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 반대·자주국방·민영화…드골주의 '적자' 시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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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전 반대·자주국방·민영화…드골주의 '적자' 시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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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미국의 이라크전 강력 반대…美·佛 관계 급랭

미테랑이 중단했던 핵실험 재개하는 등 독자적 외교·국방노선 표방

좌우 동거정부 총리 때에는 좌파 미테랑 대통령과 불화하기도

2004년 엘리제궁의 자크 시라크 당시 프랑스 대통령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26일(현지시간) 86세를 일기로 숨을 거둔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은 2차대전 당시 나치에 대항해 싸운 뒤 전후(戰後) 프랑스를 재건한 샤를 드골의 적자를 자임한 프랑스의 정통 우파 정치인이다.

언제나 드골주의자(Gaulliste)임을 자랑스럽게 내세웠던 그는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 대통령과 함께 프랑스 우파 현대정치의 양대 거물로 꼽혀왔다.

시라크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정치 엘리트 양성 대학인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IEP)과 미국 하버드대를 거쳐 최고 명문 그랑제콜(소수정예 특수대학)인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한 뒤 1962년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의 참모로 정계에 입문했다.

그는 무려 18년간 세 차례 파리시장을 역임했고, 파리시장 재임 전후로 두 차례 총리로 재임했다.

첫 총리 재임은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 때인 1974∼1976년이었는데 41세의 젊은 나이에 총리에 발탁됐다.

이후 1976년에는 드골주의 정치 세력을 한데 모아 우파 정당 공화국연합(RPR)을 창당했다.

두 번째 총리 재임은 1986∼1988년이었다. 좌파인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재임 때 총선에서 우파가 승리하면서 총리직을 우파인 시라크가 가져갔고, 프랑스 역사상 최초로 좌우 동거정부(코아비타시옹)가 구성됐다.

대통령과 총리의 정파가 달랐던 이때 좌파인 엘리제궁(대통령관저)과 우파인 마티뇽(총리관저)은 2년 내내 불화했다.

생전의 자크 시라크(왼쪽)와 프랑수아 미테랑(오른쪽)의 모습. 시라크는 미테랑과 정적이었지만, 프랑스 제5공화국 최초 좌우 동거정부에서 총리(시라크)와 대통령(미테랑)으로 권력을 분점하기도 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시라크는 대선에 세 차례 도전한 끝에 마침내 1995년 좌파인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을 누르고 대권을 잡았다.

이후 그는 제5공화국 대통령 가운데 좌파의 거두인 미테랑(14년간 집권) 다음으로 프랑스를 오래 통치(총 12년)한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첫 집권 시 대통령 임기를 7년에서 5년으로 줄이는 개헌을 단행, 2002년 대선 재선에 도전해 승리했다.

특히 2002년 대선 때에는 결선투표에서 극우 정당 국민전선(현 국민연합)의 장마리 르펜을 압도적인 표 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프랑스는 대선과 총선에서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1·2위 득표자만으로 2차 투표를 한 번 더 치르는 결선 투표제를 운용하는데, 시라크는 이 결선투표제의 힘으로 압도적인 득표에 성공했다.

당시 결선투표는 시라크에 대한 찬성 투표의 성격보다 극우의 집권을 우려한 프랑스의 유권자들이 똘똘 뭉쳐 르펜을 막아낸 반대 투표의 성격이 강했다.

극우파를 제외한 중도, 좌파, 극좌파 진영까지 모두 힘을 합쳐 결선에서 르펜과 맞붙은 시라크에게 표를 몰아줬고, 그는 82.21%라는 높은 득표로 재선에 성공했다.

시라크는 첫 집권 직후에는 전임자이자 자신이 총리 시절 국가수반이었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중단했던 핵실험을 재개하고 국유화된 기업들을 일제히 민영화했다.

시장의 자유를 대폭 확대하는 내용의 경제개편을 위해 그는 새 판을 짜고자 의회를 해산했지만, 조기 총선에서 오히려 좌파가 승리하면서 자신의 정적이었던 사회당 조스을 총리로 맞았고, 또다시 좌우 동거정부가 구성됐다.

시라크는 국제무대에서는 무엇보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반대를 주도한 서방 지도자로 깊이 각인돼 있다.

시라크는 당시 "전쟁은 언제나 마지막 수단이고,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며, 최악의 해법이다. 전쟁은 죽음과 비참함을 가져오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시라크의 이라크전 반대로 프랑스와 미국은 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됐다.

2005년 10월 엘리제궁에서 만난 자크 시라크 당시 프랑스 대통령(왼쪽)과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오른쪽)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시라크의 핵실험 재개, 이라크전 반대 등은 '슈퍼파워'인 미국에 끌려다니지 않고 프랑스의 독자적인 자주외교·국방 노선을 걷겠다는 그의 드골주의에 따른 결정으로 평가된다.

이밖에 집권 당시 과거 나치의 전쟁범죄에 협력한 프랑스 정부의 과거사를 반성하고, 환경오염에 경각심을 갖고 대처한 점 등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시라크는 개인적으로는 청소년 시절 럭비선수를 했을 만큼 건장한 체격에 잘생긴 외모로 대중에게 어필한 정치인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두 번째 재임 때에는 과거 파리시장 재임 시절 공금횡령 사건이 불거져 '거짓말쟁이'라고 조롱을 받는 등 고전했고, 대통령의 면책 특권이 끝난 뒤인 2011년 이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는 불명예를 안았다.

정계 일선에서 물러난 뒤 퇴행성 신경계 질환을 앓아온 그는 건강 악화로 최근 몇 년간은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프랑스는 국가적으로 애도하는 분위기다.

하원은 이날 개원 중에 시라크의 별세 소식이 알려지자 1분간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지방에서 연금개편 추진을 홍보하려던 일정을 급히 취소하고서는 저녁 8시(현지시간) 특별 생방송 대국민 담화를 통해 애도의 뜻을 표하기로 했다.

시라크에 이어 우파 후보로 집권했던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도 성명을 내고 "내 일부가 오늘 사라져버렸다. 시라크는 보편적 가치에 충실한 프랑스를 구현한 정치가였다"며 애도했다.

yonglae@yna.co.kr

아듀! 프랑스!생전의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이 손을 흔드는 모습. 2006년 11월.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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