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국 지위' 오늘 포기 선언···정부, 난리난 농심 달래기
정부, 트럼프 압박에 결국 물러서
개도국 유지 득보다 실 크다 판단
공익형 직불제, 협력기금 확대 등
뒤늦게 당근책 제시 농민 달래기
우리 정부의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개도국) 지위 포기 발표가 임박했다. 정부는 25일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뒤늦게 성난 ‘농심(農心)’ 달래기에도 나섰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24일 개도국 지위 유지 여부와 관련해 “우리 경제 위상, 대내외 여건, 경제적 영향 및 농업계 의견까지 두루 고려해 10월 중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여의도 나라키움빌딩에서 열린 ‘민관합동 농업계 간담회’ 자리에서다. 간담회는 개도국 지위 포기를 반대하는 농업계 의견을 듣는 자리였다. 회의에 참석한 김홍길 축산단체협의회장은 “우리 농업이 지금까지 그렇게 희생했으면 이번 한 번만은 제대로 된 (지원)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성난 농심을 달래기 위해 ‘당근’을 내밀었다. 김 차관은 “‘공익형 직불제(작물ㆍ가격 상관없이 면적당 일정액 지급)’를 조속히 도입하겠다”며 “관련 예산을 올해 1조4000억원에서 내년 2조2000억원으로 대폭 늘렸다”고 말했다. 공익형 직불금은 WTO가 규제하는 보조금에 해당하지 않아 안정적으로 지급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농어촌 상생협력기금’도 확대 지원하기로 했다. 이 기금은 2015년 한ㆍ중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 당시 농업계 반발이 거세자 여ㆍ야ㆍ정 합의로 만든 기금이다. FTA 수혜 기업이 자발적으로 출연하기로 했지만 매년 목표액의 절반도 못 채우는 수준이다. 김 차관은 “기업 출연을 활성화하도록 인센티브 확대, 현물 출연 등 필요한 조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농업 예산 규모도 키워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김 차관은 “정부는 내년 농업예산 규모를 최근 10년 내 가장 높은 증가율 수준(4.4%)으로 확대한 15조3000억원으로 편성했다”며 “지방에 넘긴 부분까지 포함하면 증가율이 10%에 육박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도 재정 여건을 보며 농업 경쟁력 제고에 중점을 두고 지원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당근을 내민 건 농업 지원 방안 없이 개도국 지위를 포기할 경우 자칫 대규모 농민 시위 같은 집단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다. 농업계는 개도국 지위를 내려놓을 경우 직격탄을 맞을 것을 우려한다. 농업 분야에서는 선진국이냐 개도국이냐에 따라 의무 차이가 크다. 선진국은 개도국 대비 관세율과 농업보조금을 대폭 낮춰야 한다. 한국이 개도국 지위를 놓을 경우 높은 관세를 매겨 자국 농산물 시장을 보호하거나 보조금을 통해 국내 농산물 가격을 유지할 수 없다. 한국은 지난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당시 농업 분야에서만 개도국 지위를 주장하기로 하고 선진국보다 관세를 덜 부과받는 대신 보조금을 많이 지급하는 등 특혜를 얻어왔다.
농민단체의 주요 요구 사항은 ▶공익형 직불제 도입 ▶농업 예산 확대(전체 예산의 4%) ▶농가 소득 보장 ▶농산물 가격 안정 대책 ▶통상ㆍ식량 주권 실현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민ㆍ관 합동 특별위원회 구성 등이다. 임영호 한국농축산연합회 회장은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다는 건 국산 먹거리를 통째로 미국에 바치겠다는 얘기”라며 “포기 방침을 발표하면 300만 농업인이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농업계 요구는 대부분 예산이 수반되는 문제인데 재정 여력이 달린다. 내년 농림축산식품부 예산ㆍ기금안 총지출 규모는 15조2990억원으로 전체 예산(513조5000억원)의 3% 수준이다. 이를 전체 예산의 4%(20조5400억원)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5조2410억원을 늘려야 한다. 최근 5년간 농업예산 증가율은 연평균 1.5% 수준이었다.
정부가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려는 건 현실적으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크다고 판단해서다.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당장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다고 해도 이미 WTO 회원국으로 확보한 권리는 유지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혜택은 상당 기간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이 개도국 지위를 고집할 경우 미ㆍ중 무역분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개도국 특혜’를 계속 누리고 싶어하는 중국처럼 미국과 맞서는 형국이 될 수 있다. 자동차 관세 등을 포함한 통상 문제, 내년 방위비 분담금 협상 등을 고려하면 미국과 관계를 좋게 가져가는 것이 유리한 것도 사실이다.
명분도 없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월 트위터를 통해 “WTO 개도국이 불공평한 이득을 얻고 있다”며 미 무역대표부(USTR)에 향후 90일 내 WTO 개도국 기준을 바꿔 개도국 지위를 넘어선 국가가 특혜를 누리지 못하게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중국을 겨냥한 트윗이지만 한국도 거론했다. 여기 따른 ‘데드라인(23일)’은 이미 지났다.
트럼프는 OECD 가입국이면서 주요 20개국(G20) 회원이고, 세계은행에서 분류한 고소득 국가인 동시에 세계 상품무역에서 비중이 0.5% 이상 되는 국가가 WTO 개도국에 포함되면 안 된다고 강조했는데 한국은 이들 기준에 모두 부합한다. 트럼프가 지목한 국가 중 싱가포르ㆍ브라질은 개도국 지위를 포기했고, 중국은 거부했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의 주장에서 촉발한 이슈인 만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기 전에 통상 분야에서 주고받을 여지가 없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간문제였을 뿐이지 국제 사회에서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기 어렵다”며 “선진국으로서 해야 할 의무를 늘려가되 갑작스러운 충격을 고려해 (쌀 등 핵심 농산물 보호를 위해) 매우 제한적으로 개도국 혜택을 유지하겠다는 논리를 펴야 한다”고 말했다.
어차피 WTO 개도국 지위를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면 결정을 공식화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게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방법인데 ‘좌고우면’하면서 차일피일 시간만 미뤘다는 지적도 나온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과거 농업 정책이 농산물 가격을 안정화하는 데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농가소득 보전뿐 아니라 농산물 경쟁력 향상까지 고려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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