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만에 길거리에서 되찾은 돌솟대 오리상의 기막힌 회수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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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만에 길거리에서 되찾은 돌솟대 오리상의 기막힌 회수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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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도난됐다가 16년만에 회수된 전북 ‘부안 동문안 당산’ 돌오리상. |문화재청 제공
“단속반이죠? 제가 도난당한 돌오리상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는데요.”

지난 2월초 문화재청 문화재 사범 단속반에 한 통의 공중전화가 걸려왔다. 한상진 단속반장은 대번에 감을 잡았다.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마도 돌오리상을 훔쳤거나 혹은 훔치는데 연루됐거나 혹은 도난문화재를 매매하는데 관여한 인물일 가능성이 컸다.

도난문화재가 숨겨져 있던 충북 제천 잣고개 부근의 호돌이상. 절도범들이 사범단속반에 전화를 걸어 돌오리상을 숨겨놓은 위치를 알려주었다.|문화재 사범단속반 제공
화강석을 거칠게 다듬어 조각한 59㎝×20㎝ 크기의 돌오리상은 전북 부안군 동중리의 돌기둥(돌로 만든 솟대) 위에 놓여있던 것이다. 돌오리상을 얹은 돌기둥은 마을 밖으로부터 부정한 것의 침입을 막고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의미로 세워졌다. 이 돌기둥을 중심으로 동쪽 50여m 지점에 당산나무가 있고, 그 사잇길 양쪽에 한 쌍의 돌장승이 마주보고 서있다. 돌장승 1쌍은 할아버지 장승 및 할머니 장승과 함께 세트로 이뤄졌다. 이렇게 오리상을 얹은 돌기둥과 돌장승 1쌍으로 구성된 ‘부안 동문안 당산’은 이 지역 민속신앙의 대상이다. 부안읍성에는 동문 말고도 서문과 남문에도 당산이 세워져 있는데 서문 당산(국가민속문화재 제18호)에는 ‘강희 28년(1689년)’이라는 명문이 있다. 전문가들은 동문안 당산도 같은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고 있다. 

호돌이 상 옆에 숨겨놓은 돌오리상. |문화재청 문화재사범 단속반 제공
부안 동문안 마을에서는 1990년까지 해마다 음력 정월보름에 당산제를 지냈다. 새끼를 꼬아 만든 동아줄로 줄다리기를 한 다음 그 줄을 돌기둥에 감아 놓은 후 제를 올린다. 동아줄을 돌기둥에 감는 것을 ‘옷입힌다’고 한다. 마을 전체의 복을 기원하고 농사의 풍요를 바라는 염원이 담긴 의미로 신앙물을 인격화 함으로써 돌기둥을 동제의 주신으로 받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부안 동문안 당산’은 1970년 5월 국가민속문화재 제19호로 지정됐다. 

그런데 지난 2003년 3월 어느날 ‘동문안 당산’ 중 돌기둥(솟대)에 놓인 돌오리상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문제는 부안군청이 도난 사실을 무려 12년 동안 신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사이 빈 솟대에는 가짜 돌오리상이 놓였고, 그 때문에 1990년대 이후 2년마다 지내던 당산제마저 2005년부터 단절됐다.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원이 절도범들이 숨겨놓은 돌오리상을 회수하고 있다.|문화재청 문화재사범 단속반 제공
그러던 2015년 12월 부안군청이 12년만에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에 ‘돌오리상’ 도난신고를 냈다. 이듬해(2016년) 4월 부임한 이동휘 부안군청 학예연구사는 뒤늦게 도난된 돌오리상에 관심을 갖게된다. 신고를 받은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은 이후 본격적인 수사를 펼쳤기 시작했다. 사실 이 돌오리상은 문화재보호법상 유통이 원천 봉쇄된 유물이다. 문화재보호법은 국가 및 시도 지정문화재(국가민속문화재)의 유통을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설혹 도난문화재인줄 몰랐다고 해도 도난신고된 문화재와, 출처 및 낙관을 지우고 유통하는 행위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것이 2007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선의취득 배제조항이다. 즉 현행 문화재보호법상 문화재절도범의 공소시효가 10년이지만 비정문화재든 비지정문화재든 유통이 원천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결국 문화재공소시효는 사실상 사라진 셈이다. 

이 때문에 돌오리상을 훔쳐간 절도범은 석물업자나 장물업자에게 팔지못한채 16년 동안 숨겨놓고 있었다. 급기야 지난해말 사범단속반에 절도범과 관련된 첩보가 입수됐고, 수사망이 좁혀지자 올 2월초 단속반에 “도난 문화재가 있는 것을 안다”는 전화를 건 것이다. 

부안 동문안 당산의 할아버지 장승(상원주장군), 할머니 장승(하원당장군).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사범들은 수사망이 옥죄어 오거나 도저히 판로를 찾기 어려울 경우 종종 이런 방법으로 도난문화재를 돌려준다. 간혹가다가는 택배로 도난문화재를 단속반에 보내는 경우도 있다. 

“물건은 충북 진천의 잣고개, 청주 방면 어느 곳에 있다. 찾아가라.”

첩보영화를 방불케하는 전화였다. 지난 2월13일 사범단속반은 전화 속 목소리가 알려준 잣고개 일대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반나절의 수색 끝에 호돌이 조형물 안 빈공간에 숨겨놓은 돌오리상을 찾아냈다.

회수된 동문안 돌오리상은 부안읍성에 있는 세 곳(동·서·남문)의 당산(돌솟대)에 남아있는 유일한 진품이다. 동문안 돌오리상만 1689년 처음 제작된 원래의 것이고, 서문안 당산에는 나중에 새롭게 제작된 것이 남아있다. 남문안 당산에는 이마저 남아있지 않다. 

도난 16년만에 국가지정문화재를 찾아낸 한상진 단속반장은 “동문안 돌오리상 회수는 전통문화와 지역문화 계승에도 큰 의미가 있다“면서 ”문화재절도범의 공소시효는 10년이지만 모든 지정이든 비지정문화재든 유통이 금지돼있기 때문에 사실상 문화재사범의 공소시효는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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