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리하면 성폭행?” 남자들 걱정하는 강간죄 개정
서울 도심의 한 공사장 외벽에 미투 운동(# Me Too)을 의미하는 그라피티(graffiti)가 그려져 있다. 뉴시스
<“저항했나→동의 받았나…‘비동의 간음죄’로 이제 가해자에게 묻자”>기사가 나간 지난해 4월 이후 일각에서 여러 의문이 터져나왔다. 무고한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다거나 왜 유독 한국만 유난이냐는 식이었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지금도 현행법이 피해자의 인권을 보장하지 않고 가해자에게 합당한 처벌을 내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더욱이 법에 의한 2차 가해는 심각하다. 얼마나 강하게 저항했는지, 왜 거부하고 박차고 나오지 않았는지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현행 형법 제297조는 ‘폭행 또는 협박’을 강간죄의 구성요건으로 명시하고 있다. 확인할 수 있는 폭행이나 협박이 있어야만 강간이 성립된다. 피해자에게 “왜 저항하지 않았나”를 물을 게 아니라 가해자에게 “어떻게 동의를 받았나”를 따져보자는 강간죄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돼있다. 비동의 간음죄 기사에 달렸던 댓글을 바탕으로 강간죄 개정을 둘러싼 의문을 확인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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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 여부를 누가 판단할 수 있나, 당사자만 아는 것 아닌가
박은정 서울남부지검 부부장검사는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의 일방 진술만으로 기소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수사과정에서 진술을 보강하는 수많은 증거를 갖춘다”며 “동의를 하지 않았다는 피해자 진술에 신빙성이 있는지는 검사가 입증한다. 동의 여부 판단의 모든 책임은 검사에게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피해자 동의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과 폭행이 있었다고 입증하는 것은 차이가 없다.
▲무고 피해자를 만드는 것 아닌가
형사재판에서 고의 입증은 성폭력 뿐 아니라 모든 범죄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검사는 피해자 진술만으로 기소되는 것이 아니라 보강 증거를 찾아야 한다. 박은정 검사는 “무고한 피의자 기소를 걱정하기보다 그동한 동의하지 않은, 원치 않은 성폭력이라고 주장하는 많은 피해자를 돕지 못한 점을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고 피해자 이미 많이 나오지 않았나
지난해 7월 발표된 성폭력 무고죄 검찰 통계에 따르면 성폭력 무고 고소 중 82.6%는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성폭력 무고 고소로 검찰이 기소한 사건 중에서도 15.5%는 무죄로 결정됐다. 성폭력 가해 혐의를 받는 이가 피해자를 상대로 낸 무고죄 고소 사건 중 실제 무고는 극히 드물다.
▲ 폭행과 협박 없는 강간은 극히 소수의 사례 아닌가
지난해 전국 66개 성폭력상담소 상담사례 분석 결과 직접적인 폭행‧협박 없이 발생하는 강간은 전체 71.4%에 달했다. 폭행과 폭력을 동반한 성폭력 피해자는 10명 중 3명이 채 안 된다는 의미다. 권력 관계였기 때문이다. 성폭력은 가해자의 다양한 전략이나 전술에 의해 전개되고 있다. 피해자를 속였거나 신뢰를 이용해 항거불능의 상태로 만드는 경우가 이에 속한다. 저항 또는 저항의사마저 표할 수 없는 피해자의 취약성을 교묘히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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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거부하지 않았으니 동의를 받았다고 생각하는게 당연하지 않나
성폭력 가해자 대다수는 ‘상대방도 원하는 줄 알았다’는 진술을 한다. 자신의 권위에서 해석하는 셈이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여성이 남성과 성관계를 가질 때 불평등한 권력관계에 놓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적극적인 합의 및 동의를 얻어 성관계하는 문화가 정착해야 한다”고 말했다.
▲왜 한국만 동의를 강조하나
세계는 이미 동의 여부가 관건이다. 유엔은 동의를 기준으로 강간을 정의할 것을 여러 차례 권고했다. 특히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2018년 한국 정부에게 형법 제297조를 개정해 피해자의 자유로운 동의의 부재를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영국, 스웨덴, 독일, 캐나다, 미국 등의 여러 선진국은 이미 국제적 기준을 따르고 있다. 특히 스웨덴은 가해자가 피해자의 동의를 확인하지 못한 경우까지 처벌한다.
▲ 강간죄 개정 이미 되지 않았나
1953년 대한민국 형법이 제정됐던 당시 성폭력 범죄를 규정하는 형법 제32장은 ‘정조에 관한 죄’로 형법 제297조 강간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를 강간한 자’였다. 1994년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됐고 1995년 형법 제32장은 ‘강간과 추행의 죄’로 개정됐다. 부녀(결혼한 여자와 성숙한 여자를 통틀어 이르는 말)라는 단어가 삭제되면서 정조를 지킨 여성은 법으로 보호해주고 그렇지 않은 여성은 보호해줄 필요가 없다는 개념만 없어졌다. 여전히 폭행과 협박이라는 구성요건은 남아있다.
▲강간 처벌 충분히 강하지 않나
이미경 소장은 “현행 형법은 다양한 형태로 자행되는 성폭력 모두를 성범죄로 인정하지는 않고 있다”며 “법적 처벌의 공백이 분명 존재한다”고 말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2016년 한 해 동안 성폭력 사건의 기소율(41.8%)은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 성폭력은 신고율이 1.9%인 것을 고려하면 너무도 많은 성범죄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고 있다.
▲요즘 누가 최협의설을 따지나
폭행·협박을 이용한 행위만 강간이라고 법에서 명시하는 한 피해가 발생해도 처벌은 없을 수밖에 없다. 법이 성폭력 피해자를 무고 가해자로 만들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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