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몸 차갑게 하고 덜 먹어야 오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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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몸 차갑게 하고 덜 먹어야 오래 산다

보헤미안 0 472 0 0

픽사베이 제공


2016년 미국 알버트아인슈타인의과대학에서 당뇨약 메트포르민으로 노화지연약물 임상시험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필자는 이 약물을 구해 복용할 수 없을까 궁리를 해봤다. 여러 연구결과를 읽어보니 효과는 뚜렷하고(특히 수명연장과 암예방에서) 부작용은 미미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 하는 전문의약품이라는 게 문제였다. 당뇨가 없는 필자로서는 안타까운 노릇이다. 아는 사람을 통해 약을 구해볼까도 했지만 차마 시도하지는 못했다. 나 좋자고 남을 범법자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미국 연구진의 임상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와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이 나더라도 앞으로 수년 뒤의 일일 것이고 이게 또 한국까지 오려면 필자가 환갑이 넘어서야 ‘합법적으로’ 메트포르민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그 나이에 복용해도 어느 정도 효과는 보겠지만 아쉬운 노릇이다.

그런데 최근 미국 하버드대의 저명한 노화학자 데이비드 싱클레어 교수의 책 ‘노화의 종말’을 읽다가 무릎을 쳤다. 태국 같은 몇몇 나라에서는 메트포르민을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한 알에 몇 센트(몇십 원) 수준이란다. 이 사실을 진작 알았다면 벌써 태국에 다녀왔을 텐데 정보가 중요함을 새삼 깨달았다.

지난 7월 출간돼 베스트셀러에 오른 하버드대 데이비드 싱클레어 교수의 ‘노화의 종말’. 저자는 올바른 생활습관에 노화를 늦추는 약물을 복용하면 기대수명을 20년 늘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세포 재프로그래밍 기술이 실현될 경우 금세기 말 인류의 수명은 150세에 이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교보문고 제공


현재는 20년 연장이 최선

지난 7월 출간돼 과학 분야 베스트셀러가 된 《노화의 종말》은 원서의 제목《Lifespan(수명)》에 비해 번역서의 제목이 너무 나간 느낌이다. 그러나 원서의 부제가 ‘우리가 늙어야만 하는 건 아닌 이유’인 걸 감안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저자는 노화가 불가피한 현상이 아니라며 책 뒷부분에서는 사람들이 너무 오래 살게 될 때 사회적 부작용까지 걱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년인 필자에게는 ‘노화의 종말’이 와닿지 않았다. 현재 진행 중인 기초연구결과들이 임상 시험을 거쳐 실제 적용되려면 메트포르민처럼 노화를 약간 늦추는 약물 몇 가지를 빼면 아무리 빨라야 한 세대는 걸릴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알파고 쇼크’ 같은 사건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인지 싱클레어 교수도 책의 4장 ‘건강하게 장수하는 법’에서 노화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지금 실천할 수 있는 최적의 생활습관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5장 ‘먹기 좋은 알약’에서 몇 가지 약물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지금 복용해도 별문제가 없을 거라고 보는 약물이 바로 메트포르민이다. 저자는 “(노화를 연구하는) 동료 과학자들 중 3분의 1은 메트포르민을 복용하고 있다고 장담한다”고 쓰고 있다.

싱클레어 교수는 “이런 분자적 접근법 하나하나는 건강한 삶을 5년쯤 늘려줄지 모른다”며 “이런 화합물들과 최적 생활습관의 조합은 추가로 20년을 늘릴 특효약이 될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싱클레어 교수가 제시한 ‘건강하게 장수하는 법’은 ‘적게 먹어라’ ‘가끔 단식해라’ ‘육식을 줄여라’ ‘땀을 흘려라(운동)’로 어찌 보면 뻔한 얘기다. 그런데 싱클레어 교수는 여기에 ‘몸을 차갑게 하라’는 실천항목을 하나 덧붙였다. ‘이건 몰랐는데...’라고 생각할 독자들도 꽤 있을 것이다.

싱클레어 교수는 “추위가 몸을 보호하는 갈색지방을 활성화한다”며 그 결과 “UCP 단백질의 지원을 받는 미토콘드리아의 SIRT3가 훨씬 더 많아지고 당뇨병, 비만, 알츠하이머병의 발병률이 상당히 줄어들었다”는 생쥐 실험을 소개하며 사람도 그럴 것이니 시도해 보라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최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신호전달’에 실린 한 연구결과가 떠올랐다. 소식(칼로리 제한)이 수명에 미치는 효과가 온도와 연관돼있다는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참에 한 번 논문을 읽어보기로 했다. 싱클레어 교수의 제안에 따르면 노화를 늦춰 오래 살려면 춥고 배고파야 한다는 말이니까.

