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 찌르며 일했건만 남은 건 빚과 병… 마지막 길도 외톨이
두 달 전 사망 60대 남성 쓸쓸한 인생
두 번 결혼했지만 가족과 인연 끊겨
깊어지는 병에 택시운전마저 그만둬
기초수당 손꼽아 기다렸는데 결국…
좁은 방 한쪽엔 납입 독촉 고지서만
화장터에서 희미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일반 장례에선 익숙하지만 무연고 공영장례가 있는 서울시립승화원 6번 화로 근처에선 접하기 쉽지 않다. 무연고 사망자들은 추억하는 이가 없어 울음이 귀하다.
“이종렬(가명)님은 이혼 후 자녀와 연락이 두절된 채 살아오셨고 연고자가 있으나 시신인수를 거부해 무연고자가 됐습니다.” 겨울바람이 불던 지난달 22일 고인의 65년 삶은 장례를 진행하는 이의 짧은 문장으로 정리됐다.
“사진을 놔도 될까요?” A씨(여)는 이씨의 오랜 친구라며 장례사에게 물었다. 무연고 사망자들은 대부분 영정 없이 위패만 놓고 장례를 치른다. “된다”는 말에 그녀는 주머니에서 빛바랜 주민등록증을 꺼냈다. 그 옆에는 이씨의 마지막 직장인 택시회사 동료 B씨도 서 있었다. 15분간 짧은 추모 모임이 끝난 뒤 화장됐다. 흐느끼는 여성을 보며 ‘무연고자 이종렬’의 연이 궁금해졌다.
가난은 딸과의 연도 끊어놨다
“가족은 전혀 없나요?” 기자의 질문에 구청 관계자는 “딸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왜….” 이씨의 지인은 “아마 키워주지 않은 아빠에 대한 원망이 컸겠죠. 그래서 마지막에 시신도 포기한 게 아닌가 싶어요”라고 했다. 이씨 서류에는 ‘딸이 시신인수 통보 등기를 반송했다’고 돼 있었다.
이씨는 서류상 한 번 결혼한 것으로 돼 있지만 사실은 아내가 한 명 더 있다. 그는 젊었을 때 사랑하는 여성과 딸을 낳았지만 처가의 반대가 심했고, 아내와 딸은 일본으로 쫓겨났다. 아내의 주민등록번호도 모르던 그는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었다. 경제적으로 능력이 있었다면 일본에 가서 수소문해 볼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며 주위에 원통해 했다고 한다. 평생 딸을 그리워하며 살았던 그는 통장 비밀번호도 아이 생일로 해뒀다.
두 번째 만난 아내와는 정식 혼인신고를 하고 딸도 한 명 낳았다. 하지만 아이가 어렸을 때 이혼을 하면서 왕래가 끊겼다. 그러다 6년 전쯤 연락이 온 딸은 대뜸 “5000만원을 달라”고 했다. 돈을 줄 형편이 되지 못했던 그에게 딸은 ‘아빠’ 대신 ‘당신’이라 부르며 헤어졌다고 한다. 당시 이씨는 직장에서 잘려 무직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이씨는 택시 운전대를 잡았다. 희미해진 연을 어떻게든 이어 가려 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주변사람들은 말했다.
사혈 침 찌르며 지키고자 했던 삶
짐을 정리하러 간다는 A씨를 동행했다. 서울 지하철 1호선 회기역 인근 주택가에 있는 이씨 집은 하얀 담벼락의 낡은 2층 주택이었다. 대문을 열면 보이는 좁은 통로로 들어가자 그의 셋방이 나왔다. 오후 2시였는데 형광등을 켜야만 집안이 보였다.
열쇠를 넣자 현관문이 ‘꺼억’ 소리를 냈다. 바로 부엌이 나왔다. “새 걸 써보지도 못하고 갔네”. A씨는 혀를 찼다. 이씨는 죽기 전 병원에 입원했는데 그때 동네 주민센터에서 싱크대를 교체해줬다고 했다. 비닐이 뜯기지 않은 싱크대는 낡은 방과 어울리지 않게 튀었다.
부엌과 방 한 칸, 화장실이 그의 마지막 공간이었다. 방 왼쪽 구석 행거에는 다림질로 빳빳한 사각팬티, 하늘색 와이셔츠와 회색 정장바지가 걸려있었다. “워낙 깔끔한 성격이라 매일 이 셔츠를 다려서 입었어요. 택시 할 때 입었던 옷이에요.”
2014년부터 택시 운전을 시작했다는 이씨는 밤눈이 어두워 해가 지면 운전을 하지 못했다. 건강이 좋지 않아 오래 운전대를 잡을 수도 없었다. 올해 들어서는 혈변을 보기 시작하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고 한다. 당연히 사납금을 맞추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월세와 사납금 내기가 버거워 사채에 손을 댔고, 그로 인한 고리대금은 이씨의 생활을 더 조여왔다. 매달 10만~20만원씩 이자를 내야 했기 때문에 침을 찔러가며 일해도 수중에 떨어지는 돈은 한 달 몇 십 만원밖에 되지 않았다. 라면이나 짜장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날이 많아졌다. 월세도 두어 달씩 밀릴 수밖에 없었다. 몸은 더 안 좋아져 결국 지난 6월 택시 회사를 나왔다.
“어지러워서 정신이 몽롱해지는 순간이 자주 찾아와 침을 찔러가며 버텼다고 해요. 그래도 돈이 벌리지 않으니….”
그때 A씨에게 집 주인 전화가 걸려왔다. 다른 세입자가 집을 보러 와야 하니 집을 치우겠다는 전화였다. “일요일까지는 정리할 테니까 버리지 말아 주세요. 혹시 중요한 서류나 유언을 남겼다거나, 쪽지 남긴 게 있나 차곡차곡 보게요.”
방구석 곳곳 스며든 가난의 냉기
방 입구에는 그가 병원에 입원하기 전 매일 덮었던 이불 한 채가 깔려 있었다. 베개와 바닥에 깔아둔 이불, 덮는 이불 모두 꽃무늬였지만 무늬와 색은 제각각이었다. 형편이 될 때마다 하나씩 마련해서 그랬다고 한다.
이불 옆에는 이씨 혼자 앉을 수 있는 작은 밥상이 펴져 있었다. 아마도 이씨의 밥상이자 책상인 듯했다. 이씨는 지난 달력을 뜯어 뒷면을 메모장으로 쓰고 있었다. 상 아래에 롤케이크 상자가 놓여 있었는데 열어보니 온갖 독촉 고지서가 가득했다. ‘유체동산압류 예정통보’ ‘예금통장 압류예정’ 등 우편물들은 이씨가 사혈침을 맞으며 지켜왔던 적은 돈마저 가져간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택시운전을 그만두고 형편이 너무 안 좋아지니까 9월 말에 이씨와 동주민센터로 가서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했어요. 그런데 회사를 그만둔 뒤 신청한 ‘실업급여’가 문제가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실업급여를 포기하고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했는데 심사 중에 돌아가신 거죠.” “빨라도 두 달은 걸린다”는 담당자 말에 11월을 손꼽아 기다린 이씨였지만 결국 10월 문턱을 넘지 못했다. 달력 뒷면에는 꼭꼭 눌러 쓴 듯한 ‘어머니 새 묘지 이장 주소’가 적혀있었다. 모친을 더 좋은 곳으로 모시기 위해 아픈 몸으로 발품을 판 일은 쓸모없는 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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