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하면 삶의 질 좋아질까?…노동시간 더 길어질 뿐 반론도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창의성은 즉흥적인 만남과 임의로 이뤄지는 토론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대면 의사소통과 협업이 부족해지면 개인 창의성은 물론 기업 생산성이 저하될 수 있다는 뜻이다. IBM은 전체 직원 40%가 참여하는 재택⋅원격근무를 1993년 선제적으로 시행했지만 2017년 폐지했다. ‘일은 사무실에 한다’는 관성 속에 경영진도, 근로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도입 목소리가 컸고, 뒷받침할 기술도 충분했지만 그동안 재택근무가 널리 확산하지 못한 이유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은 이런 분위기를 한 번에 바꿨다. 각종 이동 제한 조치로 강제 재택근무에 불이 붙었는데, 코로나19가 종식돼도 상당수는 사무실로 돌아가지 않을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 재택근무가 일반적인 근무 형태로 자리 잡으면 정말 생산성은 높아지는지, 근로자 삶의 질이 개선되는지, 부동산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지 궁금한 대목이 적지 않다. 한국은행이 13일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재택근무 확산: 쟁점과 평가’란 보고서를 냈다.
이에 따르면 올해 들어 세계 각국 기업에서 재택근무가 큰 폭 증가했다. 미국과 유럽은 코로나19가 대규모 확산 조짐을 보이던 4~5월 전체 근로자의 약 절반 정도가 집에서 일했다. 한국도 재택근무를 포함한 유연 근무 참여율이 지난해 10.8%에서 올해 14.2%로 상승할 전망이다. 한은 관계자는 “재택근무는 이전에도 늘어나는 흐름이었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올해 급격히 늘었다”며 “소비에서 온라인 쇼핑이, 기업 활동에서 원격회의가 늘어난 것처럼 재택근무 역시 코로나19가 진정돼도 추세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강제 시행이지만 일단 재택근무를 하면서 경영진과 직원의 인식이 많이 개선됐다는 점,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자해 인프라를 구축했다는 점, 기대했던 것보다 재택근무가 잘 작동했다는 점 등이 근거다. 다만 당장 모든 근로자에게 적용하기보다는 집과 사무실을 유연하게 활용하는 하이브리드 형태의 재택근무가 많아지리란 관측이다.
한은은 재택근무가 반드시 생산성 향상과 연결되는 건 아니라고 봤다. 통근시간을 줄이고, 업무 집중력이 좋아지는 건 생산성 제고 요인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고용 관련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하지만 근무 태만을 초래할 수 있고, 이에 따라 직원 관리 비용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구성원 간 대면 상호작용이 줄어 지식이 잘 전수되지 않고, 창의성 발현이 어려워지는 것도 생산성 저하 요인이다. 한은 관계자는 “평균 출퇴근 시간이 길고, 정보기술(IT) 인프라가 잘 발달한 나라의 경우 생산성 제고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직원의 삶의 질 향상 여부 또한 양면이 존재한다. 통근시간 절감, 유연한 업무 환경 등은 장점이지만 주거지와 근무 지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실제 노동시간이 도리어 증가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재택근무가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려면 가정 내 근무·주거 공간이 잘 분리되고, 돌봄 서비스와 학교의 정상화가 필수적이란 게 한은의 분석이다.
재택근무 확산이 대도시 상업 건물 수요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관심사다. 임대료가 비싼 대도시 지역에서의 사무실 필요면적이 줄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동산 서비스 업체 쿠시먼앤웨이크필드는 코로나19 발생 전 10.9%였던 세계 사무실 공실률이 2022년 2분기 15.6%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인터넷 뱅킹 활성화로 인한 은행지점 축소, 온라인 배송 확대로 인한 대도시 마트 축소 등과 유사한 현상이다.
하지만 한은은 기업 입장에서 비용 절감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집적경제 효과, 소속감 유지 등을 위해 대도시 내 상업용 건물을 당장 없애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직원 입장에서는 직장·주거 근접 필요성이 줄어 주거비가 저렴한 지역으로의 이주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대도시 거주의 주된 요인이 자녀 교육이나 생활 인프라인 만큼 이주 수요가 늘어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봤다.
한은 관계자는 “많은 기업이 재택근무를 활용하는 업무 범위를 점차 넓히면서 최적 재택근무 조합을 찾아 나갈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근무시간보다는 성과를 중시하는 문화도 자리 잡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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