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던 요금 그대로' '무료 최신폰'… 호갱님, 진실을 알려드립니다
지난 9일과 10일 서울 번화가에서 휴대전화 판매사들이 호객을 한다. 이들은 액정 필름을 주거나 설문조사를 하겠다며 접근한다. 길거리 호객 행위는 경범죄로 경찰에 신고할 수 있다. 특정 요금제나 부가서비스 가입을 강요했거나 중요 정보를 뺀 광고를 게시한 대리점은 이동전화 불공정행위 신고센터에 신고한다. 기사는 사진 속 매장과는 관계가 없다.
이들을 만나면 학창시절 '일진' 앞에 선 '범생이'로 돌아간 기분이다. 머리를 굴려본다. 다른 길로 빙 둘러가는 법 없을지. 한껏 짜증 난 표정을 '장착'한다. 빠른 걸음으로 정면 돌파. 그런데도 잡혔다. "고객님, 설문조사 한번 하고 상품 받아 가시죠." 바쁘다고 거절해도, 필요 없다고 밀어내도 통하지 않는다. 그들이다, '폰팔이'. 폰팔이는 휴대전화 판매사를 비하해 부르는 말. 휴대전화 대리점 소속 직원이지만 길거리 호객,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고 강매하는 등 불법 행위도 한다.
정신 차려보니 휴대전화 대리점 상담 테이블 앞. 어느새 직원이 거침없는 손길로 내 휴대전화의 낡은 액정 필름을 떼고 새것으로 붙이고 있다. 10년 된 친구처럼 살갑게 말을 붙인다. '영업'이 시작됐다는 신호다.
'폰 호객꾼'의 주 활동 지역은 홍대입구·강남·신촌·대학로 등 번화가. 기자가 한 휴대전화 대리점에 신입 폰팔이로 취직했다. 그들의 세계에 깊숙이 들어가기 위해 신분은 밝히지 않았다. 기사에서도 상호, 지역은 밝히지 않는다.
고객과의 추격전
"한번 뽑아주세요." 지난 9일 서울의 한 대학가. 뽑기 종이 세 장을 가지고 길거리에 나섰다. 기자가 한 여성에게 쪽지를 들이밀자 대꾸 없이 방향을 바꿨다. 불쌍한 표정으로 부탁해보고 호탕하게 소리쳐도 봤다. 응해주는 사람은 드물었다. '신참'의 계속되는 실패를 지켜보던 판매사가 웃으며 말했다. "고객이랑 추격전 하는 것 같죠?"
뽑기 종이에는 각각 '액정 강화 필름' '액정 강화 필름' '열쇠고리'라고 적혀 있다. "열쇠고리 나오면 액정 필름도 준다고 해서 매장으로 들어오게 하면 돼요." 함께 출격한 판매사가 조언했다. 판매사가 붙여줘야만 받아갈 수 있는 액정 필름은 손님을 매장으로 끌어들이는 가장 효과적인 미끼. 휴대전화를 쉽게 바꾸는 20대가 호객꾼의 주요 타깃이다. 단말기를 팔 수 없는 외국인이나 고등학생은 표적이 아니다.
노웅래 의원실(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휴대전화 호객 행위 관련 민원은 2015년 2건에서 2018년 19건으로 증가했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에 접수된 호객 민원은 2018년 15건이었다.
"잠깐 들어가요." 같이 길거리에서 호객하던 판매사가 손님에게 말을 걸고 있는 기자를 매장 안으로 밀어 넣었다. "누군가 호객 행위를 지켜보며 촬영하고 있다"고 했다. 길거리 호객은 경범죄로 처벌할 수 있는 불법 행위. 경찰 단속과 언론 고발 취재에 익숙한 듯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호객을 멈추니 대리점엔 파리가 날렸다. 부점장은 "한 판매사가 하루 2건 정도 판매한다. 적어도 한 대는 팔아야 한다"고 했다. 이날 근무한 판매사는 7명. 호객 행위가 중단된 이후 7시간 동안 판매한 휴대전화는 매장 통틀어 2대뿐이었다.
겨울철 호객은 추위와의 전쟁이다. 유니폼으로 입는 셔츠와 두툼한 재킷을 입고 패딩까지 걸쳤다. 중무장했지만 칼바람을 막기엔 부족하다. 오후부터 손난로를 주머니에 넣고 나갔다. "매장에 기모 레깅스도 있어요. 안 입으면 다리가 엄청나게 시려요. 전 양말도 두 겹 신었어요." 일한 지 5년이라는 '선배'가 말했다. 판매사 대부분은 1993~1997년생. 20대였다. 주 6일 근무.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야외에서 일한다. 월급은 200만원대 초반. 자신이 영업한 단말기와 요금제, 부가 서비스에 따라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영업의 신'으로 가는 길은 아득했다.
