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나 보던 은행 개인금고, 강남부자 아니어도 쓸 수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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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나 보던 은행 개인금고, 강남부자 아니어도 쓸 수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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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액 자산가들이 주로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은행의 대여금고는 철저한 비밀보장과 안전성 때문에 비밀스러운 재산을 은닉하는 용도로도 쓰이곤 한다. 사진은 영화 <나우 유 씨 미: 마술사기단>의 한 장면으로 등장인물들이 대여금고 방에 들어가 있는 모습.

“대여금고를 이용하는 고객이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사실상 평생 개인금고를 가지게 되는 셈이죠.”

시중은행 지점의 대여금고 담당자 말이다. 은행 내 개인금고인 대여금고는 철저한 비밀보장과 안전성 때문에 VIP 고객들의 ‘자산 은닉처’로 활용된다. 대여금고엔 올 한 해 대내외 불확실성 증가로 수요가 늘어난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금을 비롯해 채권, 서류 등 각종 문서를 주로 보관한다고 은행 관계자들은 전했다.

6개 시중은행 48만여개 운영

예치금·실적 따라 고객 결정

“잔액 3천만원 이상 때 우선권”

보관 물품 특별한 제한 없어

“어르신들은 통장 보관하기도”


17일 은행권에 따르면 신한·KB국민·KEB하나·우리·NH농협·IBK기업 등 주요 6개 시중은행은 3500여개 지점에서 약 48만4000개(지난 10월 말 기준)의 대여금고를 운영하고 있다. 은행별로는 신한은행 11만409개, KB국민은행 11만200개, KEB하나은행 12만8000여개, 우리은행 8만8000여개, NH농협은행 8700개, IBK기업은행 3만8669개다. 공항 환전소나 대학 출장소 등 특수지점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일반지점에서 대여금고를 운영하는 것으로, 지점당 적게는 수십개에서 많게는 300~400개가 있다.

■ “원칙은 최장 5년···사실상 평생 이용”

은행 지점이 대여금고를 임대해주는 대상은 크게 예금 등 예치금 규모와 거래 실적에 따라 결정된다. 한 시중은행 지점 직원 ㄱ씨는 “은행마다 등급을 매기는 기준은 다르지만 우리 은행은 통장 잔액 등 총 자산이 최소 3000만원 이상인 고객들에게 대여금고를 이용할 수 있는 우선권을 부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거래실적의 경우 예금 10만원당 10점, 펀드 및 보험은 10만원당 6점 등 점수를 매기는 방식으로 최소 1만점 이상 확보한 고객들에게 우선권을 주는 곳도 있다. 예금 1억원이 있으면 언제든 대여금고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서울 강남 등 상대적으로 자산가들이 많은 지역에서 대여금고 이용하기는 쉽지 않다. 강남권 지점의 경우 대여금고가 300개가 넘지만 대기자가 수십명에 달할 정도로 수요가 많다. 또 다른 은행의 지점 직원 ㄴ씨는 “대여금고 이용기간은 원칙적으로 1년마다 갱신하고 최장 5년간 사용할 수 있지만, 고객이 먼저 계약해지를 통보하지 않는 한 5년을 넘기더라도 계약이 해지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대부분의 고객들이 계약만기가 도래할 때면 통장 잔액을 늘리거나 다른 금융상품을 가입하는 방식으로 대여금고를 계속 이용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온다”고 말했다. 반대로 지점장이 VIP 고객의 추가 신규 가입에 대비해 여유분으로 전체 대여금고의 10%가량을 비워놓는 경우도 있다.

신규 이용 고객에겐 대여금고 크기에 따라 적게는 4만~5만원에서 많게는 60만~70만원의 임차보증금을 받고 매년 10만원 미만의 수수료를 받는다. 고액 자산가들에겐 임차보증금과 수수료를 받지 않는 곳도 있다. 대여금고 규격은 높이 6~8㎝에 폭 12~16㎝, 길이 60~62㎝의 소형 크기에서부터 높이 20~30㎝, 폭 26~30㎝, 길이 60~62㎝까지 다양하다.

금고의 종류는 고객과 은행 직원이 열쇠를 이용해 여는 일반식(수동식)과 금고번호·비밀번호·지문을 함께 사용하는 지문식(바이오인증), 카드·비밀번호·고객용 열쇠를 함께 사용하는 전자동 방식 등 크게 3가지가 있다. 보관 대상엔 제한이 없다. 골드바, 반지, 고가 시계 등 귀중품과 각종 문서 등을 보관한다. 일부 고령자들은 통장을 대여금고에 보관하는 경우도 있다. 시중은행 지점 직원 ㄷ씨는 “일부 어르신들은 빈손으로 와서 대여금고에서 통장을 가지고 나온 후 업무를 보고 통장을 다시 대여금고 안에 보관하고 가신다”고 말했다.



■ 고객 지문 바꿔 돈 빼돌려…관리 문제 여전

대여금고는 지점 안쪽에 철문 또는 철창을 두는 구조로 업무 공간과 구분한다. 고객은 대여금고에 들어가기 위해선 직원과 동행해야 한다. 금고 안의 내용물은 고객 본인만 확인할 수 있다. 대여금고가 있는 공간엔 폐쇄회로(CC)TV도 없다.

과거엔 대여금고가 자산가들의 ‘검은돈’ 은닉처로 악용되기도 했다. 고액 체납자들이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가족 명의의 대여금고에 자산을 은닉하거나, 비자금 등을 금고에 감추는 것이다. 자금 세탁이나 탈세 창구로 의심되는 대여금고의 경우 압수수색 영장을 받은 경찰이나 검찰이 금고 안에 내용물을 확인할 수 있다.

보안시스템은 갈수록 최첨단화하고 있지만 관리 문제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최근엔 한 시중은행 지점에서 대여금고 관리 직원이 고객의 지문등록을 지우고 본인 지문을 등록해 대여금고에 든 고객 돈을 빼돌린 일도 벌어졌다. 시중은행 지점 직원 ㄹ씨는 “금고 관리는 통상 지점 내 자산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직원 2명이 맡는다”며 “대여금고가 많은 서울 강남권 지역 지점은 4~5명 정도”라고 말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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