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여성들 "친구 부인 흉내도 요구하는데..리얼돌 위험"
[최은경의 옐로하우스 悲歌]<28>
성매매 여성 4명에게 찬·반 물으니
"우리도 성매매 종사자 이전에 여성"
“동료가 어제 노래방 도우미와 성매매한 것을 자랑처럼 말하더라. 내가 만약 리얼돌을 갖고 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한국 사회에서 리얼돌 소유자는 성매수자보다 더 경멸과 멸시의 대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리얼돌은 그냥 개인의 취미생활이고 취향이니 변태 취급 말아달라.”
올해 초 한 리얼돌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일부다. 지난 6월 일본산 리얼돌 수입을 허용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로 이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리얼돌은 사람 모습과 최대한 비슷하게 만든 인형을 통칭하지만 주로 사람과 비슷한 섹스 인형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둘 다 남성의 성욕 해소를 위한 존재라는 점에서 성매매가 흔히 리얼돌과 함께 언급되곤 한다.
남성들의 성에 관한 속성을 잘 아는 성매매 여성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까. 지난 13일 오전 인천 미추홀구의 성매매 집결지 옐로하우스4호집에서 성매매 여성들에게 리얼돌에 관해 물었다.
최근 이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기 어려워졌다. 지난 5월 영업을 완전히 접은 뒤로 각자 새로운 생활에 발을 들이느라 바빠서다. 포주 등을 상대로 한 보상금 싸움 때문에 여전히 4호집에 머물고 있지만 일상은 크게 달라졌다. 이전 같으면 한창 잘 시간에 모인 여성들은 진지하게 각자 생각과 경험을 털어놨다.
여성 B씨(53)는 30년쯤 전 일본 긴자의 성인용품점에서 리얼돌 비슷한 것(?)을 봤다고 했다. “풍선처럼 생긴 거요. 방마다 커튼으로 칸막이를 쳐놓고 요즘 논란이 되는 리얼돌을 체험하는 곳도 있었어요. 인형에 메모리칩을 넣으면 ‘여보’ ‘오빠’ 같은 소리까지 내더라고요.” 여성들은 직접 유튜브에서 리얼돌 영상을 찾아보며 “어머, 너무 리얼하다”, “예쁘다”, “징그러워”라고 느낌을 표현했다. 업소에 성인용품을 가져오는 남성들은 많지만 리얼돌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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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소 오는 변태 남성 생각하니 No”
국내에서 만들어 파는 리얼돌은 불법이 아니지만 외국서 수입하기는 어렵다. 리얼돌의 수입·판매에 관한 찬반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옐로하우스의 한 30대 여성은 “처음에는 개인이 필요해 사는 건데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업소에서 야동 따라 하던 남성들을 생각하니 안 되겠다 싶더라”며 “리얼돌에게 변태 행위를 한다면 결국 사람에게도 하려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40대 여성 역시 “강간 당하는 자세를 취해달라거나 눈앞에서 봉지에 소변을 보라는 등 별별 요구를 다 하는데 리얼돌을 보며 성적 상상력을 더 키울 것 같다”면서 “우리가 안 받아주면 일반 여성들에게도 그런 행위를 할지 모른다”고 걱정했다. 이들은 굳이 비싼 리얼돌을 사는 남성이라면 성적 욕구가 일반적 수준보다 훨씬 클 것이라고 봤다. 리얼돌의 가격은 천차만별이지만 보통 수백만원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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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인 모습 리얼돌 위험”
여성들은 특정인을 본뜬 리얼돌에 특히 우려를 나타냈다. 여성 D씨(36)는 “남성이 특정 여성과 비슷하게 생긴 리얼돌과 성행위를 하면 실제 그 여성을 만났을 때 혼동이 와 성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업소에 와서 친구 부인 혹은 전 여자친구 등 주변 사람처럼 행동해달라는 남성들이 많은데 이들이 그런 여성들과 비슷한 리얼돌을 갖게 되면 어떡하느냐”고 말했다.
D씨는 40대 남성이 상상도 못할 사람을 연기해 달라고 했던 경험을 얘기하면서 몸을 떨었다. 다른 여성들도 특정인을 흉내 내 달라는 남성이 많다고 입을 모았다. B씨는“그런 걸 일반적 사례로 보기는 어렵다. 인천에 살면서 옐로하우스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남성들이 많다”면서도 “특정인 얼굴로 만드는 것만 규제하면 리얼돌을 찬성하지만 규제해도 불법으로 할 것 같다”고 사실상 반대했다.