폰팔이 대화법
"필름을 천천히 붙여야 해요. 빨리 붙여 버리면 우리 말 안 듣고 나가버리잖아요." '액정 필름 깔끔하게 붙이는 법' 특강에 나선 사수가 말했다. "기포는 손가락이 아플 정도로 세게 밀어내면 없어져요. 먼지 들어갔을 땐 셀로판테이프를 두 개 뜯어서 하나로는 필름을 들고 다른 하나는 손에 붙여 먼지를 떼어내면 돼요."
공을 들이니 손재주가 없는 편인 기자도 깨끗하게 필름을 붙이는 데 성공했다. 영업의 출발선에 섰다.
"여기 앉으세요. 날이 너무 춥죠. 저녁은 뭐 드셨어요? 근처에 떡볶이 맛집 있어요." 액정 필름을 교체해준다는 빌미로 매장으로 들어선 손님에게 쉴 새 없이 말을 붙인다. 이른바 '클로징(closing) 멘트'. 끝맺음 인사가 아니다. '가까운'의 close. 고객과 가까워지기 위한 대화를 말한다. 농담 따먹기로 고객의 경계를 풀었다. 본격적으로 신형 휴대전화를 판다.
"아이폰7 쓰시네요. 어머, 최신 기종으로 업그레이드 안 된대요?" '업그레이드'라는 정체불명의 용어로 '작업'을 시작한다. "혜택 대상자면 지금 요금 그대로 최신 기종인 아이폰11을 받아갈 수 있어요. 혜택 되는지 봐 드릴게요. 통신사가 어디세요?" 어법에도 안 맞는 사물 존칭이 절로 튀어나왔다. 손님 입장에선 혜택이 무엇인지, 최신 휴대전화를 진짜 준다는 건지 궁금증이 쌓여간다. 그러나 질문할 틈을 주지 않아야 한다. 판매사는 고객이 말하고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업그레이드 안 해보실래요?'처럼 청유형이나 선택지를 주는 문장은 쓰지 마세요. 고객한테 '잡아먹히지' 않게 주도권을 잡아야 해요." 사수가 내 연기를 보고 피드백했다. 신입 판매사는 선배에게 교육받는다. 선배가 고객 역할, 신입이 판매사 역할을 맡아 상황극을 반복한다. 선배는 무뚝뚝한 고객이었다가 금세 의심 많은 고객으로 바뀐다. '케이스 스터디(사례 분석)'다. 목소리 크기, 말투, 대화 흐름, '공짜'처럼 쓰면 안 되는 용어까지 엄격히 지적한다.
눈속임, '지금 요금 그대로'
"지금 내는 요금 그대로 최신 기종 쓰세요." 이 유혹의 진실은 무엇일까. 아이폰8을 쓰고 있던 고객 A씨가 있다. 한 달 내는 요금은 8만5000원(통신비 5만원+단말기 할부금 3만5000원). 할부는 5개월 남았다고 치자. A씨가 아이폰11(64GB)로 바꿀 경우, 매달 내야 하는 기기 값은 48개월 할부 기준 2만 3000원이다. 산술적으로 다음 달부터 원래 내던 월 요금(8만5000원)에 2만3000원을 더한 10만8000원을 내야 한다. 하지만 '폰팔이'는 계산기를 두드리며 "혜택 대상자다. 5개월 동안 지금 요금인 8만5000원만 내고, 6개월 차부터는 7만3000원을 내면 된다. 더 싸게 최신폰 쓰는 거다. 5개월 동안은 매달 2만3000원씩 총 11만5000원을 우리가 지원해주는 셈이다"고 한다.
함정이 있다. '지원금' 11만5000원의 출처다. 판매사는 A씨에게 기존 아이폰8을 받아 중고로 판매한다. 아이폰8 판매가는 20만원 정도. 남는 차액인 8만5000원은 판매사가 챙긴다. 내 휴대전화를 중고 판매한 돈이 '몇 사람밖에 못 받는 혜택'으로 둔갑한 것이다.
'혜택'부터 '업그레이드'까지 '충동 교체'를 부추기기 위해 철저히 의도된 표현이다. 메커니즘을 이해하니 "쓰던 요금 그대로 받아가세요"라는 말을 뱉을 때마다 소리가 작아졌다. 바로 지적을 받았다. "판매사가 확신을 가져야 고객한테 팔 수 있어요." 선배가 말했다. 이런 꼼수들이 모여 휴대전화 분쟁을 낳는다.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에서 운영하는 '이동전화 불공정행위 신고센터'에는 2017년부터 매년 2000건에 가까운 신고가 접수됐다.
"단통법(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때문에 얘가 파나 쟤가 파나 비슷해요. 사칙연산과 한국말만 할 수 있으면 누구나 판매 상담할 수 있어요." 대리점 점장이 말했다. 단통법은 휴대전화 구매자에게 전국 어디서나 같은 액수의 판매 보조금을 주도록 규제한 법안. 2014년 10월 처음 시행됐다. 어느 매장에도 특별한 혜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혹시라도 호객에 이끌려 들어갔다면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 정신줄 붙잡고 말하자. "설명 감사한데요. 명함 하나 주세요. 다음에 올게요."
ㅡㅡ지우지 말아 주세요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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