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5천만 원’ SKY캐슬은 현실이었다
"간단하게 도움받으면 아이 고생 안 시킬 수 있잖아요. 잠 못 재워가면서 시켰던 게 너무 안타깝더라고요. 진작 알았다면 그 시간에 잠이라도 더 재우고 공부나 하라고 했을 텐데…."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학부모가 인터뷰 도중 건넨 말이다. 어디서, 무슨 도움을 받는다는 말인지 물었다. 학부모는 인터뷰가 끝나고 카메라가 꺼진 뒤 한참을 망설이다가 대치동의 한 컨설팅 학원을 알려줬다.
1년 컨설팅 비용 5천만 원.. "학부모 총회부터 참석"
학원에 상담 예약을 잡았다. 미리 알려준 주소로 찾아갔지만 학원 간판을 찾을 수 없었다. 출입문도 잠겨 있었다. 문 앞에서 전화를 걸었더니 예약을 잡았는지 확인한 뒤 문을 열어줬다.
이 학원 원장은 서울의 한 대학 입학사정관 출신으로 알려졌다. 대학에서 어떤 학교 생활기록부를 원하는지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학원에서는 학교 생활기록부에 기록되는 모든 것을 관리해준다. 전공 적성에 맞는 동아리와 봉사활동을 지정하고, 대회 출전도 지도한다. 선생님이 써야하는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직접 써준다고 했다. 요즘 "다들 써오라고 한다"면서.
그리고 '맘케어'라는 특별한 연간 관리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1년 관리 프로그램 5천만 원. 말 그대로 입시 전문가인 엄마가 한 명 더 생기는 것이다. '맘케어'의 시작은 학기 초 학부모 총회 때부터 시작된다.
"학부모 총회 때 어머니랑 같이 가요. 어떤 분위기인지 교장은 어떤 마인드를 갖고 이 학교를 움직이는지 알아야 도움이 돼요. 또 담임 선생님을 보는 거죠. 이 담임은 무엇을 싫어하겠구나 간파를 하고 와요." (A입시컨설팅 학원 상담 실장)
학원에서 학생부에 들어가는 내용을 대신 써줄 수는 있지만 결국 최종 작성자는 학교 선생님이다. 그 선생님이 어떤 성향인지를 잘 파악한 뒤 그것에 맞게 컨설팅을 하고 학생부에 들어갈 보고서를 써준다는 것이다.
학원 측은 또 기본 관리에 5천만 원일 뿐, 대회 출전이나 소논문 작성에 드는 비용은 추가된다고 설명했다. 외부 대회 수상 내역이나 소논문 활동은 학생부에 기재할 수 없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활동을 해나가는 과정은 쓸 수 있다고 자신했다. 특목고, 과학고, 영재고 학생들은 그런 내용을 써서 학생부를 차별화하는 것이라며 그런 내용을 문제 되지 않게, 하지만 대학 입학사정관 눈에는 잘 뜨이게 쓰는 것이 학원의 역할이라고 했다.
애플리케이션 개발, 발명, 논문 등등.. "수행평가 다 해드려요"
목동의 또 다른 입시 컨설팅 학원을 찾았다. 대치동에 본점이 있고 최근 목동에 지점을 낸 곳이었다. 이곳에선 비교과 영역을 대폭 축소한 교육부의 정책을 언급하며, 더욱 전문가의 관리가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대회 수상 내역이 1개로 줄어들었고, 교과 세부능력 특기사항 기재 분량도 주는 만큼 핵심적인 내용만 추려 써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상담을 4,700여 건했는데 입학사정관들이 좋아할 만한 학생부는 많지 않아요. 그 이유는 '우리 아이의 생활기록부는 선생님이 알아서 써주시겠지'라는 착각, 버리셔야 합니다." (B 입시 컨설팅 학원 원장)
이 학원에서는 각 분야의 전공 선생님 60여 명을 보유하고 있다. 각 분야의 전공 선생님들이 동아리나 봉사 활동 보고서, 독서 실적 작성 등 비교과 활동은 물론이고 각 과목의 수행평가도 밀착 관리해준다. 과목별 수행평가가 나오면 자료 조사부터 보고서 작성까지 함께 진행하고 UCC 제작이나 애플리케이션 개발도 관련 전공자와 쉽게 처리할 수 있다고 한다.
