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스터 영화 같은 '남산의 부장들', 이런 시대의 비극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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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스터 영화 같은 '남산의 부장들', 이런 시대의 비극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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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부장들’, 다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새삼스러운 비감

[엔터미디어=정덕현의 그래서 우리는] 이거 갱스터 무비 혹은 스파이 무비 아냐. 아마도 이 영화를 우리네 현대사를 모르는 이들이 본다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게다. 총이 등장하고, 도청은 물론 추격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팽팽한 권력 대결이 있고 정점에서 그 대결구도를 이용하는 독재자가 있다. 대통령과 중앙정보부장, 비서실장 같은 한 나라의 중차대한 정책들을 결정하는 이들이 등장하지만 그 하는 말들을 들어보면 마치 갱스터 무비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욕설이 난무하고 총을 꺼내 머리에 대고 위협하기도 하며 몸싸움을 벌인다.

이런 상황을 알고 있는 미국 측 인물이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이병헌)에게 ‘갱 영화’ 운운하는 대목은 그래서 흥미롭다.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나라에서 총이 일상적으로 꺼내지는 국정의 풍경이라니. 그런데 비극적이게도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물론 허구적 상상력이 더해지긴 했지만 우리에게 실제 벌어졌던 사건을 다루고 있다. 41년 전 궁정 안가에서 울려퍼진 총성.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총으로 쏴 시해한 10.26 사태가 그것이다.

영화는 혹여나 벌어질 수 있을 잡음들을 없애기 위해 실제 인물 대신 가상의 이름으로 대체했다. 김규평(이병헌)은 김재규이고 비서실장 곽상천(이희준)은 차지철이며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박통(이성민)’으로 불린다. 이미 10.26 사태가 여러 차례 다큐와 영화 등에서 소개된 바 있어 누구나 보면 익숙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이름을 이렇게 바꿔놓고 그 사건이 벌어지기 전 벌어졌던 일들과 인물들을 촘촘히 구성해 채워 넣자 <남사의 부장들>은 진짜 갱스터 무비와 스파이 무비의 장르적 색깔을 드러낸다.

‘혁명’을 꿈꾸며 군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박통을 보좌하며 함께 걸어온 김규평은 그 장기집권이 오래가지 못할 거라는 걸 직감한다. 중앙정보부장으로서 미국으로부터 압력을 받고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독재타도’와 ‘민주화’의 목소리들이 무력으로 눌러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재자의 마음은 더 오랜 집권에 가 있었고 그 주변에는 곽상천 같은 군 강경파의 달콤한 충성이 있었다. 수백만의 시위대들도 탱크로 밀어붙이면 된다고 하는 얼토당토않은 말들이 무시로 오가고 또 그걸 지시하는 집권자. 게다가 그 독재자는 2인자를 키워주는 듯 이용하곤 내버린다. “임자 옆엔 내가 있잖아. 임자 맘대로 해.”라는 대사로 집약되는 이 독재자는 알아서 충성하라며 일을 시키지만(심지어 사람 죽이는) 그렇게 일이 끝나고 나면 토사구팽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아픈 현대사가 말해주듯이 영화는 이미 그 결론이 다 나와 있다. 박통은 그렇게 시해되고 곽상천도 그 자리에서 죽는다. 박통을 시해한 김규평은 사형 판결을 받고 이 사건을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실권을 장악한 전두혁(서현우) 보안사령관은 신군부 독재를 이어간다. 워낙 영화 같은 이야기인데다, 영화가 이를 갱스터 무비 같은 장르적 색깔을 더해 보여주고 있어 아는 이야기인데도 시종일관 긴장감을 잃지 않는 영화.

하지만 그럴수록 새삼스런 비감이 느껴진다. 한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최고의 권력자와 그 권력을 주무르던 2인자들의 이야기가 이토록 갱단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는 게 그렇다. 그건 영화적 각색 때문이 아니라 당대 시대의 현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러니 당대를 살았던 국민들은 얼마나 더 비극적인 삶을 겪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영화 <남산의 부장들>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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