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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문 시사만화의 상징으로 평가받는 '고바우 영감'의 작가 김성환(87·사진) 화백이 8일 오후 노환으로 별세했다.


1932년 황해도 개성에서 태어난 김 화백은 17세에 연합신문 전속 만화가로 데뷔했으며, 한국전쟁에는 종군화가로 일했다.

김 화백의 대표작인 네 컷짜리 신문 문화 '고바우 영감'은 1950년 육군본부가 발행한 '사병만화'에 첫선을 보인 후 '만화신문' '월간희망' 등을 거쳐 동아일보, 조선일보, 문화일보 등 주요 일간지에 게재됐다. ‘고바우 영감’은 촌철살인의 풍자로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1955년부터 2000년까지 1만4139회 연재됐다. 신문 사상 최장기 연재로 2001년 한국 기네스에 등재됐다. 2013년에는 근대만화 최초로 등록문화재(538-2호)가 됐다.

1980년 신군부 집권 이후 언론통폐합 조치를 비판했던 '고바우 영감'(왼쪽)은 당초 그해 11월 17일 조선일보에 게재될 예정이었지만, 이 연재만화는 검열을 통과하지 못해서 실제 독자들과 만나지는 못했다. 동아일보 1958년 1월 23일 자 만화 ‘고바우 영감’(오른쪽)은 경무대를 모욕했다는 죄로 벌금형을 받았다./조선DB
‘고바우 영감’은 아내와 딸이 있는 평범한 가장을 주인공으로 세태를 풍자하고 국민의 애환을 담아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정권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탄압을 받기도 했다. 이승만 정부 시절에는 ‘가짜 이강석 사건’을 풍자한 내용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고, 1958년에는 '경무대(현 청와대) 변소 치기'라는 제목으로 만화를 그렸다가 허위보도 유죄 선고를 받았다.

유신 시절 고바우 영감은 유일하게 자유로운 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AP·아사히 신문 등 해외 언론사도 ‘고바우 영감’의 사회적 영향력을 소개하며 김 화백의 비판적인 언론 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허금자 씨와 아들 규정 씨, 딸 규희·규연 씨가 있다. 빈소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재생병원 장례식장 8호실, 발인은 10일 오전 9시. 031-708-4444

‘고바우 영감’ 캐릭터/조선DB

[김은영 기자 keys@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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