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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렬 진보연대 총회의장 별세에 조문객들 발길
빈소엔 文대통령 조화…추모벽 "벌써 그립다" 애도
© 뉴스1 정윤미 기자
(서울=뉴스1) 황덕현 기자,정윤미 기자 = "별명이 호랑이란 사실을…의장님 생전에 알지 못했다."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총회의장을 회고하던 대학생 김지홍씨(24)는 이내 고개를 떨궜다. 김씨는 오 의장이 생전에 남긴 말씀 "사상은 뿌리 깊게, 표현은 낮고 얕게, 연대는 넓고 넓게 하라, 실천은 무궁토록"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이어 "오 선생님이 가고자 했던 그 길을 이어 가고 싶다"고 담담하게 털어놨다.

1년 중 가장 눈이 많이 내린다는 절기상 '대설'(大雪), 7일의 어두운 밤, 오 의장은 노환으로 숨을 거뒀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평생 민족과 통일, 민주화 운동에 힘을 쏟으며 노동자, 시민을 향하던 그가 별이 돼 떠나는 길에 함께 현장을 누비던 시민운동가와 후학들이 그의 정신을 가슴에 새겼다.

그의 빈소는 서울 종로 혜화동 서울대 병원에 차려졌다. 시민운동은 전남 광산군(현재 광주 광산구)에서 시작했으나 그가 한미FTA 저지와 광우병 촛불집회를 위해 나서 싸우던 광화문 광장과 가까운 곳이다. 영정 속 그는 먼 곳을 응시하며 웃고 있었고, 식장 양 옆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의 조화가 세워졌다.

8일 오후, 그의 빈소에는 김씨와 같은 청년 조문객들이 눈에 띄었다. 빈소 한 켠에 마련된 오 의장 추모의 벽엔 그를 그리워하는 제자들의 메시지로 가득했다. '콘크리트 철근처럼 자주적 평화통일, 진정한 민주사회를 위한 의장님 삶 본받겠다', '통일된 조국에서 다시 만나요' 꾹꾹 눌러쓴 손글씨에 그를 그리는 마음이 담겼다.

오 의장은 광주사범대학 과학교육과를 졸업하고 교원에 임용돼 20여년간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는 학생들에게 사랑을 주면 이들이 자라서 민주화된 사회, 통일된 국가를 이룰 것이라고 믿었다.

오 의장을 민족민주운동의 길로 이끈 것도 바로 학생이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총탄에 쓰러진 제자들의 주검을 바라보며 오 의장은 사회운동을 결심했다. 그 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전신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 출범에 참여했다. 1989년 전교조 초대 광주지부장을 역임하던 중 구속돼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옥중에서 교사 파면을 맞기도 했다.

몇 번의 구속과 출소를 반복하며 오 의장은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 준비위원장을 시작으로 전국민중연대, 한국진보연대 등을 이끌며 한국 민족민주운동의 선봉장 역할을 했다.

2014년 건강 악화로 2선으로 물러난 그는 그러나 5·18 민족통일학교 이사장을 지내고, 말년까지 온라인을 통해 민주와 노동에 대한 가치를 설파해 왔다. 전근대를 두루 거치면서 사람의 가치를 실천으로 담금질해 온 오 의장은 자신의 블로그 '오종렬의 대장간'에 '무쇠에서 쟁기로'라는 기치 아래 지난해까지도 왕성하게 글을 게재해 왔다.

빈소에서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던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는 "투쟁하실 때는 백두산 호랑이 같던 분이 제자들 앞에선 한없이 관대하고 따뜻하셨다"며 "수많은 청년과 후배들에게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 참스승"이라고 그를 떠올렸다. 2000년대까지 오 의장과 함께 투쟁한 그는 박근혜 퇴진 비상국민행동 공동대표로 활동하면서 '촛불 혁명'을 이끄는 등 오 의장의 뒤를 밟고 있다.

진보계의 큰 별 오 의장의 장례는 민족통일장을 치른다. 빈소는 8일부터 10일 오전 8시까지 운영된다. 오는 10일 오전 10시 광화문광장에서 영결식을 갖는다. 이후 광주로 운구해 조선대병원 장례식장에 오후 4시부터 11일 오전 8시까지 광주 조문객을 받을 예정이다.

ac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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