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연방대법원 가나…20년 전 악몽 재연 우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개표가 한창 진행되는 와중에 일방적으로 승리 선언을 하고 연방대법원행을 공언하면서 승자 확정에만 36일이 걸린 2000년 대선의 악몽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새벽 입장 발표를 통해 승리를 선언하면서 "우리는 연방대법원으로 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개표가 중대한 사기라고 비판하면서 "우리는 모든 투표가 중단되기를 원한다"고 했다.
펜실베이니아주를 비롯해 핵심 경합주의 개표가 한창 진행 중인 와중에 연방 대법원에 개표 중단을 요구할 방침을 밝힌 것이라고 뉴욕타임스(NYT) 등 미 언론은 전했다.
개표 현황상 자신이 앞서는 시점에 승리선언을 한 뒤 이후 이뤄지는 개표에 대해서는 문제를 삼겠다는 식이다.
펜실베이니아를 비롯한 핵심 경합주에서 우편투표 개표를 통해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가 역전할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편투표에 대해서도 줄곧 별다른 근거 없이 사기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근거로 소송을 제기할지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어떻게 연방대법원에 어필할지는 분명치 않다"면서 "적절히 기재가 되고 시간 내에 제출된 투표용지 개표를 중단하도록 각 주(州)에 강제하는 법적 사례가 없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통신도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부분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면서 사건이 하급심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연방대법원으로 직행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전문가를 인용해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전 에이미 코니 배럿 연방대법관을 지명, 연방대법원을 6대3의 보수 우위로 재편한 상태다. 대선 결과를 연방대법원에 가져갈 경우에 대비, 사전에 유리한 구도를 짜놓은 셈이다.
앨 고어(왼쪽)와 조지 W. 부시
[AFP=연합뉴스]
미국은 이미 2000년 개표 결과가 연방대법원으로 가는 악몽을 겪었다.
2000년 11월 7일 치러진 대선 당일 미국의 주요 언론은 저녁 8시께부터 25명의 선거인단이 걸린 플로리다주에서 앨 고어 민주당 후보가 승리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개표과정에서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와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는 것으로 나타나자 다시 부시를 플로리다 승자로 전망하면서 당선이 유력하다고 번복했다.
결국 8일 새벽 고어는 부시에게 전화를 걸어 패배를 인정했다.
하지만 플로리다에서 부시와의 격차가 줄어들자 고어는 한 시간 뒤 다시 부시에게 전화를 걸어 패배 인정을 취소했다. 역대급 혼란의 시작이었다.
결국 플로리다주 대법원의 결정에 따라 수작업으로 개표가 시작됐다. 부시 측이 반발하면서 지리한 법정 공방이 이어지고 한 달 넘게 승자가 확정되지 않는 상황이 벌어졌다.
연방대법원의 수개표 중단 결정은 12월 12일에 나왔다. 고어는 다음날 대국민 연설을 통해 부시의 승리를 인정했다.
고어는 "조금 전에 부시와 통화하고 43대 대통령이 된 것을 축하했다. 그리고 이번엔 또 (번복을 위해) 전화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한 뒤 승복을 선언했다.
36일간 미국을 뒤흔들었던 혼란의 드라마에 종지부를 찍은 순간이었다.
존 F. 케네디 민주당 후보와 리처드 닉슨 공화당 후보의 1960년 대선 때도 부정선거 논란이 있었으나 법정공방으로 비화하지는 않았다.
케네디는 당시 전체 투표소에서 불과 12만 표밖에 더 얻지 못했으나 303명의 선거인단을 확보, 219명을 얻은 닉슨을 이겼다.
그러나 공화당에서는 케네디가 매우 근소한 표차로 이긴 일리노이주와 텍사스주에서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만약 텍사스와 일리노이 재검표를 통해 닉슨이 선거인단을 가져가면 승자가 뒤바뀌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닉슨은 불복하지 않았다. 닉슨은 이후 1968년 대선에서 승리해 대통령이 됐다가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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