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너였구나” 피해자가 직접 잡은 범인
[성착취 텔레그램 ‘n번방’ 추적기] ② “신검 받는 중ㅋ” 자기 덫에 걸린 놈텔레그램 ‘여교사방’ 관전자들이 지인 혹은 SNS에서 구한 현직 여교사의 사진을 공유하며 성희롱하고 있다. n번방 캡처
“○○○ 선생님 되시나요? 놀라지 말고 들어주세요.”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것은 늘 고통스러웠다. 당신의 사진이 불법 유포됐고, 남성 수천명이 그걸 보며 히죽거리고 있다는 말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너였구나” 피해자가 직접 잡은 범인
지난해 10월은 ‘여교사방’이 활발하던 시기였다. 누군가 지인의 사진을 올리면 방장이 나체사진과 합성해 뿌렸고 이를 보고 너도 나도 희롱했다. 이름과 직장, 집, 휴대전화 등 신상 공개도 뒤따랐다. 일명 ‘지인능욕방’이다. 처음에는 단순 합성사진이니 충격이 덜할 거라고 생각했다. 방에 들어간 지 몇 분 만에 구역질이 났다. 그들은 친구를, 동생을, 아내를 모욕하며 더 흥분했다.
이 무렵 유독 심한 피해를 본 현직 교사 A씨와 통화가 이뤄졌다. 방장이 직접 A씨의 합성사진을 대량으로 뿌리고 있었다. A씨는 의아해했다. 지인에게만 공개된 인스타그램 사진이 쓰였다고 했다. A씨 팔로어는 소수였다.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진 공개 범위를 좁혀나가며 추적을 시작했다. 먼저 몇 명만 볼 수 있도록 공개 범위를 재수정해 사진을 올렸다. 곧바로 지인능욕방에 유포됐다. 다시 팔로어 그룹을 나눈 뒤 특정 그룹에만 새로운 사진을 공개했다. 역시 능욕방에 곧바로 사진이 떴다. 추적 나흘째. 이제 두 명 남았다. 한 명만 볼 수 있도록 공개 범위를 설정해 사진 한 장을 올렸다. 곧 텔레그램 방 알람이 떴다. “너였구나.”
범인은 A씨와 중·고교를 함께 나온 동창이었다. 경찰은 그의 휴대전화에서 합성사진 수십장을 확인했다. 경찰은 지난 1월 그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과 음란물 유포)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잡을 수 있다… ‘래빗’ 몰던 날
아동 성착취물만 취급하던 일명 ‘래빗’은 과시욕에 꼬리가 밟혔다. n번방에 뒤늦게 진입했던 그는 남다른 활동 강도로 이례적으로 빠르게 방장 자리에 올랐다. 래빗은 주로 해외 사이트에서 얻은 아동 영상물을 공유했고 삽시간에 탄탄한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에 대해 알려진 정보는 지방 국립대를 다니는 20대 초반 남성이라는 것뿐이었다.
그가 운영하는 방은 개인 SNS나 다름없었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올리며 관전자들의 신임을 샀다. 오늘은 누굴 만났고, 무엇을 먹었으며, 어디를 다녀왔는지까지 사진으로 인증했다. 어느 날 래빗은 ‘신검(신체검사)을 받으러 왔다’는 글과 함께 사진 한 장을 올렸다. 지하철역 풍경이었다. 자세히 보니 역 이름이 보였다. 처음 실마리가 잡힌 날이었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얼마 후 래빗은 ‘아 X급 떴음’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흔히 나오지 않는 결과였다. 이 정도면 특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쁨에 초조함이 더해졌다. 딱 한 조각의 정보를 더 기다리기로 했다. 래빗은 곧 또 다른 정보를 내놨다. ‘○월에 재검 받을 듯.’
그가 이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경찰에 달려갔다. 경찰은 해당 날짜, 해당 지역 내 신검 일정을 파악했다. X급을 받은 전력이 있는 재검 대상자를 분류했다. 래빗의 재검 당일, 경찰은 신검장을 급습해 그를 체포했다. 마침내 n번방을 휘젓던 래빗을 잡았다.
우리가 용기를 내면 그들은 떤다
능욕방에 잠복하고 있다가 합성사진이 올라올 때마다 피해 여성의 SNS 아이디로 메시지를 보냈다. 기자 신분을 밝히고 피해 사실을 설명하면 대다수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몇 번이고 되물었다. “제 사진이 어떻게 사용됐다고요?” “제가 확실해요?”
상황을 받아들이고 나면 피해자 대부분은 문제의 사진들을 직접 보겠다고 했다.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링크를 보내주면 한참 동안 대화창 위에 정적이 흘렀다. 설득을 거쳐 그들은 사진을 지우고 SNS를 비공개로 전환했다. 많은 경우 여기까지가 끝이다.
하지만 용기를 내면 길은 있다. 동창인 가해자를 직접 잡아낸 교사 A씨처럼 피해자가 숨지 않으면 가해자는 코너에 몰리고 겁에 질린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피해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피해자들은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모든 잘못을 자신의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도와줄 센터와 활동가는 많다. 부디 신고하고 꼭 지원받기를 바란다.”
텔레그램 그놈들, 결국엔 잡힌다
그들은 안 잡힐 거라고 믿었다. 그처럼 잔인하고 대담하게 행동한 이유는 딱 하나, 절대 못 잡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텔레그램은 치외법권이 아니다. 그곳에 숨어도 나쁜 놈들은 잡힌다. 수사에는 속도가 붙었다. 경찰은 현재 ‘텔레그램 추적 기술적 수사 지원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처음 접수하고 수사에 착수한 강원경찰청 관계자는 “여러 경로로 증거를 모아 가해자 범위를 좁히며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곧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잡힌 이들도 있다. 경찰은 지난달 초 기준 텔레그램 특정방의 운영자와 공범 16명, 아동 성착취물 유통·소지 사범 50명 등 모두 66명을 검거했다. 지난해 11월에는 텔레그램에서 불법 촬영물을 유통·판매해 2000여만원을 챙긴 30대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문제가 된 텔레그램방 133개에 대해서는 차단 조치가 이뤄졌다.
물론 이들이 적절한 수위의 처벌을 받고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는 “법원은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엄중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고 경고했고, 윤김지영 건국대 연구교수도 “텔레그램 사건은 음란물 유포죄가 아니라 반드시 성폭력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해 사례는 2차 가해를 우려해 독자가 n번방의 잔인성을 판단할 수 있는 수준으로 최소한도로 표현했습니다. 잠복취재를 유지하기 위해 기사는 익명 보도합니다.
특별취재팀(with 추적단 불꽃) onlinenew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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