먹을 게 충분할 땐 문제가 아니지만

붉은털원숭이의 모습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제공


1935년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칼로리 제한의 수명 연장 효과가 처음 밝혀진 뒤 생리 변화와 그 메커니즘을 밝히기 위한 많은 연구가 행해졌다. 이 과정에서 칼로리 제한을 받는 동물의 체온(심부 온도)이 꽤 떨어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생쥐도 사람처럼 하루 24시간 주기로 체온에 약간 변동이 있는데(자는 시간대에 좀 떨어진다), 칼로리 제한을 받는 생쥐는 체온이 떨어지며 주기의 폭이 커진다. 체온이 낮은 시간대에 더 많이 떨어진다는 말이다.

영장류인 붉은털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칼로리 제한 실험에서도 같은 패턴이 나왔는데 다만 폭은 훨씬 적어 1도 미만이었다. 쥐에 비해 덩치가 훨씬 커 부피 대비 표면적의 비가 작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도 있는데, 6개월 동안 평소 식사량의 75%를 먹은 그룹은 대조군에 비해 체온이 평균 0.2도 낮았다.

보통 동물실험은 실온인 20~25도에서 진행한다. 실온에서는 쥐가 숨쉬기 같은 기초대사를 할 때 부산물로 나오는 폐열만으로 체온을 유지할 수 없다. 온도 차이가 좀 있어 주위로 더 많은 열이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몸에 분포한 갈색지방조직이 따로 지방을 태워 열을 내야 체온을 유지할 수 있다. 먹이만 충분하면 문제가 될 건 없다. 실온 정도의 ‘약한 추위’에서는 쥐가 잘 지내는 이유다.

그런데 칼로리 제한을 받으면 실온도 체온 유지에 부담이 된다. 그래서 쥐의 체온조절 시스템은 에너지 소모를 줄이기 위해 체온을 낮추는 쪽으로(특히 잠을 자는 시간대에) 재조정한다. 이는 먹이가 부족한 시기에 굶어 죽지 않고 생존할 가능성이 높이기 위한 진화의 결과로 보인다.

그렇다면 열중성 온도(30도 내외)에서 칼로리 제한 실험을 하면 체온 저하가 나타나지 않을까? 열중성(thermoneutrality)이란 기초대사의 폐열만으로도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상태다. 실험 결과 정말 그런 것으로 나타났다. 체온 유지를 위해 별도로 칼로리를 쓸 필요가 없으니 예상한 결과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때 칼로리 제한의 여러 유익한 효과가 반감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사율이 높을수록 노화가 빨라진다는 '대사율 가설' 이론에 따르면 이는 뜻밖의 현상이다. 설사 체온이 떨어지더라도 실온에서 지낼 때 열중성 온도에서 지낼 때보다 열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온에서 체온 저하는 다른 경로를 통해 칼로리 제한의 유익한 효과에 기여할 것이다.

실온에서 칼로리 제한을 하면 체온이 떨어지는데, 덩치가 작아 열 손실에 취약한 생쥐에서는 그 경향이 더 두드러진다. 열중성 온도인 30도에서 칼로리 제한을 하면 양껏 먹을 때와 비교해 체온 저하가 일어나지 않지만(빨간색), 실온인 22도에서는 체온 하루 주기 폭이 커지며 저점일 때 체온이 뚝 떨어진다(파란색). 첫날은 양껏 먹게 하고(Ad libitum) 2~3일차는 그 양만큼 먹이를 주고(100%) 4~7일차는 75%를 준 뒤 8~15일차는 50%만 줬다. 오른쪽에 15일차(50% 8일차)의 체온 변화를 확대해 보였다. '사이언스 신호전달' 제공



온도에 따라 대사체 변화 패턴 달라

미국 스크립스연구소 개리 시우즈댁 교수팀은 대사체 비교 연구를 통해 그 비밀을 밝혀보기로 했다. 대사체(metabolome)는 생체시료에 존재하는 대사물질 전체를 뜻한다. 연구자들은 생쥐를 두 그룹으로 나눠 각각 22도(실온)와 30도(열중성 온도)에서 칼로리 제한을 받을 때 일어나는 시상하부와 혈액의 대사체 변화를 비교했다. 시상하부는 뇌에서 섭식 행동과 체온을 조절하는 일을 하고 혈액은 여러 신체 기관의 생리 반응에 영향을 미친다.

