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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보유자는 '줍줍'하지만, 무주택자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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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주간 논평] 어떤 부동산 정책이 필요한가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19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서울 쪽의 고가 주택, 고가 아파트 중심으로 가격이 상승하는데, (…) 전국적으론 부동산 가격이 오히려 하락했을 정도로 안정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 후 강력한 대출규제를 내세운 '12·16 부동산종합대책'이 전격 발표됐다. 2020년 1월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은 "급격한 가격 상승이 있었던 일부 지역은 원상 회복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다음 날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과 김상조 정책실장은 각각 CBS와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주택의 "매매 허가제"를 말하고 "강남 가격 안정이 1차 목표"라고 발언했다.

아파트 가격 급등, 정부 대책은 약하고 늦어

이런 발언이 연이어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아파트 가격이 특히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너무 올랐기 때문이다. KB국민은행 시세통계에 따르면 2017년 5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2년 반 동안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이 약 3억 원 올라 현재 거의 9억 원에 다다랐다. 2019년 1월 표본 변화로 시계열 단절에 유의해야 하지만, 한국감정원의 부동산통계로는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이 2억7000만 원, 강남구 5억9000만 원, 서초구 4억1000만 원, 송파구 3억4000만 원 정도 올랐다. 반면 비수도권은 932만 원 인상됐다. 지방 집값은 안정화됐지만 서울과 강남은 그렇지 않았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이러한 가격의 오름폭을 둘러싸고 경실련과 정부 간에 격한 설전이 오갔다. 어떤 통계를 봐도 2년 반 동안의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 상승 폭은 한 달에 1000만 원씩 저축한 것보다 크다. 그러하니 꼭 투기세력이 아니더라도 30대 청년을 포함한 무주택자들은 불안감에 못 이겨 '영혼까지 끌어모아' 아파트를 구입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지나친 가격 상승은 무엇 때문인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저금리와 과잉유동성이다. 아파트 가격이 급등한 참여정부 시기 기준금리는 3.25~5%였는데 지금은 참여정부 시기의 기준금리 수준보다 약 2~3% 정도 더 떨어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벗어나려는 선진국들의 양적 완화 조치로 인한 막대한 부동자금의 양산이 여기에 한몫했다. 국내 단기 부동자금(협의통화+MMF. CMA 제외)이 평잔(계절조정) 기준으로 참여정부 시기 77조8000억 원 증가했으나 현 정부에서는 85억8000만 원 늘어났다. 금리가 크게 떨어졌으니 이는 당연지사다. 또한 그 이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으나 외환위기 이후 가계금융 자유화로 '전 국민의 재테크'가 가능한 제도적 기반이 구축됐다. 그러니 전 국민을 투기꾼으로만 치부할 수도 없다. 따라서 '탐욕' 같은 도덕적 설파의 효과는 거의 없을 것이다. 저성장과 고령화로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노후 보장이 불확실한 현실에서 '부동산(강남) 불패신화'의 여파로 아파트를 안전자산으로 여기고 있으니 부동자금은 생산적인 곳으로 가지 못하고 서울(강남) 부동산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는 '빚내서 집 사라'며 각종 규제와 금융접근을 완화했다. 현 정부는 시장 안정화를 위해 18차례의 부동산 대책을 차례로 내놓았다. 대체로 강도가 약하고 타이밍도 늦은 핀셋 위주의 대책으로 일관해 사실상 가격이 심하게 오르내리는 것을 관리하는 정도에 그쳤다. 한편 수도권 3기 신도시 건설, 광역급행철도(GTX) 건설 등 정부 차원의 각종 개발계획들은 땅값을 올리는 주범이자 막대한 토지보상비의 일부가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게 만들어 다시 가격 상승을 유발하는 격발자이기도 하다. 시장은 올해 안으로 적게는 32조 원, 많게는 45조 원 규모의 역대 최고 토지보상비가 풀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러한 개발계획들은 지역균형발전과도 배치된다. 이처럼 가격 급등기에 막대한 보상금을 수반하는 대규모 공급대책은 의도와는 달리 참여정부 시기처럼 자승자박이 될 수도 있다.

대출규제와 양도소득세 인하는 조심해야


그렇다면 어떤 대책들이 필요한가? 대출규제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하지만 이것이 지나치면 현금보유자는 알짜를 '줍줍'하지만, 무주택자들은 집을 살 수 없다. 또한 거래절벽을 초래하니 가격은 안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무주택자에 대한 대출 억제는 전세수요를 증가시켜 전세가의 고공행진을 유발할 수 있다. 그리고 전세가 막히면 반전세로 이어져 주거 불안정을 야기할 수도 있다. 만기 일시 상환이나 소득을 감안하지 않고 담보 가치에만 의지하는 대출을 차단하고 장기의 원리금 균등 상환 방식과 이에 조응하는, 가령 담보대출에 상응하는 채권을 발행하는 균형 원칙 또는 채권 만기와 일치하는 자금 조달의 원칙을 가지고 작동하는 일정한 공적 통제 하의 주택금융제도를 운용해야 한다.

거래세와 양도세는 다소 예외가 있지만 실가로 과세된다. 공시가격으로 과세되는 보유세도 실가로 과세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조세 부담이나 저항을 감안하여 시장 가치와 과세 가치를 분리할 필요가 있다. 이는 부동산 가치는 시장 가치로 평가하고 과세 가치는 조세 형평성을 반영하여 시장 가치에 일정한 현실화율을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단순화하여 현실화율 상향을 통해 보유세 부담을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양도소득세 인하는 시세차익을 '먹튀'한다는 비판적 시각이 있어 조심해야 한다.

소득주도·공정성장 기조에 맞춘 선제적 대응 필요


현 정부가 임대사업등록자들에게 제공한 양도소득세 혜택과 임대의무 기간을 원래대로 되돌림으로써 다주택자가 보유한 물건들을 장기간 묶어놓는 효과를 차단하고 단기적으로는 시장에 매물 공급을 원활히 할 필요가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싱가포르처럼 일정한 규제가 수반되는 고밀도 개발을 통해 공급의 탄력성을 제고하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

소득주도, 혁신, 공정성장은 한국경제의 기존 패러다임을 전환하겠다는 정책적 의도 위에서 세워졌다. 이와 견줄 수 있는 미국 뉴딜은 장기의 원리금 균등 상환과 이에 조응하는 주택금융제도, 노조 강화, 금융자본 통제 등 삼자를 통해 자본과 노동 간 권력 균형을 추구한 것이다. 현 정부의 성장정책이 이러한 담대한 이상을 염두에 두었다면 자산시장의 안정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부동산 대책들은 긴 호흡에 따라 누구나 공감하는 원칙을 세운 것이 아니라 핀셋 처방과 대증요법에 기대어 있었다. 신년회견에서 대통령은 "효과가 다했다고 판단되면 더욱 강력한 대책을 끝없이 내놓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담대한 선제적인 대응, 즉 현재 성장정책의 의도에 부합하는 전면적인 부동산 안정화 대책을 설계하고 내놓는 것이다.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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