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과학향기]가짜 전문가에게 속는 심리적 이유
인터넷에 떠도는 우스갯소리 중에 이런 것이 있다. 검은색 바탕에 유명한 인물의 사진을 넣고 그 옆에 아무 말이나 갖다 붙이면 명언이 된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런 자조 섞인 농담은 인간 본성에 대한 진실을 품고 있다. 실제로 우리는 어떤 인물이 권위 있다고 믿으면 그 인물의 헛소리까지도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1970년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의과대학에서는 재밌는 실험이 진행됐다. 그날 심리학자, 정신의학자 집단은 각각 두 강연자에게 '의료인 교육에서 수학적 게임 이론의 적용'이라는 수업을 들었다. 일단 말도 안 되는 강의 제목은 물론 수강생들이 전혀 알 수 없는 내용이어야 했기 때문에 일부러 지어낸 것이다. 수강생 한 집단은 실제 과학자에게 강의를 들었다. 또 다른 한 집단은 '마이런 폭스 박스'라는 이름의 가짜 정체성을 부여받은 연기자가 했다.
◇강의 내용보다는 강의자의 태도가 중요하다
첫 실험에서는 마이런 폭스 박사가 힘없고 느리고 단조로운 어조로 강의하게 했다. 그 결과 강의가 끝난 후 강의에서 배운 내용을 테스트했을 때 진짜 과학자에게 배운 학생들이 더 좋은 점수를 받았다.
다음 실험에서는 폭스 박사를 다르게 행동하게 했다. 아주 열정적이고, 청중들의 폭소를 자아낼 만큼 유머 넘치게 강의하도록 한 것이다. 물론 강의 내용은 그저 엉터리 원고를 외운 것 뿐이었다. 하지만 수업이 끝난 후 강의 평가에서 학생들은 진짜 과학자의 강의보다 폭스 박사의 강의가 더 좋았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는 학생이 교육을 평가할 때 강의의 내용보다는 강연자 표정, 태도, 자신감 같은 요인에 휘둘린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폭스 박사가 한 강의는 엉터리라서 앞뒤가 맞지 않았고, 의미도 없었으며 알쏭달쏭한 전문 용어로 가득차 있었다. 그런데도 단지 열정적인 태도 때문에 학생들은 폭스 박사가 강의를 잘한다고, 그 내용이 대단하다고 믿은 것이다. 심지어 학생들은 현직 정신과 의사, 심리학자, 교육학자였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심리학계에서는 이를 '폭스 박사 효과'라 부른다.
엉터리 같은 내용을 말해도 강연자의 태도가 확신에 차 있고 열정적이면 그 사람의 말을 진실로 믿는 경향이 있다. (출처: shutterstock)
우리는 권위에 취약하다. 우리가 이해 못하는 용어나 개념을 주워 섬겨도 그 사람이 확신에 차 있고, 열정적이면 실제로 그런 개념이 있다고 믿어버린다. 비슷한 맥락에 있는 것이 심리학에서 말하는 '후광 효과'이다. 후광 효과란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해 느끼는 아주 일반적인 인상에 따른다는 것이다. 그 인상이 객관적이지도 않고 편견에 치우쳐 있는데도 말이다.
후광 효과는 일상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가장 흔한 것은 상대의 외모를 보고 상대의 성격까지 지레 짐작해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멋진 외모를 가진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이 외모만큼이나 착하고, 친절하고, 지성이 있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며,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 사람이 어떤 성격을 갖고 있고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 전혀 모른다.
폭스 효과는 강연자가 가진 성격과 비언어적인 요소가 후광을 만든 것이다. 실제로 후속 실험에서 외향적이고 열려있고 활달한 교사들이 더 실력 있고 학생들을 잘 가르친다는 평가를 받았다. 교사가 가진 특유의 카리스마나 유창한 말솜씨도 중요했으며, 눈 맞춤, 미소, 표정, 학생과의 거리 같은 비언어적인 행동도 교사 평가에 중요하게 작용했다. 외모는 말할 것도 없다. 심지어 의상도 중요했는데, 티셔츠나 청바지를 입은 교사들은 더 유연하고 공정하며 열려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실제 강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우리의 편견을 강화하는 요소이다.
시사 프로그램을 보면 엉터리 교주에게 속아 인생과 재산을 바치는 안타까운 사람들이 자주 나온다. 그런 교주들은 대개 폭스 효과를 잘 활용한다. 세계와 인생에 관한 확신에 찬 발언들, 알쏭달쏭한 개념들,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의상이나 화장을 적극 이용하는 것이다.
가짜 전문가가 사회에 끼치는 해악은 크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의 큰 목소리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출처: shutterstock)
그렇다면 이런 가짜 전문가에게 속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앞에서 언급한 심리학 연구들을 되새기며 우리가 권위에 취약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야 맹목적인 믿음이 생기기 전에 과연 내 믿음이 온당한가를 점검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너무나 확신에 차고 단호한 어조로 말하는 전문가가 있다면 한 번쯤 그 내용을 교차 검증해보는 것이다. 어떤 사람도 완벽할 수는 없다. 진짜 전문가는 그 사실을 잘 알기에 자신이 잘 아는 분야라고 하더라도 명확한 결론을 내리는 것을 피한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논문의 결론 부분에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관련이 있을 수 있다' 같은 문장을 쓴다. 권위에 대한 존중은 필요하지만 권위에 매몰되지 않아야 한다.
글: 이형석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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