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할땐 '3저 호황' 퇴직 앞두고 '정년연장'···불로장생 386
“도무지 늙지 않는 불로(不老) 세대의 최장기 집권. 대한민국은 386의 나라다.”(김정훈·심나리·김항기『386 세대유감』)
386세대는 2000년대 중반부터 한국사회의 상층부에 진입한 뒤 시간이 갈 수록 영향력이 더욱 막강해지고 있다. 정치권에선 “386의 20년째 독점구조”(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란 말도 나온다. 이들의 ‘장기 집권’ 요인은 뭘까.
우선 386 세대는 현 인구구조에서 가장 비중이 큰 세대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주민등록 인구 5163만 명 중 60년대생는 860만 명이다. 총인구의 16.7%로 전체 세대 중 가장 많다. 인접 세대인 50년대 생은 629만 명, 70년대 생은 830만 명이었다. 숫자가 많으니 입김이 강할 수 밖에 없다.
386 세대부터 대학생수가 급증한 것도 ‘386 권력’에 큰 보탬이 됐다.
80년 7월 신군부는 대학 본고사를 없애는 정책을 발표했다. 대신 예비고사와 내신 성적으로만 대학에 들어가게 했다. 졸업정원제 실시로 대학 정원도 30% 이상 늘렸다. 대학생 수는 1980년 61만 명에서 85년 136만 명, 90년 158만 명으로 계속 늘었다. 대학교 취학률은 1980년 12.4%에서 90년 36.5%로 증가했다. 앞선 세대에 비해 고등교육을 받은 엘리트들이 크게 늘면서 자연히 386 세대는 사회의 각 분야에서 자연스럽게 중심 세력으로 성장하게 됐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386세대는 사람 수가 많고 대학 진학률도 높았던 게 특징”이라며 “이를 통해 정치, 경제 전반으로 세력이 빠르게 축적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386은 저질 스펙에도 졸업만 하면 대기업에 척척. 정년연장 수혜에 은퇴 후 국민연금도 알뜰히.”
최근 20~30대가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이 글처럼 386세대는 지금 청년들에 비해 취업이 쉬웠다. 전두환 정권 시절의 3저(달러ㆍ유가ㆍ금리) 호황을 타고 386세대가 졸업할 80년대 말~90년대 중반엔 직장을 골라서 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아예 ‘취업난’이란 말 자체가 없을 때였다.
이들에겐 부의 축적도 손쉬웠다. 노태우 정부가 1988년 발표한 주택 200만호 건설(분당·일산 등 1기 신도시 포함) 정책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 주택 200만호는 당시 서울시 전체 주택수와 맞먹는 물량이었다. 한창 집을 사야 하거나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386세대의 주택 문제가 단숨에 해결된 셈이다. 이찬희(연세대 84) 대한변호사협회장은 “정치적으로 군부독재에 가장 저항한 게 386인데 동시에 군부독재로 인한 경제성장의 과실을 많이 누렸던 게 386”이라고 평가했다.
이후엔 고임금과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빠르게 중산층으로 진입했다. 386세대인 원희룡(서울대 82) 제주지사는 “그런 때가 다시 올까 싶을 정도로 복에 겨운 세대였다”며 “한국경제가 초고속 성장을 할 때여서 사실 취업 걱정, 집 장만 걱정을 별로 안 했다”고 회상했다.
국가적 대재앙이었던 IMF 사태도 386 세대에겐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기업마다 살벌한 해고 사태가 일어났지만 386 세대는 입사한 지 얼마 안되는 초년병이라 대부분 감원의 칼날을 피해갔다. 386 세대의 윗세대인 1940~540년대생은 많은 희생을 당했지만, 386 세대는 조직 상층부에 대규모 공백이 생긴 틈을 타 고속 승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2000년대 초반엔 IT, 벤처사업을 독려하는 정책이 쏟아지면서 관련 사업에 뛰어든 386세대가 재계의 새로운 리더로 부상했다. 김범수(카카오), 김정주(넥슨), 김택진(엔씨소프트), 안철수(안랩), 이동형(싸이월드), 이재웅(다음), 전제완(프리챌) 등이 그런 경우다.
현재에 와선 정년연장의 혜택도 받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지난 18일 ‘인구구조 변화 대응방안’으로 정년을 65세까지 끌어올리는 방안을 2022년부터 추진하기로 했다. 2016년 60세로 상향 조정된 법정 정년은 그대로 두되 기업이 정년 이후에도 근로자가 원하면 계속 일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386 세대는 취업부터 퇴직까지 걱정없는 유일한 세대가 되겠지만, 그만큼 청년 세대의 신규 일자리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386은 학번, 출생연도라는 생물학적 기준으로 정의된 세대지만 여기엔 ‘386=민주화운동 세대’라는 암묵적 등식이 깔려있다. 신용한(연세대 88) 전 대통령직속 청년위원장은 “386세대는 스스로 거악을 척결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며 “그 과정에서 강하게 발현된 동지의식이 그들의 힘”이라고 분석했다.
이같은 집단 경험은 80년대를 관통할 당시 20대였던 세대 전체를 하나로 결속하는 끈이 됐다. 신율(고려대 81) 명지대 교수는 “전두환 정권의 혹독한 탄압으로 한 명씩 투신하거나 스스로 몸에 불을 질렀던 시대, 또 이것을 볼 수밖에 없었던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운동권이든 비운동권이든 대학생이 아니든 함께 역사의 아픔을 공유했다”고 말했다. 80년대를 살았던 젊은이들 모두가 ‘민주화 세력’이 되어버렸다는 얘기다.
이런 동질 의식을 바탕으로 한 ‘386 네트워크’는 여러 단체ㆍ조직의 탄생에도 영향을 미쳤다. 386세대는 전교조(89년)ㆍ참여연대(94년)ㆍ민노총(95년) 등의 태동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 지난 20여 년간 ‘386 네트워크’는 진보진영의 최대 버팀목이었다.
이 같은 386세대만의 끈끈한 동질의식은 종종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주광덕(고려대 81) 자유한국당 의원은 “우리가 민주화를 이뤄냈다는 도취감이 다른 세대와 뒤섞이는데 도리어 방해 요소가 됐다”고 분석했다. 전대협 출신인 최홍재(고려대 87) 신문명연대 대표는 “386은 후배들에게 ‘너희들은 세상을 잘 모른다, 너희가 이렇게 헌신적으로 싸워봤어’라며 무시 내지는 불신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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