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파문이 부른 ‘진보의 분화’
유시민ㆍ공지영ㆍ이외수 등 檢 수사 비난·曺 옹호 입장 견지
김세균ㆍ우석훈ㆍ진중권 등은 기득권 세습·내로남불 위선 비판
촛불 기치 아래 손 잡았지만 ‘광장의 착시’ 효과 수명 다했나
‘조국 국면’에 대한 주요 진보 인사들 언급.
어떤 진보인가. 진보 정치는 무엇을 추구해야 하나.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임명 과정과 수사를 향한 시각 차가 진보 진영에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을 거치면서 민주, 개혁, 진보 등의 두루뭉술하고 거대한 프레임으로 통칭돼 온 ‘반(反)수구’ 진영이 ‘조국 국면’에서는 다양한 입장 차를 드러내면서 분화 양상을 띤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이 조 장관을 지명하면서 시작된 조국 국면에서 주요 진보 인사들이 내놓은 견해는 크게 두 갈래다. 상황을 ‘사소하게 누린 특혜에 대한 지나친 의혹 제기와 검찰의 과잉 수사’가 낳은 수사 참극으로 이해하는 입장과 ‘불공정하고 위선적인 기득권 세습과 내로남불식 옹호’가 초래한 인사 참사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공정’ 논란이 격화하던 중 통상 범위를 넘어서는 검찰 수사가 주요 변수로 대두되면서, 권력기관 개혁과 기득권 세습 타파 중 어느 쪽에 무게를 두느냐, 혹은 모두를 중요하게 여기느냐가 여러 관점 차를 낳았다.
검찰을 성토해 온 대표적 인사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공지영 작가, 이외수 작가 등이다. 유 이사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검찰 수사를 “저질 스릴러”라고 강하게 규탄했고, “(조 장관 부인) 영장이 기각되면 (검찰) 특수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날을 세우기도 했다. 공 작가 역시 자신의 SNS에 ‘우리가 조국이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검찰의 압수수색으로) 민주주의를 살고자 했던 수많은 국민들 가슴이 짓밟혔다”고 적었다.
조 장관의 ‘특혜’나 ‘세습’ 문제에 집중한 인사들의 반응은 다소 달랐다. 정의당 공동대표를 지낸 김세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다수 게시물에서 “조국 사태는 울타리 밖의 ‘을’들에게 개혁세력이라는 자유주의 세력도 결국 수구세력과 마찬가지로 기득권 세력임을 대중적으로 자각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 같다”며 “가장 우려할 만한 사태 발전은 이들이 수구세력의 지지층으로 돌아서는 것”이라고 경계했다.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조 장관 임명은 눈에 보이는 사법개혁을 위해 눈에 잘 안 보이는 사회정의나 경제정의를 희생시킨 것”이라고 일찌감치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예사롭지 않은 검찰의 움직임은 정의당이 ‘판단 유보’를 택한 중요 근거이기도 했다. 여러 정치적 셈법을 놓고 고심하던 정의당이 결국 ‘조국 데스노트 등재’를 사실상 포기하면서, 논란은 더 불붙었다. 여당의 조국 구하기에 동참한 진보정당의 행보에 대한 우려가 쏟아졌고, 진중권 동양대 교수의 탈당계 제출 소식이 기름을 부었다. 김 명예교수는 “정의당의 앞날에는 두 길이 있다”며 “하나는 민주당 제2중대 내지 보조정당, 나아가 민주당 내 좌파가 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더욱 진보정당다운 진보정당의 길”이라고 일갈했다.
두 서로 다른 반응의 사이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라는 집단 트라우마’가 자리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핵심 인사는 “진보를 자임한다면 특권에 반발해야 하지 않냐는 말도 이해는 하나, 누군가에겐 과잉수사로 노 전 대통령이 서거했던 역사를 되풀이할 수는 없다는 의무감이 더 압도적”이라고 분석했다. 검찰 개혁이라는 절박한 과제가 걸리다 보니 조 장관이 누린 것이 특권이 아니었다고 보거나, 특권이더라도 장관직을 수행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보거나, 문제 제기의 의도가 불순하다는 데 방점을 찍는 심리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反) 최순실 국정농단’의 기치 아래 모두가 하나였던 ‘광장의 착시’ 효과가 수명을 다했다는 분석도 있다. 각자가 외쳤던 것이 ‘어떤 옳음인가’의 속내를 꺼내 견줄 수밖에 없는 국면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풀뿌리정치개혁실험실 ‘와글’의 이진순 이사장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촛불광장에서 이루어진 86세대와 2030세대의 연대는 이제 쉽사리 재현되기 어려울 것”이라며 “나는 이것이 과거 NL-PD 논쟁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거대한 사상투쟁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는 진단을 내놨다. 균열이 지속되거나 가속화할 여지도 있다는 판단이다.
입장 차가 선명해지면서 논란이 지나치게 과열되거나, 폭력성을 띤다는 지적도 있다. 박권일 사회비평가는 “조국 사태는 여러 맥락을 담은 다면체(多面體)인데도 논란이 격해지다 보니 ‘그래서 너는 조국 찬성이냐 반대냐’는 단정적 질문을 숱하게 받는다”며 “조국을 지키냐 마냐를 정권의 명운과 동일시하고, 이 사안을 정권과 악의 무리의 전투로 이해하는 담론과 발언이 거세질수록 다양한 논의와 쟁점의 도출을 가로막는 역효과를 낳는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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