자신과 서로의 상태와 기분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면서 이해를 구할 필요가 있다. 정상적인 성생활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서로의 애정과 사랑이다. 환자는 치료로 인한 신체, 정신적 성적 변화에 스스로 자괴감을 갖지 않도록 노력하고, 파트너는 대화를 통해 환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때로는 환자가 성욕을 느낄 때까지 기다려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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