D씨는 “똑같이 생기지 않아도 그 여성인 것처럼 상상하고 대하면 마찬가지”라며 “또 학생들이 리얼돌을 사거나 아동 모습 리얼돌을 만드는 것은 꼭 규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얼돌 업체들은 특정인과 똑같은 리얼돌을 만드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하지만 아동과 유명인·지인 형상 리얼돌을 규제하는 방안은 아직 뚜렷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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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독거인에게 도움 될까
리얼돌 문화를 찬성하는 쪽은 독거인이나 자유로운 이성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 사회적 약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관해 여성들은 비싸서 실질적으로 사용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놨다. 여성 B씨는 “리얼돌 판매업자들의 합리화 아닌가”라며 “옐로하우스에도 사회적 약자들이 오긴 하지만 가격이 싸기 때문이고 평범한 사람이 훨씬 많다”면서 “성욕 해소를 위해서라면 성기구도 많은데 굳이 리얼돌까지 필요하진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40대 여성은 “여러 어려움을 호소하는 남성들이 여기 오는 것을 보면 장애인에게는 리얼돌이 필요할 것 같기도 하다”고 다른 의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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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가 지식 팔지 머리 파느냐”
반대로 리얼돌 문화를 반대하는 쪽은 여성 인권 침해를 문제 삼는다. 리얼돌 문화가 만연하면 여성을 성적 도구로만 바라보게 된다는 얘기다. 여성 D씨는 “아무래도 리얼돌이 발달하면 여성을 무시하게 될 것 같다”고 여러 번 말했다. 이들에게 “성매매에 관해서도 같은 문제가 제기된다”고 하자 30대 여성은 잠시 머뭇거리다 “틀린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우리를 향한 시선만 봐도 알 수 있다. 성적 욕구를 풀려고 여기 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성매매 집결지를 폐쇄하는 과정이나 방법에 문제가 있다”며 “또 성매매 산업에서 왜 포주나 성매수남은 빠지고 늘 성매매 여성들만 문제 삼느냐”고 반박했다. 여성 B씨는 “교수가 지식을 파는 거지 머리를 파는 게 아니지 않으냐”며 “우리는 몸을 파는 게 아니라 성에 관한 서비스를 파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성 D씨 역시 “이것도 노동이다. 요즘은 성매매 여성이 아니라 성노동자라고 부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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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방’이 성매매 업소 대신할까
2004년 성매매 방지 특별법 제정 이후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리얼돌을 이용한 인형방이 키스방·안마방 같은 변종업소와 함께 생겨났다. 하지만 여성들은 리얼돌 때문에 성매매가 없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리얼돌과 성매매는 인형과 사람이라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여성 D씨는 “인형이 스킨십을 해주진 못한다”며 “인형방이 많이 늘어 성매매 업소가 줄어들더라도 일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30대 여성은 “리얼돌을 원하면 인형방에 가고 진짜 여성을 원하면 집결지에 오지 않겠느냐”며 별 상관관계가 없을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그는 “리얼돌이 인공지능을 탑재하는 정도까지 발달하면 성매매 산업 판도가 바뀔 듯하다”며 “그때는 또다른 논란이 벌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성 B씨는 “과거에는 아침에 새 내의와 양말을 챙겨주는 등 리얼돌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집결지만의 서비스가 있었지만, 요즘은 단순히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곳이 됐다”며 “다른 신종 업소가 성행할 때처럼 인형방이 많이 생기면 타격을 입을 것 같다”고 말했다.
30대 여성이 “신종업소가 자꾸 생기면 집결지가 대형화·기업화하는 방향으로 바뀔 수도 있다”고 하자 여성들은 집결지가 발전하려면 성매매 여성의 비범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노르딕 모델을 따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성매매 피해 여성의 비범죄화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노르딕 모델은 성구매자와 알선업자만 처벌하는 정책이다. 이 여성은 “성매매를 합법화하면 여성을 지금보다 더 상품처럼 취급할 위험이 있어 노르딕 모델을 지지하지만 이 역시 남성들이 법을 피해 집으로 여성을 부를 시 범죄 노출 위험이 있다”고 덧붙였다.
리얼돌에서 시작한 논의가 노르딕 모델까지 다다랐다. 성매매 여성들은 성에 개방적일 것이라는 편견이 있지만 이들 대부분 리얼돌 수입·판매를 반대했다. 여성 D씨는 “성은 자유롭다 해도 인권·범죄가 달린 문제는 다르다”며 “우리도 성매매 종사자 이전에 여성”이라고 말했다.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의 집창촌 속칭 ‘옐로하우스’. 1962년 생겨난 이곳에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지역주택조합 사업으로 업소 철거가 진행되는 가운데 성매매 업소 여성 등 30여명은 갈 곳이 없다며 버티고 있다. 불상사에 대한 우려도 커진다. 벼랑 끝에 선 여성들이 마음속 깊이 담아뒀던 그들만의 얘기를 꺼냈다. ‘옐로하우스 비가(悲歌·elegy)’에서 그 목소리를 들어보고 있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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