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 사태, 터질 게 터졌다"…청년 "이게 공정이냐" 또 분노
건보 콜센터 파업…'제2 인국공' 되나
공단 "민간 위탁업체 전환 의무 없어"…명분·비용 모두 부담
취준생 "정규직이 他회사 직고용 요구하는 것이 말이 되나"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콜센터 근로자 940명이 직접 고용,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며 1일 파업에 들어갔다. 건보공단은 외부 위탁업체 근로자들의 직고용은 어렵다고 밝혔다. 파업 근로자들이 이날 강원 원주 건보공단 앞에서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직원 940명이 1일 파업에 들어갔다. 건보공단의 민간위탁업체 소속 근로자인 자신들을 건보공단이 직접 고용하라고 주장하면서다. 건보공단이 압박을 못 이겨 직고용을 결정하면 ‘제2의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규모 파업으로 이날 건보공단 고객센터는 전화 연결이 안 되거나 늦어지면서 건보 가입자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소속 조합원 940명은 이날 파업을 시작하고 강원 원주 건보공단 본사 앞에서 집회를 벌였다. 940명은 전체 고객센터 직원 1623명의 58%에 해당한다. 건보공단으로부터 고객센터 업무를 위탁받은 11개 업체 중 10곳이 파업에 참여했다. 메타넷엠플랫폼, 유니에스, 효성ITX, J&B컨설팅, 제니엘, 휴넥트, KTis, 윌앤비전, 이케이맨파워, 한국코퍼레이션 등이다. 파업에 동참하지 않은 곳은 그린씨에스 한 곳이다.
노조 측 김숙영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장은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에 따르면 연속성 있는 업무를 수행하는 민간위탁업체도 정규직 전환 대상”이라며 “2019년부터 공단 직고용을 요구해왔는데 공단이 계속 무시해서 파업이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건보공단은 “공단 소속 기간제 근로자 등은 명백한 정규직 전환 대상이지만 민간위탁업체 근로자를 직고용하는 것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며 노조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
공기업 입사를 준비 중인 청년 등은 건보공단의 직고용에 반대하고 나섰다. 지난달 2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직원의 공단 직고용을 반대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왔으며 나흘 만에 3000명이 넘는 동의 의견이 달렸다.
건보 가입자의 불편은 커지고 있다. 서울 마포구에서 자영업을 하는 정모씨는 “건강보험료 관련 문의를 하려고 오전 10시부터 고객센터에 다섯 번 넘게 전화를 걸었는데 연결이 안 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건보 위탁업체 940명 "정규직화 정책 따라 직접 고용해야"
“터질 게 터졌다.”
1일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조합원 940명이 파업에 들어간 것을 두고 노동계 안팎에서 나온 평가다. 파업을 벌인 940여 명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민간 위탁업체 소속으로, 현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에 따라 공단이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작년 6월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 이후 정규직 전환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커지면서 한동안 정규직화 요구가 잠잠했다. 하지만 직고용을 원하는 수요는 여전히 많았기에 그간 억눌렸던 목소리가 터져나온 것이란 평가다.
전문가들은 건보공단 고객센터 직원은 사기업의 ‘정규직 직원’이란 점에서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의 취지에서 벗어나고 사기업에 직원 유출을 강제할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정부가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를 겪고도 민간 위탁업체의 직고용 문제에 대한 명확한 지침 없이 방치한 탓에 현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건보공단의 위탁을 받아 건보 관련 문의·상담 서비스를 하는 고객센터 직원들은 2019년 말부터 ‘공공기관 직접 고용’을 요구해왔다. 고객센터와 공단 간 협업 업무가 많은 데다 가입자 개인정보를 다루기 때문에 보안 차원에서도 직고용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국민연금공단 근로복지공단 등 다른 공공기관은 2019년 고객센터 직원들을 직고용했는데 “왜 우리만 안 되느냐”는 여론도 많았다.
하지만 건보공단은 “직고용은 어렵다”고 선을 그어왔다. 우선 공공기관 소속 기간제 근로자와 같은 비정규직은 명백한 정규직 전환 대상이지만 민간 위탁업체는 전환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정규직화 정책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도 “민간 위탁업체 직고용 문제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문제”라고 밝혔다. 경영상 어려움도 컸다. 고객센터 전체 직원은 1623명에 이르러 건보공단 전체 임직원(1만6240명)의 10%에 이른다. 이들을 전부 직고용하면 비용 부담이 너무 커진다는 것이다. 작년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기관 경영 상황이 한층 불안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설명으로 고객센터 직원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기엔 역부족이었고 결국 파업 사태로 이어졌다.
파업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특히 청년층의 불만이 강하다. 지난달 29일엔 청와대 국민게시판에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직원의 공단 직고용을 반대합니다’는 글이 올라왔는데, 나흘 만에 3000명 넘는 동의 의견이 달렸다.
건보공단 입직을 4년째 준비하고 있는 취업준비생이라고 소개한 글쓴이는 “건강보험공단의 공정한 채용 절차를 무시하며 사기업 정규직 직원이 직고용을 요구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간 위탁업체는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 대상도 아니며 돼서도 안 된다는 얘기다.
채용 과정의 공정성에 대한 문제 의식도 크다. 수많은 청년이 경쟁 채용을 통해 공공기관 취업에 애쓰고 있는데 민간 위탁업체 직원 등은 그런 경쟁 과정도 없이 정규직이 되는 게 정당하냐는 지적이다.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채용 비리가 불거진 것도 청년의 분노를 높이는 요소다. 서울교통공사와 인천국제공항공사 등은 비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가족 채용이 다수 발견돼 감사원 감사를 받기도 했다.
공공기관 내부의 불만도 많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정당한 채용 과정을 통해 정규직으로 들어온 직원으로선 민간 업체에서 바로 직고용되는 걸 보면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영기 한림대 경영학부 객원교수는 “정부가 정규직 전환 대상과 기준에 대한 방침을 명확히 정하지 않은 채 ‘정규직 직원이 될 수 있다’는 기대만 부풀린 게 문제”라며 “이제라도 결자해지한다는 자세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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