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비상상황”…영화는 이미 경고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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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비상상황”…영화는 이미 경고해 왔다

보헤미안 0 440 0 0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의 한 장면. 영화의 경고는 현실이 됐다.

24일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 기후행동정상회의 연설에 환경단체들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연설의 골자는 한국의 녹색기후기금 공여액을 배로 늘리겠다는 것과 '세계 푸른 하늘의 날'을 제정하자는 제안이었다. 국내 300여 개 각계 단체로 구성된 기후위기비상행동은 논평을 내고 "대통령의 연설은 절박한 기후 위기에 대한 답이 될 수 없다"며 "급격한 온실가스 감축을 호소하고 있는데 핵심을 벗어났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인류가 지금 추세대로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2040년 즈음 산업혁명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이 1.5℃ 상승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경우 인간의 노력으로 다시는 지구 환경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게 IPCC 보고서의 결론이다. 기후위기비상행동은 "2100년까지 평균기온 상승 1.5℃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온실가스의 45%를 감축해야 하지만, 한국의 계획은 18.5%에 불과하다"며 "푸른 하늘의 날 제정과 같은 대책 등은 기말시험에 중간시험 답안을 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논쟁의 여지 없어…"지금 대응해야"

'불편한 진실'(2006, 감독 데이비스 구겐하임)이 옳았다. 앨 고어 전(前) 미국 부통령의 환경운동 과정을 담은 이 다큐멘터리는 지구 온난화의 원인과 예상 결과를 꼼꼼하게 짚어나간다. 당시만 해도 여론의 관심은 부족한 편이었다. 일부 정치 세력은 미국 석유협회 등 정유업계를 등에 업고 '지구 기온 상승은 주기적·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면서 사태에 물을 탔다.

하지만 이후 10여 년 동안 '불편한 진실'의 경고는 세계 곳곳에서 현실로 드러났다. 탄소 배출량에 정확히 비례해 올라가는 지구의 기온, 그에 따라 녹아내리는 빙하와 해수면 상승, 국지성 호우와 홍수, 가뭄과 사막화, 폭염과 혹한 등 영화의 걱정이 고스란히 현실로 옮겨지고 있다. 방대한 자료를 설득력 있게 분석하고 정리한 10여년 전 다큐는 "학계에 더 이상의 논쟁은 없다. 당장 대응해야 한다는 결론뿐"이라고 말한다.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올라가면 북극곰과 남태평양 연안 주민들만 피해를 볼까. 이대로라면 뉴욕, 베이징, 런던, 부산에서 치명적인 침수 피해를 현존 인류가 겪을 수 있다. 빙하는 태양열을 반사하지만 녹은 바닷물은 태양열의 90%를 흡수하기 때문에, 지구 상의 얼음이 녹을수록 온난화는 더욱 가속한다. 바닷물 온도가 올라가면 증발량이 많아져 구름은 더 많은 물을 머금게 된다. 태풍 발생이 잦아지고 위력도 강해진다. 눈앞에 불어오는 바람만 재난으로 볼 게 아니란 얘기다.

기온이 상승한 육지에선 강이나 호수의 물이 마르면서 사막화가 진행되고 식량난을 키운다. 이 상황을 극화해 전 인류가 지구를 떠나야 하는 설정으로 시작하는 영화가 '인터스텔라'(2014)다. 현실에서 사막화는 식량난으로 인한 기아와 지역 분쟁, 그에 따라 무기 거래가 기승을 부리는 결과를 낳아 왔다.

영화 ‘컨테이젼’. 삼림 훼손과 공장식 축산업에서 재난의 원인을 설정했다.

공장식 축산업은 인류 재난의 또 다른 축이다. '컨테이젼'(2011,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은 전 세계에 신종 감염병이 번져 수백만 명이 숨지는 상황을 가정한다. 영화를 본 의료인들이 "가능한 상황을 역학적 근거와 함께 과학적으로 묘사했다"며 놀란 작품이다. 영화에선 한 다국적 기업이 아시아의 삼림을 훼손하고, 삶의 터전을 잃은 박쥐의 분변을 인근 농가의 돼지가 먹으면서 치명적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것으로 설정됐다. 돼지 열병 등 동물에게만 감염되는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켜 인간을 공격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불편한 진실'에서는 인류를 위협하는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이 지구 기온상승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짚는다. 기온 상승은 모기·쥐·진드기·박쥐 등의 서식지를 변화시킨다. 사람과 접촉하지 않던 질병 매개체가 사람과 만나거나 번식이 쉬워진다는 것이다. 지난 25년간 인류는 30종의 신종 바이러스를 경험했다.

