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헐어서 집 사는 3040…중도인출 33% 급증
정부 규제로 금융권 대출 막혀
연금수익률 1%, 집값은 8% 올라아파트 청약을 준비하는 회사원 강모(44)씨는 최근 퇴직연금을 중도인출하는 방법을 회사 담당자에 문의했다. 분양가 9억원이 넘으면 중도금대출이 나오지 않다 보니 가용자금을 최대한 끌어써야 해서다. 그는 퇴직연금이 현재 DB(확정급여)형이지만 DC(확정기여형)형으로 바꾸면 전액 중도인출이 가능하다는 답을 받았다. 그는 “노후 준비용 자금이 줄어드는 것은 아쉽지만 내 집 마련이 더 급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노후안전판 퇴직연금이 부동산 시장에 흔들리고 있다. 주택 구입을 이유로 한 퇴직연금 중도인출이 급증해서다.
9일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상반기 퇴직연금 중도인출 인원은 3만4942명으로 2017년 상반기(2만6323명)보다 32.7% 늘었다. 중도인출 금액도 같은 기간 8163억원에서 1조1793억원으로 44.5% 증가했다.
퇴직연금 중도인출은 DC형과 개인형퇴직연금(IRP)에 한해 가능한데, 법정사유에 해당해야 한다. 무주택자인 근로자가 주택을 구입하거나 전세보증금을 부담할 경우, 본인 또는 가족이 6개월 이상 요양을 필요로 하는 경우, 근로자가 개인회생·파산한 경우다.
통계청에 따르면 중도인출의 가장 큰 사유는 주택구입이다. 지난해 상반기 중도인출자 중 37.7%(1만3174명)가 이에 해당했다. 이어 장기요양(31.3%), 임차보증금(20.8%) 순이다. 연령별로는 20대는 임차보증금 마련을, 30대와 40대 초반은 주택구입, 40대 후반 이상은 장기요양 때문이 많았다.
지난해 상반기는 서울 아파트를 중심으로 부동산 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였던 때다. 집값은 뛰는데 정부의 대출 규제로 금융권 대출은 막히다 보니 퇴직연금에 눈 돌린 무주택 근로자가 많았던 셈이다.
보잘것없는 퇴직연금 수익률 역시 중도인출을 부추기는 이유다. 지난해 퇴직연금 수익률은 1.01%로 지난해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8%)은 물론 소비자물가 상승률(1.5%)에도 못 미쳤다.
퇴직연금이 노후생활 안정을 위한 보루라는 점에서 볼 때, 중도인출이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 때문에 학계에서는 중도인출 사유를 더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하지만 홍원구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주택구입용 중도인출을 무조건 막는 것은 현실적 해법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도인출 금지는 근로자의 퇴직연금제도 자체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퇴직연금을 일시금 아닌 연금으로 받을 때 세금을 더 낮추는 식의 유인책을 고려할 만 하다”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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