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사 AI상담로봇, 고객 100명 동시에 응대하며 문의 처리
4일 서울 삼성동 오토메이션애니웨어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RPA봇을 활용해 업무를 하고 있다. 왼쪽 모니터는 구인구직 사이트처럼 다양한 RPA봇의 `이력서`가 올라와 있는 봇스토어 화면, 오른쪽 모니터는 엑셀 데이터를 추출·분석해 내부 시스템에 입력하는 모습.
# 최근 국내 A은행은 고객 대출심사, 신용정보 조회 등 13개 프로세스에 85개 소프트웨어(SW) 봇을 도입해 연간 150만건의 고객 요청을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이는 풀타임 직원 200여 명이 수행하는 업무 역량으로, 봇 도입 비용은 직원 충원 비용의 30% 수준이었다.
# 콜센터를 운영하는 B금융사는 악성 민원과 업무량에 치여 퇴사하는 직원 때문에 고민이었다. 회사는 고객 응대 과정에 '로봇 프로세스 자동화(RPA·Robotic Process Automation)' 프로그램을 도입했고, 직원 만족도는 크게 상승했다.
국내 대기업을 중심으로 로봇 자동화 물결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SK LS 등 국내 주요 그룹은 대부분 RPA를 시범 적용했고, 몇몇 기업은 그룹 전체로 이를 확장하고 있다. LG전자는 올해 초부터 영업, 마케팅, 구매, 회계, 인사 등 12개 직군 120개 업무에 도입했고, 연말까지 100개 이상 업무에 추가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대카드도 올 초 업계 최초로 고객센터에 '인공지능(AI) 자동응답시스템(ARS)'을 도입해 AI 상담원이 선결제와 한도 조정, 비밀번호 등록·변경 등 6개 항목에 대해 상담하고 있다. 이 AI 상담원은 고객 100명까지 동시에 응대할 수 있으며 하루 최대 고객 전화 3000통을 받는다.
롯데그룹도 공격적으로 RPA를 도입하고 있다. 계열사별로 최적의 RPA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데, 하루 700~800건씩 업로드되는 제품 설명 검수 작업을 로봇으로 대체한 롯데홈쇼핑이 모범 사례로 꼽힌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4일 "롯데지주를 비롯해 롯데홈쇼핑 롯데정보통신 등 6개 계열사에서 재무, 영업, 물류, 제조, 지원 등 일부 영역에 RPA를 도입했고 비용 절감과 생산성 향상, 품질 제고 등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면서 "롯데홈쇼핑이 가장 많은 분야에 적용하고 있고, 사장단회의에서 모범 사례로 소개되는 등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롯데그룹은 추가로 롯데백화점 롯데호텔 롯데칠성음료 등 11개 계열사에 RPA 도입을 검토하고 있으며, 향후 전 계열사로 확산시킨다는 방침이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견·중소기업에도 RPA가 속속 적용되고 있다. 정보기술(IT), 금융사나 콜센터 위주로 확산되던 데서 나아가 전통적인 제조업에서도 RPA를 도입하는 기업이 늘어나는 추세다. 고급 여성복 브랜드 '미샤'를 만드는 중견 의류업체 시선인터내셔널은 작년부터 '디지털 시선'을 모토로 전사적인 디지털 혁신을 추진해오고 있다. 이 회사는 관련 업무를 막론하고 대부분 직원이 엑셀 작업에 너무 많은 시간을 써야 하는 것이 고민이었다. 회사 관계자는 "직원끼리 자조적으로 '엑셀의 신들이 모여 있다'고 농담할 만큼 매일 몇 시간씩 엑셀 작업을 해야 했다"면서 "RPA를 도입하자 업무가 표준화되면서 시간이 절약됐고, 도입한 지 몇 달 되지 않았지만 RPA 담당 직원이 직접 맞춤 SW봇을 개발해 적용할 정도로 직원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선인터내셔널 같은 매출 2000억원 규모 기업이 RPA 등 디지털 혁신에 투자하기란 쉽지 않았다. 문무홍 시선인터내셔널 이사는 "작년 가을부터 컨설팅회사에서 가장 효과적인 자동화 업무를 추천받았고, 영업점 매출 파악과 비용 전표 결재 시스템 등 13개 업무에 RPA를 도입했거나 적용할 예정"이라면서 "1년이면 투자 대비 수익률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더 큰 성과는 부서에 따라 잡무의 최대 80%가 줄었고 직원들이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문 이사는 특히 "'모바일과 디지털 혁신은 생존이 달린 문제다. 우리는 패션회사가 아닌 디지털회사로 변신해야 한다'는 최고경영진의 결단이 있었기에 발 빠르게 도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컨설팅회사인 딜로이트 글로벌에 따르면 기업들은 RPA 도입 효과로 '업무 품질이 향상된다'는 점을 주로 꼽았다. 조명수 딜로이트 상무는 "RPA의 가장 큰 효용은 영업사원이 고객 정보를 입력할 시간에 고객과 직접 만나고, 회계사와 컨설턴트가 자료를 수집할 시간에 한 번이라도 더 검토하는 등 '업의 본질'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조 상무는 "RPA는 이미 세계적인 추세이고 한국도 올해와 내년이 RPA 확산의 원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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