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에르메스 vs 30만원 눈알가방…싸움의 끝은 화해
'명품 중의 명품'으로 불리는 프랑스의 에르메스(Hermes)가 한국의 패션브랜드 플레이노모어를 상대로 제기한 6년에 걸친 소송이 지난 9월 파기환송심에서 양사간 합의를 통한 화해로 최종 종결됐다.
2015년 에르메스는 자사의 대표 가방인 버킨백과 켈리백에 눈알 모양 도안을 붙여 판매하는 행위가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며 소송을 냈다. 버킨백과 캘리백은 2000만원에서 1억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가방이며 플레이노모어의 눈알 가방은 10만~30만원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글로벌 패션업계 굴지의 명품 에르메스가 한국의 중소 브랜드를 상대로 끝까지 소송전을 벌이며 이 사건은 유명해졌다.
1심에서는 에르메스 승소, 2심에서 플레이노모어가 승소했으며 대법원은 3년 4개월에 걸친 장기간의 심리 끝에 원심을 파기해 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최종적으로 파기환송심에서는 에르메스와 플레이노모어 양자간의 양보가 담긴 화해권고 결정으로 소송이 최종 종결됐다.
플레이노모어는 2014년 디자이너 김채연이 론칭한 한국 브랜드다. 플레이노모어는 고가품을 향한 맹목적 과시적 소비에 대한 비판을 담은 패러디 디자인 일명 눈알가방 '샤이걸(SHYGIRL)'을 출시해 패션업계서 주목을 받았다. 플레이노모어의 가방은 프랑스 파리의 패션 박람회 후즈넥스트(WHO’S NEXT)에 최초로 초청받으며 유명해졌고 눈알가방은 글로벌 유명인사들의 사랑을 받게 됐다.
플레이노모어의 눈알가방 이미지/사진=플레이노모어 공식 홈페이지
앞서 2015년 소송을 제기한 에르메스는 버킨백과 켈리백에 대한 디자인등록 특허권을 보유하지 않은 상태였다. 에르메스의 켈리백과 버킨백은 1999년 디자인등록을 출원했으나 2003년 3월 등록을 포기한 바 있다. 켈리백과 버킨백이 탄생하기 이전에 루이비통, 구찌 등에서 유사한 디자인의 가방이 이미 생산돼 판매된 적이 있어서였다. 그래서 에르메스는 소송이 시작된 이후인 2016년 버킨백의 상표권을 출원했고 2020년에 켈리백의 상표권을 출원했다.
플레이노모어의 '눈알가방'이 승소했던 2심에서 고법은 "플레이노모어의 디자이너 김채원씨가 제품을 디자인할 때 에르메스 제품 형태를 일부 차용했으나 '보석 같이 반짝이는 눈'을 모티브한 도안들을 제품 전면 대부분에 크게 부착해 창작적 요소를 가미했다"며 "가격, 판매장소·방법, 주고객층을 확연히 달리해 에르메스 제품과 김씨의 제품 사이에 오인·혼동 가능성이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에르메스의 가방 디자인이 수 십 년 간 세계적으로 알려져 현재까지 동일한 디자인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 소량 생산이고 고가 제품이라는 점 등을 들며 법률상 보호할 가치가 있다"며 "플레이노모어 제품으로 인해 에르메스 제품의 희소성 및 가치 저하로 잠재적 수요자들이 에르메스 구매를 포기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어 경제적 이익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에르메스 대 플레이노모어의 일명 '눈알가방' 소송을 두고는 글로벌 명품 대기업이 한국의 영세 가방 디자이너를 상대로 소송했다며 논란도 있었다. 하지만 패션업계에서는 에르메스가 자사의 상표권 등 지적재산권을 침해하지 말라는 상징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이 소송을 대법원까지 끌고 갔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상표권·디자인을 둘러싼 소송 자체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이슈화시킬 수 있어 일종의 '노이즈(소음)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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