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전 전통신앙인 줄 알고 세운 비석, 알고보니 일제 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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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전 전통신앙인 줄 알고 세운 비석, 알고보니 일제 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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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 주민이 세운 천지신단비 철거
일제 농촌진흥 운동 가장 전국에 설치

지난달 31일 청주시 서원구 사직동 충혼탑 입구에 설치된 '천지신단'비가 철거되고 있다. 최종권 기자


충혼탑 입구에 설치된 일제 잔재 천지신단비
지난달 31일 오전 충북 청주시 서원구 사직동 충혼탑 입구. ‘천지신단(天地神壇)’이란 한자가 새겨진 1m 크기 비석이 크레인에 매달려 철거됐다. 이 비석은 1970년대 사직동 주민들이 세웠다.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 세운 사직동 천지신단비가 70년 중반 충북대로 옮겨지자 “전통 신앙 비석이 사라졌다”며 기금을 마련해 모조 비석을 만든 것이다.

청주시 김기영 복지정책팀 담당은 “한자로 뜻풀이를 하면 하늘과 땅을 관장하는 신을 모시는 숭고한 비석처럼 보이지만, 사실 일제가 우리 전통 신앙을 말살하기 위한 수단으로 세운 것”이라며 “충북대 박물관으로 비석이 옮겨진 이후 주민들은 누군가 비석을 훔쳐간 것으로 오해하면서 다시 세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천지신단비는 사직동 충혼탑 한구석에 40년 넘게 방치된 것을 지역 역사가 등이 이의를 제기하면서 철거가 추진됐다. 충혼탑은 전몰군경과 호국 용사를 기리기 위해 만든 보훈 시설이다.
천지신단비. [사진 강민식 충북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


일제 "3척 높이, 1년에 2번 제사 올려라" 지침도
일본은 한국 전통 신앙을 말살하기 위해 전국에 천지신단비를 세웠다. 이를 농촌진흥 운동으로 가장해 일본 신사의 경신숭조(敬神崇祖) 신앙을 강제하고, 이곳에서 1년에 2번 제사를 지내라는 방침도 내렸다. 청주시에는 사직동 충혼탑과 가경동 발산공원, 용정동, 가덕면에 천지신단비를 세웠다는 신문자료(매일신보)가 있다. 이중 용정동 천지신단비는 도시개발과 함께 유실됐다. 현재 사직동 충혼탑에서 이전한 비석이 충북대 야외박물관에 전시돼 있고, 가경동 발산공원에도 한 개가 남아있다.

강민식 충북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은 “일제는 1930년대 중반 눈에 잘 띄는 곳에 비석을 설치하고 정기적으로 참배하도록 했다”며 “비석만 놓고 보면 도교적 이미지나 전통 무속신앙을 전승한 것처럼 보여 대다수 주민이 일제의 잔재인 것을 모르고 지냈다”고 설명했다. 강 전문위원 조사 자료에 따르면 일제는 천지신단비 건립을 각 읍·면에 통지했다. 주민들이 가장 집합하기 좋은 곳을 선정해 3.3㎡ 면적에 신단을 조성하라고 했다.

제단 주변에 소나무를 심고, 자연석을 이용해 3척(약 1m) 높이로 비석을 세우라는 지침도 줬다. 봄·가을에 이곳에 모여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청주시는 조만간 철거한 사직동 천지신단비 처리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지난 8월 광주 남구 광주공원에서 열린 '친일잔재 청산 단죄문 제막식' 도중 이용섭 광주시장 등 참석자들이 일제 국권침탈 부역자로 분류되는 윤웅렬·이근호·홍난유의 선정비 앞에 세워진 단죄문을 바라보고 있다. 이들의 비석은 광주공원 사적비석군의 다른 비석들과 달리 땅에 눕혀져 있다. [뉴스1]


단죄문 설치·반민족 음악가 흉상 철거, 일제 청산 활발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전국에서 친일 잔재 청산 운동이 한창이다. 지난 8월 광주광역시는 대표적 친일 인사인 윤웅렬, 이근호, 홍난유의 공적비를 철거하고 그 앞에 친일 행적을 기록한 단죄문를 설치했다. 경기 부천시는 지역에 있는 문학인 시비 70여개를 전수 조사해 친일 문학인의 시비 6개를 철거했다.

경남 창원시는 마산음악관에 전시된 작곡가 조두남의 흉상, 악보 등을 철거했다. 가곡 ‘선구자’의 작곡가로 알려진 조두남은 만주국에서 반민족 음악가로 활동했다.

충북도의회는 친일 잔재물 조사와 철거를 진행하기 위한 조례를 이달 중 발의할 계획이다. 이 조례는 친일 잔재물 전수 조사를 위한 위원회를 설치하고, 친일 행적 표지석이나 현판 설치를 지원하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송미애 충북도의원은 “우리 문화 전반에 깊숙이 스며든 일제 잔재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조례를 준비 중”이라며 “친일 잔재물은 철거하거나 교육 차원에서 보존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주=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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