눈 앞의 태풍·돼지열병만 재난일까

동물 전염병이 발생하면 일정 반경 이내의 같은 종(種)을 모조리 매몰 처분할 수밖에 없다. 이를 다음의 설명과 함께 생각할 필요가 있다.
 

"야생 조류의 개체군은 유전적으로 다양한 개체들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그들 중 한두 마리가 감염돼도 좀처럼 전체로 번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기르는 닭은 오랜 세월 특별히 알을 잘 낳는 닭들을 가려내는 인위 선택 과정을 거치는 바람에 거의 '복제 닭' 수준의 빈곤한 유전적 다양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일단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닭장 안으로 진입하기만 하면 모든 닭들이 감염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중략) 그들을 공격하던 바이러스가 언제부터인가 인간도 공격하기 시작했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저서 《다윈 진화》에 쓴 말이다. 공장식 축사에서 생명체라기보다 고기로 길러지는 돼지와 소, 우유 제조기로 키워지는 젖소들 역시 마찬가지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 포스터. 유해가스를 배출하는 굴뚝과 유전자 변형 돼지를 합친 형상이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2017)에는 글로벌 기업이 고기를 위해 유전자를 변형시킨 슈퍼 돼지가 나온다. 소들의 방귀를 포함해 축산업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지구 전체 배출의 18~24%를 차지한다. 온실가스 배출 비중이 가장 높은 산업이다. 지난 50년간 인구가 2.2배 증가하는 동안 고기 생산량은 4.5배 늘었다. 자본주의 방식에 의해 축산업이 운영되다 보니 인류는 필요 이상으로 고기를 생산하고 더 많이 버리며, 많이 수출하고 그만큼 수입하는 악순환을 거듭한다는 게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와 같은 생태환경운동가들의 근거 있는 주장이다. 최근의 브라질 열대우림의 화재도 축산농장 부지를 마련하기 위해 사람들이 일부러 불을 놓은 탓이었다.

지구 역사에서 빙하기는 6~7회 찾아온 것으로 알려져있다. 지구과학자들은 빙하기가 '점진적'으로 다가온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지구의 열 이동 체계가 어떤 힘에 의해 무너진 뒤 약 10년 사이에 갑작스럽게 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불편한 진실'은 해류와 바람이 평소처럼 적도에서 극지점으로 열을 옮기다가 이 시스템이 붕괴하면 인류가 갑작스러운 빙하기를 맞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과학적으로 가정한 영화가 '투모로우'(2004)다. 북극과 남극의 빙하가 녹으면서 바다의 난류와 한류가 정상 흐름을 잃자 북반구 도시가 순식간에 얼어붙는다. 영화들은 줄곧 경고해왔다. 과학자 등 주인공이 필사적으로 위험을 경고하지만 당국자들은 이를 무시하다 재앙을 맞는다.

미래 세대의 외침 "어른들이 제 역할하라"

23일 유엔 기후행동정상회의 연단에 선 스웨덴 출신의 16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외침도 필사적이었다. "당신들은 빈말로 내 어린 시절과 내 꿈을 앗아갔다. 생태계 전체가 무너지고 대규모 멸종의 시작을 앞두고 있는데 당신들은 경제성장이라는 동화 같은 말만 늘어놓는다. 당신들은 우리를 실망하게 했고, 우리는 배신을 깨닫기 시작했다. 미래 세대의 눈이 당신들을 향해 있다. 만약 우리를 실망하게 하는 쪽을 선택한다면 우리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 주는 전 세계 시민사회단체들이 정한 '기후위기 파업 주간'이다. 뉴욕타임스는 21일 베를린, 파리, 뉴욕, 런던, 서울 등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시위를 벌인 인원을 합치면 400만 명에 이르며, 청소년들의 참여 비중이 이례적으로 높았다고 보도했다. 오는 27일에는 뜻을 함께하는 국내 청소년들이 '결석 시위'를 하기로 하고 광화문에 2천 명 집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래 세대가 어른들의 책임을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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