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밀봉' 전략에도 피해 적지 않아 .. 확산땐 체제 치명타
북한은 코로나19 청정구역? / 항공·도로·철도 등 모든 통로 막고 / 외교관·관광객 등 입북 전면 불허 / 北 주재 외교관들 감시·통제도 강화 / 軍동계훈련 등 대표 행사 대폭 축소 / 관영언론 "확진자 없다" 수차례 강조 / 우리 정보당국 "피해 적잖다" 분석 / 국제적십자사는 '장비 지원' 준비 / 경직된 남북관계 해결 변수 시각도
비상이 걸리기는 북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북녘땅에선 아직까지 단 한 명의 확진환자가 없다고 한다. 북한은 코로나19 발생 초기 중국 국경을 전면 봉쇄하는 강수를 뒀다. 폐쇄적인 북한 정부 속성과 주민들의 열악한 보건 환경을 감안하면 북측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 북한에 사무소를 두고 있는 국제적십자사연맹(IFRC)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의료 장비 및 진단 키트, 개인 보호용품 지원을 준비 중이다.
우리 정보당국은 북한의 공식 주장을 신뢰하지 않는다. 이미 북녘땅에도 코로나19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는 정보는 차고 넘친다.
북한 내 코로나19 확진 및 사망자 소식은 일부 매체를 통해서도 알려진 상태다.
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는 지난 7일 북한 내부 소식통 발언을 인용해 “북·중 국경지역에서 북한 주민 5명이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열로 돌연 사망했고, 북한 당국은 기밀 유지를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12일에는 “현재까지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은 평양에서만 3명”이라면서 “추가로 코로나19 확진자 18명이 제3인민병원에 격리돼 있다”고 소식통발로 전했다. 인용된 소식통은 “북한 보건당국은 최근 사망한 20대 중국 유학생이 바이러스 진원지로 파악하고 있다”고도 했다.
북한 내 코로나19 사태의 심각성을 유추할 수 있는 정황들도 있다. 대표적 사례가 북한 주재 외교관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 강화다.
지난 4일 러시아 타스통신은 “북한 주재 모든 외국인은 20일까지 대사관 건물에 머물러야 하며, 평양 외교관들은 현재 반감금 상태”라고 보도했다. 이들의 감염 가능성을 우려하는 조치이긴 하지만 북한 내부 정보를 통제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타스통신은 “북한은 모든 외국인 외교관들의 출입을 통제함과 동시에 평양 내 호텔·상점·식당·공공장소에서의 대외국인 서비스를 모두 중단했다”고 덧붙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북한 당국이 파견한 의료진이 각국 주재 대사관에 직접 들어가 검진을 시작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북한은 지난 2일 조선중앙TV를 통해 ‘발병 제로’를 처음 언급했다. 남쪽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수백명을 돌파한 이후에도 같은 입장을 고수했다. 북한은 과거 2002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2012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때도 확진자 유무에 대해 공개하지 않았다. 지난해 아프리카돼지열병 때는 뒤늦게 세계동물보건기구에 딱 1건의 발생 사실만을 알렸다. 감염병에 대해 WHO에 발병 사실을 보고한 것은 신종플루가 유일했다.
북한이 조선중앙통신이나 노동신문 등 관영 언론을 통해 “확진자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엇보다 체제 유지를 위한 고육책으로 분석된다.
탈북민 K씨는 “코로나가 북한에 대거 유입될 경우 안그래도 위태로운 북한 경제가 붕괴될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주민 감시와 통제에 열성일 수밖에 없다”면서 “북한의 경제정책 기획 및 수립, 지도·감독을 총괄하는 국가계획위원회가 북한 내 코로나19의 방역대책을 총괄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지금 북한은 항공과 도로, 철도 등 모든 통로를 차단했다. 외국인 관광객과 외교관, 출장객 등의 입북도 불허하고 있다. 국가 자체가 밀봉된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건위생체계의 취약성을 방증하는 조치라고 할 수 있다.
K씨는 “북한의 보건체계가 어느 정도로 낙후돼 있는지 남쪽 사람들은 실감하지 못할 것”이라며 “3년 전 판문점을 통해 탈북하다 총상을 입고 이송됐던 오청성씨 몸에서 기생충 수십 마리가 나온 것을 보고도 기겁하지 않았나. 그런 것은 북한에서 놀랄 일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현재 북한은 북·중 국경지대와 평양을 코로나19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총력전을 펴고 있다. 아직 국제 사회에 지원 요청을 하지 않은 것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덕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코로나가 지방으로 확산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열악한 의료 인프라 때문에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K씨는 “지방은 코로나19에 걸려 죽더라도 독감이나 지병으로 인한 사망으로 치부되고 통계에는 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엔이 의료 장비 지원을 위한 IFRC 요청에 대북제재 면제를 받아들인 것은 북한의 코로나19 위기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 국무부도 인도적 차원에서 코로나19 대북지원에 긍정적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정부 일각에서는 코로나19 사태가 경직된 남북관계를 풀 수 있는 변수가 될지 주목하고 있다. 지난 21일 조혜실 통일부 부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민간단체나 국제기구가 대북지원 협력을 공식 요청해올 경우 “해당 기관과 긴밀하게 협의해 나가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본적으로 정부는 감염병 전파 차단 및 대응을 위한 남북 간 협력은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북한 쪽에서 지원 등을 요청하면 언제든지 협의에 나설 용의가 있다는 메시지다. 감염병 확산 방지라는 공통된 목표가 남북 협력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 섞인 바람이기도 하다.
박병진 군사전문기자 worldp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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