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료 지원사, 리스계약 알선 후 이면계약
지원금 끊고 보증금도 안 돌려줘 피해 누적
리스료만 챙겨가는 금융회사 책임도 거론서울 동대문구 장한평 중고차 시장의 모습. 연합뉴스지난해 초
10년 정도 몰던 차량을 처분한 이모(
41)씨. 다음 자가용으로 벤츠 중고차량을 구입하기 위해 정보를 얻던 중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리스 매물'을 소개하는 글을 발견했다. 이씨는 리스 개념에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보증금을 내면 리스료 절반을 지원해 드립니다'는 문구에 확 끌렸다.
리스료 지원사인 A사에 보증금을 미리 내면, 금융회사와 리스 계약 시 A사가 매달 리스료
50%를 내준다는 것이었다. 고민하던 이씨는 A사를 통해 금융회사와 월
160만원을 납부하는 리스 계약을 맺었고, 별도로 A사에 보증금 2,
500만원을 내고 월
80만원의 리스료를 지원받기로 했다.
싸게 해준다는 말에 덥석... 피해만 수백억원
이씨는 1년간 A사로부터 매월 지원금이 꼬박꼬박 들어와 마음을 놓고 있었지만, 이달부터 갑자기 지원금이 뚝 끊겼다. A사에 연락했더니 "회사 운영이 어려워 지원금과 보증금 모두 줄 수 없다"는 무책임한 답변이 돌아왔다. 보증금 2,
500만원을 날리고, 갑자기 한 달에
160만원 리스료를 혼자 부담하게 됐다. 이씨는 "해지하려고 해도 위약금을 내라 하고, 매달 리스료를 내자니 너무 부담스러워 난감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일보가 접촉한 리스 피해자들에 따르면, A사는 중고차 리스 계약 시 차값의
30% 정도 되는 보증금을 내면 월 리스료 절반을 지원한다고 홍보했다. A사는 소비자가 금융회사와 무보증·고금리의 리스 계약을 맺도록 알선했고, 동시에 리스료 지원에 대한 이면계약을 체결했다. A사는 고객들에게 보증금을 돌려줄 시기가 찾아오자 지난해 말부터 순차적으로 지원금 지급을 끊었다고 한다.
그러자 전국
100여명의 피해자들은 단체 대화방을 개설해 대책을 논의 중이다. 피해자들은 각기 수천만원의 보증금을 이미 A사에 지급해, 피해액만 최소 수십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일부 수입차의 경우 보증금이 1억원에 달하는 경우도 있고 대화방에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들도 있어, 피해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
A사가 고객과 맺은 리스료 지원 계약서 일부. 독자 제공피해자 일부는 경찰에 A사 대표를 사기 혐의로 고발하기로 했다. 피해자를 대리하는 법무법인 송경의 정병욱 변호사는 "부당하게 취득한 금액이 5억원 이상이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죄에 따라 처벌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특경법상 사기죄는 이득액이 5억
~50억원이면 3년 이상의 징역,
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진다. 법적 대응이 예고되자 A사 대표는 피해자들에게 보증금 일부를 돌려줄테니 합의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리스료 지원 받기로 한 적 없다고 하세요"
중고차 리스료 지원 사기는 3년 전부터 반복적으로 저질러지고 있지만, 쉽게 근절되지 않고 있다.
2019년 로지오토리스, 지난해에는 자동차서점과 카메오가 보증금을 받은 뒤 리스료 지원을 끊어 피해를 양산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소비자 경보를 발령했고, 금융회사도 고객에게 리스료 지원사와 이면 계약이 있었는지를 미리 확인 중이다.
게티이미지뱅크그러나 이런 점을 이미 알고 있는 리스료 지원사들은 금융회사에 거짓말할 것을 소비자에게 종용한다. 금융회사로부터 "리스료 지원을 약속받은 이면 계약이 있느냐"는 확인 전화를 받으면 "아니다"라고 답하도록 사전에 교육시킨다는 것이다. A사를 통해 기아 카니발 차량을 계약한 정모(
43)씨는 "A사가 리스료 지원 계약을 한 적이 없다고 말하라며 신신당부했다"며 "조금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런 조건을 받아들였는데, 과욕을 부렸던 것 같다"고 후회했다.
금융회사들은 소비자들에게 미리 이면계약 여부를 질문해 아니라는 답을 받은 만큼, 정상적인 리스 계약이 체결된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B캐피탈 관계자는 "이면계약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해피콜로 본인에게 확인을 받는다"며 "고객이 지원사 존재를 언급하지 않으면 정상 계약이라고 판단해 승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리스계약 이득 본 금융회사는 책임 없나
일부 피해자들은 금융회사와 A사간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던 게 아닌지를 의심한다. 피해자 박모(
58)씨는 "(리스 본계약을 맺은) 금융회사 직원에게 물어보니, A사에게 중개 수수료를 지급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금융회사는 A사의 존재도 몰랐고 자신들의 책임도 없다는 입장이다. B캐피탈 관계자는 "중고차는 주로 개인 딜러나 제휴점을 통해 리스 계약을 맺는데, 금융사는 이 과정에서 중개·알선 대가로 수수료를 지급한다"며 "중개·알선 과정에서 이면계약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본사에선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C캐피탈도 "제휴점과 소비자간의 계약 과정에서 이면 계약이 발생한 사실을 인지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원청 격인 금융사가 하청 격인 리스료 지원사에 책임을 미루며 '꼬리 자르기'를 한다고 비판했다. 정병욱 변호사는 "소비자로부터 리스료를 계속 받고 있는 금융회사가 알선업체나 딜러에게만 잘못이 있다고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라며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금융회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금융당국은 3월부터 시행될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을 통해 금융상품 판매 대리인에 대한 금융회사의 관리 책임을 강화했지만, 허점은 여전하다. 한 금융회사 관계자는 "앞으로 금융회사가 제휴점 불완전 판매를 더 강하게 금지하겠지만, 제휴점의 제휴점(재하청)처럼 금융회사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선 언제든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소비자 주의도 필요하지만 중고차 딜러 및 중개사에 대한 관리감독이 강화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중고차 매매사원증은 8시간 교육만 받으면 누구나 발급 받을 수 있지만, 이들의 불법행위에 대해선 관리감독이 소홀한 만큼 보완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