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음식점 울리는 배민의 '깃발 꽂기'
배달의민족 月8만원 '울트라콜'
일부 식당 가짜주소 여러개 등록… 주문 독식하는 '깃발 꽂기' 악용
작은 음식점들 노출 기회 못잡아 "배민이 과열 경쟁 조장" 비난에… 뒤늦게 특별팀 꾸리고 개선 나서
지난 21일 오후 서울 송파구 한 아파트에서 한식을 시켜먹으려고 음식 주문 앱 '배달의민족'(이하 배민)을 열었다. 한식 메뉴를 클릭하자, 김치찌개·쌀국수·삼겹살세트·찜닭·볶음밥·비빔밥·도시락 음식점이 우르르 떴다. 그런데 스마트폰 화면을 위로 넘기자, 아까 봤던 음식점이 반복해 등장했다. H 김치찌개와 D 김치찌개는 몇 차례 화면을 넘기는 동안 무려 7~8번 나왔다. M 찜닭은 10㎞ 넘게 떨어진 곳인데도 배달 음식으로 떴다. 반복 노출되는 음식점만 10여 곳이었다. 고르기가 불편할 정도였다.
자금력이 있는 일부 음식점이 배민 앱에서 실제 주소가 아닌 인근 지역에 무작위로 울트라콜 광고를 등록해 자사 광고를 반복 노출하는 방식으로 주변의 소형 음식점 고객을 뺏는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내수 불황 속에 배달 주문을 한 콜이라도 더 받으려는 음식점 간 경쟁이 과열되면서, '깃발 꽂기'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본래 배민 앱에는 점주가 자신의 음식점 주소를 입력하면 반경 1.5~3㎞에 있는 소비자에게 상호와 음식 종류, 최소 주문 가격, 배달 예상 시간 등이 노출된다. 공짜는 아니다. 음식점주는 배민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에 한 건당 월 8만원(부가세 별도)을 낸다. '울트라콜'이라는 광고다. 그런데 일부 현금 능력이 있는 음식점이 실제 주소와 다르게 주변 아파트 단지 근처 주소를 아무 곳이나 멋대로 지정해 10여 개씩 울트라콜 광고로 등록하는 것이다. 이 아파트에 사는 주민에겐 거짓 위치를 등록한 이런 음식점을 가장 가까운 곳으로 착각해 가장 위에 띄운다. 이렇게 매월 100만원 가까운 돈을 내면서 무차별 깃발 꽂기를 하는 일부 음식점 탓에 주변의 소형 음식점주들은 제대로 노출 기회도 못 잡고 배달 손님을 뺏기고 있다.
◇11만 음식점 울리는 '깃발 꽂기'
국내 배달 음식 시장은 배민이 사실상 장악했다. 배민 앱에서 1000만~1100만 이용자가 매달 3~4회씩 음식을 주문한다. 올해 배민에선 음식 주문이 4억건 이뤄지고 결제 금액은 약 8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배달 음식 전체 시장이 15조~18조원이니, 국내 음식 주문의 절반이 배민에서 이뤄지는 셈이다. '배민을 통하지 않곤 배달 음식점을 운영할 수 없다'는 게 요즘 요식업계 정설이다. 배민 등록 음식점만 11만 곳이다. 배민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은 작년 매출 3193억원과 영업이익 596억원을 기록했다. 전년의 2배다. 올해도 실적 급등세는 이어질 전망이다.
배민에서 주문콜 확보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배민에 등록한 음식점 11만곳이 월 8만원짜리 깃발을 하나 이상 구매하고, 이 중 수백 곳이 10개 이상 깃발을 꽂는 과열 마케팅전을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남구 한 음식점주는 "배민에 깃발 하나를 더 꽂을 때마다 매출이 늘어난다"며 "마케팅 효과가 있는 만큼 비용을 내는 게 잘못된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송파구의 다른 음식점주는 "주변에서 한 점포가 무려 50개 이상 깃발을 꽂아놓고 장사한다는 말까지 들었다"면서 "음식점 한 곳이 매월 440만원을 깃발 꽂기에만 쏟아붓는데, 우리같이 작은 곳은 아무리 음식 맛이나 평판을 쌓아도 경쟁이 안 된다"고 말했다.
◇발등에 불 떨어진 배민
참다못한 음식점주들은 "배민이 과열 경쟁을 조장한다"고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회사도 고민에 빠졌다. 깃발 꽂기가 눈앞의 매출에는 득이지만, 일부 음식점이 주문을 독식하면 전체 배달 음식 생태계가 붕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는 최근 김범준 부사장 주도로 특별팀을 꾸렸다. 특별팀엔 '울트라콜을 대체할, 논란 없는 수익 모델을 만들 것' '자영업자와 상생 구현' 등 두 가지 과제가 주어졌다. 배달 음식점의 경쟁력을 살려야, 배민도 지속 가능하다는 것이다.
[성호철 기자 sunghochu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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