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동 성격·정권 말 공기업 인사·MB 사면 놓고 틀어진 듯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함께 외친 “국민통합”은 대선 후 1주일도 못 가 불협화음을 낳았다. 두 사람의 오찬 회동이 16일 당일 무산되면서다.
청와대와 윤 당선인 측은 “실무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았다”면서 회동 무산의 파장 확산을 경계했지만, 근본 원인이 해소되기에는 양측의 입장차가 커 갈등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회동 무산은 만남의 성격 규정부터 달랐기 때문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을 축하하고 덕담을 나누는 수준의 자리가 되기를 원했다. 특히 이번 대선이 역대 최소 표차를 기록했고 양 진영 간 갈등도 극심해 국론 분열 우려가 큰 만큼 원활한 인수·인계를 약속하고 함께 통합의 메시지를 전하기를 바란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윤 당선인 측은 의제 조율 과정에서 만남의 구체적인 성과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강하게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당선인 측은 공개적으로도 문재인 정부 말 공공기관·공기업 임원 인사, 전직 대통령 이명박(MB)씨 사면 등을 의제화할 뜻을 밝혔다.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과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이 협의를 계속했지만 의견 일치를 보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는 설명이다.
청와대는 합의안이 나오는 회담처럼 만남이 다뤄지는 데 큰 부담을 느꼈다는 후문이다. 양측은 회동을 무리하게 강행했다가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것보다 예정된 일정을 취소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데 공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동이 불발된 원인으로 문재인 정부 말 공공기관·공기업 임원 인사 문제가 거론된다.
윤 당선인 측은 이달 말 임기가 끝나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를 비롯한 인사를 자신들과 협의해 진행하거나 아예 인사를 하지 말 것을 문재인 정부에 요청한 상태다. 국민의힘은 국회 상임위원회별로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 대상 ‘문재인 정부 임기 말 알박기 인사 현황’ 전수조사도 벌이고 있다.
윤 당선인 측근인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김오수 검찰총장을 향해 “거취를 스스로 결정해야 되지 않나 생각한다”고 포문을 여는 등 이미 임명된 인사들도 물러날 것을 압박하고 있다. 이에 청와대가 “임기 내 주어진 인사권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반발했다.
사면도 갈등 현안이다. 윤 당선인 측이 회동에서 문 대통령에게 MB 사면을 요청하겠다고 밝히자 청와대는 “사면은 대통령 고유 권한”이라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윤 당선인 측이 “최측근인 김경수 전 경남지사를 동시에 사면하기 위해 문 대통령이 (MB를 사면하지 않고) 남겨놓은 것”이라며 거래를 시도할 거라는 주장을 제기하자 청와대는 격앙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사면 문제로 회동이 무산됐다는 추측에는 청와대 안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도 “(사면 문제로) 충돌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양측 갈등의 근저에는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청와대는 윤 당선인 측이 회동 전에 요구사항을 언론에 흘려 점령군처럼 굴복시키려 한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윤 당선인 측이 폭넓은 사안에 대한 허심탄회한 의견 교환을 위해 문 대통령에게 독대를 제안했음에도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윤 당선인 측은 문재인 정부가 알박기 인사 등을 통해 어깃장을 놓으려 한다고 주장한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새 정부를 위해 결자해지하고 도와주는 것이 임기를 마치는 대통령이 할 일”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간 회동은 다음주로 넘어갈 가능성이 커졌다. 그간 대통령과 당선인 회동이 대선 후 열흘을 넘기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역대 가장 늦은 만남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윤 당선인의 ‘현 정권 적폐 수사’와 문 대통령의 사과 요구가 현재진행형이고, 윤 당선인은 문재인 정부 주요 정책인 원전 감축, 여성가족부 강화 등에 대한 뒤집기를 공언하고 있다.
정권 인수·인계 과정에서 정부조직 개편안 등을 두고 갈등하다 정권교체 후에도 국가기록물 유출 논란으로 이어진 노무현·이명박 정부의 갈등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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