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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급한 보이스피싱 SOS에도..."직접 오라"는 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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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 안내
피싱사기 판단 요건 까다로워
지급정지요구 거절 종종 발생
피해자 구제 난항...개선 시급

[서울경제] 40대 직장인 박모씨는 최근 가족을 사칭한 문자메시지 피싱에 속아 한 금융기관에서 6개 기관의 8개 계좌로 돈을 보냈다. 사기임을 깨달은 박씨는 송금한 기관을 통해 8개 계좌에 대한 지급정지를 요청했지만 이 가운데 가장 많은 3개 계좌를 관리하는 기업은행(024110)은 즉시 정지를 거절했다. 은행 측은 “피싱 피해가 맞는지 확실하지 않다”며 피해자가 경찰서에 신고한 뒤 직접 은행에 와서 지급정지를 신청해야 한다고 안내했다. 그때는 이미 오후4시가 넘어 영업점이 문을 닫은 시각이었다. 박씨가 다음날 오전 은행을 방문해 지급정지를 신청했을 때는 이미 1개 계좌에서 피해금이 빠져나간 상태였다. 그는 “똑같은 피해 사실에 대해 기업은행만 유선으로 지급정지가 안 됐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사기범이 이런 점을 악용해 기업은행 계좌를 피싱에 집중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지경”이라고 호소했다.

일부 금융기관이 피싱 사기 피해자의 지급정지 요청을 신속하게 받아들이지 않아 피해 구제에 난항이 되고 있다. 전자통신금융사기 피해방지 특별법에 따라 피해자가 금융사기 의심 계좌에 대해 지급정지를 요청하면 금융기관은 일단 이를 수락하고 추후 사실관계를 확인하도록 돼 있다. 우선 지급정지를 한 뒤 피해자가 3일 안에 경찰이 발급한 사건사고사실확인원을 은행에 제출하도록 하는 식이다. 긴급상황에는 사기범이 돈을 빼가지 못하도록 빠르게 원천 봉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자료: 금융감독원
하지만 현실에서는 박씨의 사례처럼 금융기관들이 지급정지 요청을 받고도 피싱 사기로 보기 어렵다며 거부하는 일이 왕왕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18년에도 기업은행이 피싱 사기를 당한 피해자에 대해 보이스피싱이 아닌 물품대금을 가장한 사기여서 지급정지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거절해 피해금이 빠져나간 사례가 있었다. 같은 해 또 다른 한 피해자는 조건만남을 미끼로 한 사기에 속아 수천만원을 송금했다가 해당 계좌의 지급정지 요청에도 기업은행과 우리은행이 이를 거부했다며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리기도 했다.

금융기관도 딜레마가 있다. 아무리 사기의심계좌라도 지급정지는 중대한 재산권 침해인 만큼 요건을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특별법상 금융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금융기관이 지급정지 요청에 응할 의무는 없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고 이 제도를 악용하는 범죄도 있기 때문에 법에서 정한 요건에 맞는 피싱 사기여야만 은행이 지급정지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피싱 피해가 맞았는데도 금융기관이 지급정지에 응하지 않았다면 배상책임은 해당 기관이 진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관련 빅데이터와 패턴 분석 등을 통해 사기·지급정지 여부를 판단한다”며 “은행이 틀릴 수도 있지만 그 피해에 대해서는 은행이 책임지기 때문에 고객 피해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지급정지 지연으로 돈이 빠져나간 경우 경찰수사가 모두 끝난 뒤 별도 서류를 발급받아 제출해야 피해금을 환급받을 수 있어 피해구제는 늦어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날로 진화하는 피싱범죄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지급정지 활용을 넓혀야 한다고 조언한다. 박용철 서강대 교수는 “계좌 지급정지가 가장 우선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임은 분명하다”며 “(선의의 피해자를 최소화하기 위해) 허위신고자는 무고죄에 준해 엄벌하고 지급정지해제 요건을 완화하는 등 부작용을 예방하는 제도를 함께 도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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