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붕 두 단장' 초유 사태…격랑의 국립오페라단
문화예술위 10년 전 사태 재현…혼란 불가피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법원이 윤호근 전 단장의 해임을 취소하고, 면직을 집행정지함에 따라 이르면 9일부터 국립오페라단 초유의 '한 지붕 두 단장' 체제가 시작될 전망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1심 법원의 판정에 불복해 즉시 항고 및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당분간 국립오페라단의 지휘계통 혼선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국립오페라단은 향후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한편, 윤 전 단장의 임시거처를 마련키로 했다.
◇ 예상외의 면직처분 집행정지…문체부 '당혹'
8일 공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제6부(이성용 부장판사)는 지난 6일 서초동 행정법원에서 열린 선고 공판에서 문화체육관광부가 윤 전 단장에게 내린 해임처분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문체부는 자격 요건에 미달한 A씨를 공연기획팀장으로 뽑았다며 지난해 5월 윤 전 단장에게 해임을 통보했고, 윤 전 단장은 이에 반발해 한 달 후인 6월 소송을 제기했는데, 1심 법원이 윤 전 단장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와 함께 윤 전 단장에 대한 면직처분도 집행을 정지하라고 판결했다. 특히 면직처분 집행정지 판결은 문체부로서는 예상외의 일격이었다. 이미 작년 7월 윤 전 단장이 문체부를 상대로 제기한 집행정지 가처분 소송을 법원이 기각했기 때문이다.
문체부는 법원 판결을 지렛대 삼아 공석이던 국립오페라단장 새 수장을 찾는 작업에 돌입했고, 작년 9월 박형식 전 의정부예술의전당 사장을 오페라단장에 임명했다. 하지만 기각된 가처분이 본안 소송에서 되살아나 사실상 인용됐고, '한 지붕 두 수장'이라는 상상하기 싫은 결과가 발생한 것이다.
법원이 가처분 결과를 뒤집고, 윤 전 단장 손을 들어준 것은 문체부가 요청한 핵심 증인이 재판에 참석하지 않은 게 결정적 요인으로 보인다. 문체부는 집행정지에 대해서는 즉시 항고를, 본안 소송에 대해서는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 문체부 산하 기관 '한 지붕 두 수장'…10년 만에 재현
국립오페라단에서 '한 지붕 두 단장' 사태는 처음이지만, 문체부 산하 기관까지 아우르면 약 10년 만이다.
김정헌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은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해임된 뒤 2010년 1월 법원으로부터 해임처분 효력 정지 결정을 받고, 정상 출근해 당시 큰 혼란이 발생했다. 문화예술진흥기금 운용 규정 등 위반으로 해임된 지 1년여만의 복귀였다.
김 전 위원장은 서울고법의 해임처분 효력 정지 취소 결정까지 한 달여간 오광수 당시 위원장과 함께 업무를 봤다. 김 전 위원장은 위원장 권한을 행사해 독자적으로 업무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취했고, 이는 오광수 위원장과의 마찰을 불러왔다. 전·현직 위원장은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까지 함께 참석, 한 지붕 두 수장 사태는 정치적 공방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윤 전 단장도 김 전 위원장처럼 정상 출근하겠다는 입장이다.
윤 전 단장은 "일단 법원에서 출근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안 하면 결근이 된다. 따라서 월요일부터 정상 출근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윤 전 단장이 출근할 뜻이 확고한 만큼 국립오페라단의 '한 지붕 두 단장' 체제는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예술위 때도 2심 법원의 판단이 나오기까지는 한 달 넘게 걸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산으로 4월 초 공연까지 취소한 국립오페라단은 이에 따라 당분간 지휘 계통 혼선으로 혼란이 불가피한 전망이다.
국립오페라단 관계자는 "문체부, 전·현직 단장 등의 상황과 10년 전 예술위 사례 등을 참고해 종합적으로 판단할 것"이라며 "일단 윤 전 단장 사무실을 마련해야 하는데, 임대차 계약까지 하려면 다소 시간이 걸리는 만큼 임시로 쓸 장소를 물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호근 전 국립오페라단장(좌)과 박형식 현 국립오페라단장(우)[연합뉴스 자료사진]
◇ 말도 탈도 많았던 단장 자리…국립오페라단장 수난사
지난 10년간 국립오페라단을 이끈 수장 중 3년 임기를 다 채운 단장은 제8대 이소영 단장(2008.7∼2011.7) 한 명에 불과할 정도로 국립오페라단장은 예술계에서 '단명'의 대명사 같은 자리였다. 이 감독도 재직 당시 국립오페라합창단 해체를 결정해 논란을 빚었고, 허위경력 기재 의혹까지 일었다.
나머지 감독들은 자격 논란 등 다양한 이유로 경질되거나 자진사퇴 형식으로 물러났다.
제9대 김의준 감독(2011.8∼2014.3)은 15년간 LG아트센터 대표로 재직하면서 초대권 폐지와 연간 프로그램 예고제 시행으로 공연계에 새바람을 불어넣은 인물이지만, 예술가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여러 공격에 시달리다가 퇴임을 5개월 앞두고 물러났다.
9개월 공백 끝에 임명된 제10대 한예진 감독(2015.1∼2015.2)은 더 단명했다. 내정 단계부터 성악계에선 전문성과 경륜이 부족한 '낙하산 인사'라며 임명 철회 요구가 빗발쳤다. 이에 한 감독은 "여러 논란 속에 도전적인 의욕보다 좌절감이 크게 앞서 더는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며 불과 53일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제11대 김학민 감독(2015.7∼2017.7)도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작품에 비전문가인 자기 부인을 드라마투르그(공연 전반에 걸쳐 연출가의 의도와 작품 해석을 전달하는 역할)로 참여시킨 사실이 알려지며 구설에 올랐고, 결국 2년 만에 자리를 떠났다.
윤호근 전 단장도 채용 비리에 연루돼 취임한 지 1년 3개월 만에 해임됐다가 소송 끝에 이번에 다시 복귀하게 됐다.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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