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게임업체들이 중국산(産) '짝퉁 게임'에 법적 소송이라는 강경 카드를 꺼내 들었다. 국내 게임사가 중국을 상대로 싸움을 걸고 나선 건 상당히 이례적이다. 중국 짝퉁 게임은 2000년대 초반 한국 게임업체가 중국 시장에 진출할 때부터 불거진 '고질병'이다. 하지만 중국이라는 세계 최대 게임 시장을 잃을까 봐 우리 업체들은 눈치만 봤다. 짝퉁 게임에 대해 알면서도 못 본 척하는 게 일종의 관행이었다. 법적 소송도 마찬가지였다. 모바일 게임은 보통 평균 수명이 6개월~1년에 불과하지만 소송전은 2~3년이 걸린다. 승소하더라도 원작 게임은 이미 시장에서 사라진 뒤고, 얻을 게 아무것도 없었다.

옷만 다르고 똑같네, 어느 쪽이 한국 게임? - 중국 게임 업체 유엘유게임즈의 '아르카' 광고 화면(오른쪽)과 국내 게임사 스마일게이트 '로스트아크'의 이미지(왼쪽). /스마일게이트·유엘유게임즈

장갑, 넥타이까지 비슷 - 크래프톤 '배틀그라운드'의 대표 이미지(왼쪽)와 중국 넷이즈의 '황야행동' 이미지(오른쪽). /크래프톤·넷이즈

고글도 똑같이 쓴 대장장이, 어느쪽이 중국게임? - 넥슨의 '다크어벤저3'에 등장하는 대장장이(왼쪽)와 중국 업체 4399코리아의 '기적의 검' 유튜브 광고에 나온 대장장이 캐릭터(오른쪽). /넥슨·유튜브

하지만 지금은 강경 입장으로 바뀌었다. 베끼는 정도가 임계점을 넘어설 정도로 심해졌다. 또 중국이 최근 3년간 한국 게임에 신규 허가증(판호·版號)을 내주지 않은 것도 국내 게임업체가 태도를 바꾸는 계기가 됐다. 게임업체 관계자는 "중국은 이미 '잃어버린 시장'이 된 지 오래여서 더 이상 눈치 볼 것도 없다"며 "원작 게임이 글로벌 시장에서 짝퉁과 경쟁해야 하는 웃지 못할 일도 많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소송 칼' 빼든 韓 게임사들

넥슨은 조만간 중국 게임업체 4399코리아(중국 업체 '4399'의 한국법인)를 캐릭터 이미지 무단 도용 혐의로 고소할 계획이다. 4399코리아의 인기 모바일 게임 '기적의 검' 유튜브 광고에 등장한 대장장이 캐릭터가 넥슨의 '다크어벤저3' 대장장이와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다. 실제 두 캐릭터는 백발 꽁지머리에 고글을 착용하는 등 비슷한 외모를 하고 있다. 넥슨 관계자는 "다크어벤저3의 캐릭터 생김새를 그대로 본떠 만든 영상으로 보인다"며 "지난 9일 4399코리아에 저작권 침해를 중단해달라는 공문을 발송했으나, 여태껏 답변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넥슨이 지난 2017년 중국에서 자사 인기 게임 '던전앤파이터(던파)'의 짝퉁 게임을 고소한 이후 두 번째 법적 대응이다. 당시 넥슨은 법원에서 던파의 짝퉁 게임인 '아라드의 분노'를 서비스한 업체를 상대로 서비스 금지 처분을 받아냈다.


위메이드는 국내 업체 중 중국과 법정 싸움에 가장 적극적이다. 인기 게임 '미르의 전설'(중국명 열혈전기) 시리즈를 개발한 이 업체는 37게임즈·킹넷·샨다게임즈 등 중국 기업과 소송을 벌이고 있다. 중국에서 '전기류'라고 불리는 장르를 양산할 정도로 인기를 끄는 만큼, 짝퉁 게임으로 인한 피해도 크다. 지난 2016년부터 소송전을 시작한 위메이드는 1400여개의 짝퉁 게임을 적발해 애플 앱스토어에서 퇴출시켰다. 지난 8일에는 중국 37게임즈가 개발한 '전기패업 모바일'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에서 1심 승소 판결을 받았다. 이 밖에도 현재 위메이드는 다수의 중국 업체를 대상으로 40여건의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총쏘기 게임 '배틀그라운드'로 유명한 크래프톤은 지난해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지방법원에 중국 대형 게임사 넷이즈를 상대로 한 소송을 제기했다. 중견 게임사 스마일게이트는 지난 6월 자사 이미지를 표절한 중국 유엘유게임즈에 공식 항의했다. 이 업체가 출시한 모바일 게임 '아르카'의 광고에서 스마일게이트 '로스트아크'의 여성 캐릭터 이미지를 약간의 수정만 하고 사용했기 때문이다.

◇누적 손해만 수십조원, 업계 "정부가 나서야"

중국의 짝퉁 게임은 중국 현지를 넘어 국내 안방시장까지 위협하고 있다. 지난 8월 중국 게임업체 레인보우홀스가 개발한 게임 '레전드 오브 블루문'은 위메이드의 '미르의 전설2'를 표절했다는 이유로 국내 앱장터에서 퇴출당했다. 하지만 이 업체는 도리어 "부당하다"며 국내 이용자에게 페이팔을 이용한 우회 결제 경로를 안내하고 있다. 넥슨의 캐릭터를 표절한 혐의를 받는 4399코리아의 '기적의 검'도 국내 구글플레이 게임 매출 순위에서 5위권 안에 드는 인기 게임이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 회장은 "지난 20년 동안 중국 짝퉁 게임에 따른 한국 게임산업의 피해 규모가 얼마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정부가 나서서 파악해야 하는데, 제대로 알아보려는 시도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위메이드 관계자는 "우리 회사는 '미르의 전설' 단일 게임에 대한 표절 문제로만 이미 4조~5조원에 달하는 피해를 본 것으로 추정된다"며 "우리나라 전체로 보면 수십조원의 피해를 입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개별 업체의 소송전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결국 정부 차원의 조치가 나와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짝퉁 게임을 발견해서 어렵게 앱장터에서 퇴출시켜놓으면, 비슷한 게임 여러 개가 또 올라와 있다"며 "외교부와 문체부가 나서서 중국에 공식적인 항의를 하고, 짝퉁에 대한 공동 대응 지침을 내놓는 등 근본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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