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판 구찌네~ㅋㅋ” 1500년전 귀족여성 발굴 유튜브 중계
1500년 전 신라 귀족 여성의 저승길은 화려했다. 금동관을 얼굴에 덮은 그는 양쪽 귀에 금귀걸이를 걸고 금동신발을 신었다. 은허리띠엔 작은 은장도를 매달았고, 열 손가락마다 은반지를 꼈다. 까마득한 세월이 흘러 육신은 사라졌지만, 그가 온몸에 치장했던 금·은 장신구는 땅에 붙박인 채 세상 밖으로 나왔다.
지난 5월 금동신발 한 쌍이 출토됐던 경주 황남동 고분<본지 5월28일 자 A20면>에서 6세기 전반에 제작된 장신구 일체가 출토됐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망자가 묻힐 때 착장한 상태 그대로다. 경주 지역의 돌무 지덧널무덤(積石木槨墓·적석목곽묘)에서 관과 귀걸이, 목걸이, 허리띠, 팔찌, 반지, 신발이 일괄 세트로 출토된 것은 1970년대 황남대총 이후 처음이다.
금동관과 금귀걸이가 노출된 모습./문화재청
3일 오후 2시 김권일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선임연구원의 목소리가 유튜브를 타고 흘러나왔다.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열린 ‘온라인 현장 공개회’다. 문화재청은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 사업의 하나로 조사 중인 경주 황남동 120-2호분에서 장신구 일체가 나왔다며 유튜브를 통해 공개했다.
경주 황남동 120-2호분에서 6세기 전반 만든 장신구 일체가 출토됐다. 사진은 금동관, 금드리개, 금귀걸이, 목걸이가 노출된 모습. /문화재청
먼저 망자의 얼굴 쪽에서 나온 금동관이 주목된다. 금동관은 3단의 나뭇가지 모양 장식 3개와 사슴뿔 모양 장식 2개를 덧붙여 세운 형태. 이한상 대전대 교수는 “금동관 아랫부분이 목걸이 윗부분과 겹쳐서 출토된 것으로 볼 때 머리에 쓴 게 아니라 얼굴을 가린 용도”라며 “둥근 금동관을 평평하게 눌러 접어 얼굴을 덮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은허리띠와 은팔찌, 은반지가 노출된 모습. /문화재청
푸른 구슬을 4줄로 엮어 만든 목걸이도 나왔다. 은허리띠 양쪽 끝부분에선 4개씩 묶음을 이룬 은팔찌가, 오른팔 팔찌 표면에선 크기 1㎜ 내외의 노란색 구슬이 500점 넘게 출토됐다. 작은 구슬이 연결된 구슬팔찌를 은팔찌와 함께 끼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김권일 연구원은 “은반지는 오른손에서 5점, 왼손에서 1점이 나왔는데 아직 왼손 부분은 발굴이 진행 중”이라며 “열 손가락 모두 반지를 끼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천마총의 피장자 역시 양손에 손가락마다 반지를 끼고 있었다.
이 화려한 무덤의 주인은 누굴까. 조사단은 여성으로 봤다. ①허리에 큰 칼을 차는 대신 작은 은장도(손칼)가 매달려 있고 ②굵은 고리 귀걸이를 착용했으며 ③실을 감는 가락바퀴와 ④청동 다리미가 출토됐다는 점이 증거다. 이한상 교수는 “금관, 금허리띠보다 위계가 낮은 금동관, 은허리띠가 나왔기 때문에 왕족보다는 최고위 귀족일 가능성이 높다”며 “왕족이라면 직계는 아니고 방계”라고 했다.
조사단은 또 “금동관의 중앙부에서 금동신발 뒤꿈치까지 길이가 176㎝인 것으로 보아 망자의 키는 170㎝ 내외로 추정된다”고 봤다. 하지만 인골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키는 아직 추정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조사단은 “무덤 구덩이 길이가 6m에 불과한 소형분에서 이처럼 높은 위계의 장신구 일체가 나온 것이 놀랍다”며 “과학적 분석을 통해 추가 조사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6세기 신라 귀족 여성이 금동관부터 금귀걸이, 구슬 목걸이, 은허리띠, 은팔찌, 은반지, 금동신발까지 착장한 상태를 그린 모습. 금동관은 머리에 쓰지 않고 얼굴을 덮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 장신구 연구의 권위자인 이한상 대전대 교수가 그린 이미지다. /이한상 교수 제공
“1500년 전 장신구가 이렇게 화려할 수가··· 신라 구찌네!”
문화재청이 처음으로 시도한 이날 온라인 설명회는 폭발적 관심 속에 진행됐다. 한시간 내내 유튜브로 생중계돼 인터넷을 달궜다. 무려 3000여명이 접속해 실시간 댓글을 달았다. “안방에 앉아서 발굴 현장을 생생히 볼 수 있다니 감동”이라는 반응이 대부분. 조사단이 “망자가 열손가락에 모두 은반지를 꼈다”고 설명할 때는 “플렉스!”라는 댓글이 올라왔다.
유튜브로 공개된 '온라인 발굴 설명회' 채팅창. 이한상 교수가 고분 현장에서 설명하는 장면을 보며 댓글이 실시간으로 달리고 있다.
채팅창에 질문이 올라오면 문화재청과 발굴기관인 신라문화유산연구원 학예사들이 댓글로 답변을 올렸다. 김권일 연구원은 마지막에 육성으로 출토 당시의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1996년부터 발굴 현장에 있었지만 이렇게 중요한 발굴은 처음이라 설레면서도 어깨가 무거웠습니다.”
문화재청이 언론과 일반 대중에 동시에 설명회를 연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지금까지 발굴 현장은 전문가와 학자, 기자 등 소수 위주로 공개해왔지만, 이제 국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발굴 현장을 속속 온라인으로 공개할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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