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냉전시대 심리전' 돌아가나…삐라·확성기 재등장
북한이 대남 삐라(전단) 살포 예고에 이어 2년 전 철거했던 대남 확성기 방송 시설을 재설치하는 움직임이 포착됨에 따라 남북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남북은 2018년 4·27 판문점선언에 따라 확성기를 철거하고, 삐라 살포를 중단했기 때문에 북한이 이것을 재개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판문점선언 폐기 수순으로 돌입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울러 확성기와 전단은 상호 체제 대결과 비방 등의 대표적인 선전 수단으로 꼽히고 있어 해묵은 냉전시대 심리전 수행으로 되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북한은 21일 오후부터 비무장지대(DMZ) 일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대남 확성기 방송 시설을 재설치하고 있으며, 이미 10여 곳은 재설치 작업이 완료된 것으로 알려졌다. 확성기는 쩌렁쩌렁 울리는 대형 스피커와 음향조종 시설 등으로 이뤄진다.
남북은 각각 40여 곳에 있던 확성기 시설을 철거했다. 이로 미뤄 북한은 철거했던 40여 곳 모두 복원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군 당국은 북한이 확성기 시설 재설치를 이처럼 빠르게 결정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북한군 총참모부 대변인이 지난 17일 삐라 살포 등 4대 군사행동 지침을 예고할 때도 확성기 설치 문제는 꺼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북한은 총참모부 대변인 발표 나흘 만에 확성기 시설 재설치 작업을 전격 단행했다.
북한이 삐라 살포 예고에 이어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려는 것은 남측에 계속해서 심리적인 타격을 주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북한 통일전선부 대변인은 지난 5일 담화에서 삐라 살포 등을 언급하며 "우리도 남측이 몹시 피로해 할 일판을 준비하고 있으며 인차(이제부터) 시달리게 해주려고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군 당국은 북한이 삐라를 살포하고 확성기를 틀 움직임을 보이자 대응 수단을 고심하고 있다. 정부와 군 당국은 아직 입장 표명은 없지만, 철거한 확성기 방송 시설 복구가 유력해 보인다.
북한은 2015년 8월 20일 남측 확성기 시설을 겨냥해 두차례 포격 도발을 감행하기도 했다.
사라진 북측 확성기(파주=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 남북이 판문점 선언을 이행 중인 4일 경기도 파주시 도라전망대에서 비무장지대(DMZ) 북측 초소의 대남방송 확성기 자리가 빈 자리로 남은 모습(오른쪽 사진)이 보이고 있다. 왼쪽은 지난해 9월 대남방송 중인 확성기가 초소 옆에 자리한 모습. 2018.5.4
북한은 1962년부터 대남 확성기 방송을 시작했다. '체제 우월성'을 선전하고 최전방 근무 군인들의 월북 등을 유도하려는 의도였다. 이에 남측도 1963년 5월 1일 서부전선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 맞물 대북 확성기 방송을 시작했다.
방송 초기 북한군은 전력 사정이 괜찮아 출력을 높여 DMZ 이남 지역에서 또렷이 들렸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면서 전력 사정이 악화해 방송이 끊기기 일쑤였고, 출력도 낮아 남측 지역에서 '웅~웅' 잡음이 섞여 제대로 들리지 않을 때가 허다했다.
반면 남측 확성기 시설은 출력이 높아 최전방 북한군에 심리적 위협이 됐고, 북한은 남북 군사회담 때마다 확성기 철거를 집요하게 요구했다.
군 관계자는 "대북 확성기 방송은 외부세계에 대한 정보가 차단된 접경지역의 북한 주민과 최전방부대 북한 군인들에게 중요한 정보 전달 채널 구실을 했다"고 전했다.
특히 북한 및 서방세계와 관련한 뉴스, 날씨 정보, 가요 방송 등은 북한에 위협적인 심리전 콘텐츠로 평가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인민군 여러분, 내일 빨래하지 마세요", "오늘 오후에 비가 올 것 같으니 빨래 걷으세요"라고 하면 실제로 북한군이 이런 예보에 맞춰 행동하기도 했다고 한다.
2004년 평안북도 용천역에서 발생한 대형 폭발사고 당시 대북 확성기 방송으로 이 뉴스를 북쪽으로 전달했는데, 최전방에 근무한 북한군 병사들이 집에 안부 편지를 쓰면서 이 사고 소식을 편지에 담았고, 나중에 부대 검열에서 걸려 문제가 됐다는 말도 들린다.
고출력의 확성기 방송의 가청거리가 심야시간대는 20여㎞에 달하므로 가요가 밤 시간대에 많이 송출됐다. 귀순한 북한 병사들은 확성기 방송으로 송출된 남한 가요를 들었다고 진술했다.
2017년에는 대북 확성기를 통해 남한 가요 100여 곡이 송출됐는데 방미의 '날 보러와요'를 가장 많이 튼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은 2004년 6월 4일 제2차 장성급 군사회담을 통해 '서해 우발충돌 방지와 군사분계선 일대 선전활동 중지'에 대해 합의한 이후 최전방의 대북 확성기 방송 시설을 철거했다.
그러나 2010년 3월 천안함 피격 사건 이후 MDL 일대에서 철거한 확성기 방송시설을 재구축했으며, 2015년 북한의 DMZ 지뢰 도발로 재개했다가 같은 해 중단했다. 이후 2016년 1월 북한의 제4차 핵실험에 대한 대응으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전면 개시했다.
2018년 판문점선언으로 확성기 방송이 중지되자 DMZ 일대는 그야말로 '적막강산'이었다. 이제 남북이 판문점선언 합의를 뒤엎고 확성기를 재개한다면 한동안 평화의 바람이 불었던 DMZ 일대가 다시 남북 심리전이 벌어지는 첨예한 공간으로 변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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