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31시간 근무' 노리던 철도노조…싸늘한 민심에 '빈손 협상'
국민 볼모 삼았으나 사실상 '백기투항'…후유증 적잖을 듯[서울=뉴시스]김병문 기자 = 한국철도와 전국철도노동조합의 파업 종료 다음날인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전광판에 열차 정상 운행 안내문구가 표시돼 있다. 2019.11.26. dadazon@newsis.com[서울=뉴시스]이인준 기자 = "현행 3조2교대의 주간 근무시간은 39.3시간이고, 노조의 (인력증원)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31시간까지 줄어든다. 국민들이 동의를 하겠나."(김경욱 국토교통부 2차관)
주당 '39.3시간'인 근로시간을 '31시간'으로 단축하겠다며 3년 만에 돌입한 철도노조의 총파업이 이례적으로 닷새 만에 막을 내렸다. 잠정합의안 내용도 큰 소득이 없어서 지난 2016년 9월 74일간 파업을 했던 것에 비하면 사실상 '백기투항' 수준인 셈이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이제 막 정착된 상황에서 4654명의 인력증원이 필요하다는 철도노조의 요구는 설득력을 얻지 못했고, 오히려 민심은 등을 돌렸다. 국민을 볼모로 잡고도 '빈손 협상'에 그쳤다는 지적이 나오는 등 이번 파업의 결과로 철도노조는 적잖은 후유증을 겪을 전망이다.
26일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철도노조에 따르면 노조는 '4조 2교대' 근무제 도입을 위한 인력 4654명 충원 등을 요구하며 지난 20일 오전 9시에 무기한 총파업에 들어갔다. 이후 사측에 교섭을 전격 제안해 이틀간의 밤샘 교섭 끝에 25일 오전 잠정합의를 이뤘다.
양측의 잠정합의 내용은 ▲2019년도 임금 전년 대비 1.8% 인상(정률수당 내년 1월부터 지급) ▲인력충원은 철도노사와 국토교통부가 협의 ▲KTX-SRT 고속철도 통합 운영 방안 건의 ▲저임금 자회사 임금수준 개선 건의 등이다. 노조는 조만간 조합원 총회를 열고 잠정합의안에 대한 찬반 투표를 거칠 예정이다.
일단 파업은 마무리 됐지만 양측의 갈등이 종결된 것은 아니다. 노사는 아직 많은 부분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한 상태다. 특히 인력충원 문제와 관련해 철도 노사는 조속한 시일 내에 국토부와 협의하기로 했다.
하지만 사측은 내년에 4조2교대제로 근무체제를 전환하기 위해 필요한 신규 충원인력을 1865명으로 추산하고 있는 반면 노조는 이보다 2.5배 많은 4654명 증원을 요구하고 있어 이견이 크다. 국토부도 현재로서는 인력 증원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노조 내부에서는 '얻은 것이 없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특히 임금 인상률 1.8%는 기획재정부가 지정한 공기업 임금인상 가이드라인에 불과한 수준이다. 가만히 있어도 오르는 수준이라는 말이다.
고속철도 통합도 노사 공동으로 정부에 필요성을 건의하겠다는 수준의 추상적 합의에 그쳤다. 국토부는 현재 '철도현장 안전관리시스템 개선방안 연구', '철도안전관리 조직·인력 개선방안 마련 연구' 등 철도안전 관련 2건의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내년 2월과 4월께 결과가 나오는 대로 철도산업구조 개편에 관한 사항을 종합적으로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노사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인력증원'과 관련해 묵묵부답이었던 국토부를 논의의 테이블로 끌어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도 나오고 있다. 다만 오히려 협상이 난항을 겪게 될 것이라는 관측도 만만찮게 나오고 있다.
특히 국토부는 노사가 인력증원 요구에 앞서 유연한 인력 재배치 등 자구 노력을 먼저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지난 21일 주재한 '철도노조 파업에 따른 비상수송대책회의'의 모두발언을 통해 "추가 수익 창출이나 비용절감 없이 일시에 인력을 증원하는 것은 영업적자 누적 등 재무여건을 악화시키고, 운임인상 등 국민 부담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코레일 임직원(3만2000여 명) 중 교대로 근무하는 인원은 역무원, 시설정비인력 등 1만1000여 명이다. 노조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면 인력이 41.4%나 늘어나고, 인건비도 4421억원 증가하는 등 큰 부담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철도노조는 이달 중 인력증원과 관련한 노사정 협의를 시작해 내년부터 4조2교대가 시행되도록 한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조만간 조합원 총회를 열고 잠정합의안에 대한 찬반 투표를 거칠 예정이지만, 조합원 설득에 앞서 싸늘하게 등 돌린 민심도 수습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게 됐다. 그동안 출퇴근길 혼잡에 시달린 수도권 직장인들의 원성이 자자한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철도 안전사고를 줄이자는 국민적인 공감대와는 별개로, 노조의 요구가 과도한 것이 아니냐는 불만이 폭주하면서 노조의 사업 추진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김 차관도 "(인력충원은) 국민 부담이 수반되는 것이기 때문에 물건 흥정하듯 할 수 없다"면서 "코레일이 작년에 900억 영업적자가 났고, 사측의 요구대로 인력을 1865명만 충원해도 내년부터 매년 3000억원씩 적자가 나는 데,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합리적인 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병석 코레일 사장은 "그동안 열차 이용에 큰 불편을 드려 국민들께 깊이 사과드리고 안전하게 열차운행을 정상화해 나가겠다"면서 "앞으로 노사가 힘을 모아 국민 여러분께 신뢰 받는 한국철도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조상수 철도노조 중앙쟁의대책위원장은 "불가피한 파업이었지만 불편함을 참아주신 시민들께 머리 숙여 인사드린다"며 "안전하고 공공성이 강화된 한국철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ijoino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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