대사체 비교 결과 온도가 칼로리 제한과 관련된 대사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시상하부를 보면 실온 칼로리 제한에서는 대사물질의 6.5%가 유의미하게 농도가 바뀐 반면 열중성에서는 0.8%에 불과했다. 22도 칼로리 제한 그룹에서만 체온을 낮게 재조정하는 일이 일어나므로 그럴 수 있을 것이다. 혈액에서도 실온에서는 12%가 바뀐 반면 열중성에서는 7%에 그쳤다.

칼로리 제한을 할 때 농도가 바뀐 대사물질 127가지 가운데 63가지는 온도와 무관했다. 54가지는 실온 또는 열중성 온도 가운데 한쪽에서만 바뀌었다. 나머지 10가지는 실온과 열중성 온도에서 서로 반대 방향으로 바뀌었다(실온에서는 농도가 낮아지고 열중성에서는 높아지는 식으로). 따라서 온도에 영향을 받은 대사물질을 분석하면 체온 저하가 칼로리 제한의 효과에 미치는 대사 메커니즘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혈액의 대사물질 가운데는 유리 지방산과 그 대사산물 농도에서 차이가 났다. 22도에서 칼로리 제한을 할 때 30도에서보다 두 배였다. 이는 22도 칼로리 제한에서는 섭취한 먹이로는 열을 내기가 부족해 체지방을 지방산으로 분해해 연료로 쓰기 때문이다. 다이어트를 할 때도 주위 온도를 낮춰야 효과가 더 크다는 말이다. 참고로 사우나로 땀을 내는 건 살(체지방)을 빼는 게 아니라 수분을 내보내는 것이다.

한편 당으로 전환될 수 있는 유리 아미노산 15종의 농도는 22도에서 더 낮았다. 칼로리 제한으로 탄수화물 섭취가 부족해 이들 아미노산을 재료로 당을 만드는 반응이 더 활발히 일어났기 때문이다. 곁사슬 아미노산(BCAA)에 속하는 몇몇 아미노산의 섭취를 줄이면 노화가 지연되고 수명이 늘어난다. 당합성으로 체내 아미노산이 농도가 떨어진 게 섭취를 줄인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것으로 보인다.

시상하부의 경우 22도에서 일산화질소(NO)를 만드는 경로에서 재료로 쓰이는 아미노산인 아르기닌을 비롯한 몇몇 대사물질의 농도가 낮았다. 반면 일산화질소가 만들어질 때 부산물인 NADP+의 농도는 높았다. 일산화질소는 혈관을 이완시켜 혈압을 낮추고 그 결과 체온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일산화질소를 만드는 생체반응을 촉매하는 효소를 억제하는 물질을 주사하자 22℃에서 칼로리 제한을 해도 체온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번 연구는 불과 8일 동안 고강도의 칼로리 제한(양껏 먹게 할 때 평균 섭취량의 50%)을 실시한 뒤 시료를 채취해 분석한 결과다. 따라서 보통 수준의 칼로리 제한(70% 내외)을 장기적으로 할 때도 같은 결과가 나오는지 확인해 봐야 한다. 한편 실온 칼로리 제한에서 체온 저하 폭이 훨씬 작은 사람에서도 같은 패턴이 재현될지는 미지수다.

싱클레어 교수가 제안한 노화를 늦추는 생활습관은 하나같이 꾸준히 실천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우리는 절제(소식, 육식 자제)와 스트레스(단식, 운동, 추위)가 아니라 포만감과 쾌적함을 추구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진화의 방향은 개체 수를 늘리는 것이지 개별 개체가 오래 살게 하는 게 아니다.

진화의 명령을 극복할 수 있는 강한 정신력을 지닌 사람만이 위의 5가지 생활습관 모두를 꾸준히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4장 ‘건강하게 장수하는 법’보다 5장 ‘먹기 좋은 알약’에 더 눈길이 가는 이유다. 코로나19가 지나가면 겸사겸사 태국에 한 번 다녀와야겠다.

칼로리 제한(50%) 8일차에 채취한 혈액 시료의 대사체 분석을 통해 농도 변화를 보인 대사물질 사이의 상호관계를 보여주는 그래프다. 22도에서 칼로리 제한으로 농도가 바뀐 대사물질이 더 많고 이들 사이의 상호관계도 더 복잡함을 알 수 있다. ‘사이언스 신호전달’ 제공



※필자소개
강석기.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8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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