1회 컨설팅 비용이 30만 원. 1년 관리에 보통 24회분의 비용이 들어간다며 학원 측은 24회에 540만 원을 제시했다. 이곳에서도 소논문을 쓰거나 외부 대회에 나갈 경우 별도로 5~6회의 컨설팅이 추가로 들어간다고 덧붙였다.
'깜깜이 전형' '금수저 전형' 또는 '대학 마음대로 전형'
요즘 학부모들은 학기가 끝날 때마다 자녀의 학생부를 들고 학원으로 향한다. 학원에서 전공 적성에 맞는 대회와 동아리 활동은 무엇인지, 독서 활동은 어떻게 채울지, 선생님이 써준 교과 활동과 진로 활동 내역 등에 미흡한 부분은 없는지 등을 점검한다. 학교생활을 담으라는 학생부에 대해 학원에 가서 상담하고 채워넣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달 발표한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에서 학생부에 소논문 기재, 발명 실적 등의 기재를 금지하는 등 정규 교육과정 외 비교과 영역은 대입에 반영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정부 발표를 비웃듯, 컨설팅 학원들은 "기재가 금지된 내용도 잘 녹여서 써주겠다"며 학부모들을 유혹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정부가 대책을 내놓아봤자 상황이 크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대학 때문이다. 지난달 교육부가 13개 대학의 학생부 종합전형 실태를 조사한 결과 기재 금지 사항을 어긴 경우가 지난해에만 366건에 이르렀다. 하지만 대학이 불이익 처분을 한 것은 134건뿐, 대부분 문제를 발견하고도 감점이나 부적격 처리를 하지 않았다. 2008년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된 지 10년이 넘도록 '깜깜이 전형', '금수저 전형'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지만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스펙이 매우 우수한 학생, 속은 그렇지 않은데요. 대학이 이것을 제대로 가려낼 수 있을까요? 가려내는 것 불가능하거든요. 심지어 겉으로 드러나는 자기소개서만 해도 표절이 의심되는 사례가 아주 많았다는 것이 이번 11월 초 교육부에서 발표한 자료에 드러났잖아요. 그런 것들을 대학에서 여태까지 걸러내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습니까?" (이범 교육평론가)
학종은 로또다
서울의 한 일반고를 졸업한 최민성(가명) 씨는 고등학교 내신 1.3등급을 받았다. 또, 교내 대회 수상 60개, 봉사활동 296시간 등 학생부 32장도 채웠다. 하지만 최 씨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한양대, 건국대 등 6개 대학에 수시 모집 학생부 종합전형에서 모두 불합격했다. 아예 서류 전형에서 떨어진 대학도 있었다.
"내신이 1.3등급이라는 것은 3학년까지 절대적으로 최상위를 유지한 학생입니다." 최 씨의 학생부를 진단한 입시 전문가,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이렇게 말을 뗐다. 하지만 곧 "학교 선생님들이 기재한 항목들에 약점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분량 자체도 적었을 뿐 아니라 대부분 단순 사실 나열에 그쳤다는 것이다. "수업 시간에 졸지 않는다", "무단 횡단을 하지 않는다" 같은 내용처럼 말이다.
실제로, A 학생의 합격 사례와 비교하니 차이는 더욱 극명했다. A 학생의 학교생활기록부에는 수업시간에 이루어진 A 학생의 발표와 질문 내용, 작성한 보고서 등이 상세하게 기술돼 있었다. 법률가를 꿈꾸며 꾸준히 판례 분석을 통해 법에 대한 이해력을 높였다든가, 외국인을 위한 영어로 된 관광 안내서를 만들었다는 내용 등도 눈에 띄었다.
어떤 학교를 들어가는지, 혹은 어떤 선생님을 만나느냐에 따라 학생부 수준과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학생부 종합전형에 불합격한 학생은 물론이고, 합격한 학생조차 '왜 붙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대부분 대학은 학생부를 통해 학업 성취도와 인성, 전공 적합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학생을 판단한다고 말할 뿐,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는다.
상황이 이러니 불안한 학부모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또다시 사교육에 기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운이 나빠' 좋은 학교, 좋은 선생님조차 만나지 못했는데 고액의 입시 컨설팅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학생들은 어디에 기대야 할까. 정부가 이 의문에 대한 해법을 찾지 않는다면 최 씨와 같이 잠재력을 갖추고 노력도 했지만 실패한 사례는 계속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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