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홍콩 대신 선전 키운다지만.."법치주의 없인 안돼"
"법치 보장 안 되고 정보 흐름 막힌 사회, 글로벌 금융허브 어불성설"
홍콩 지나치게 억압할 경우 '美, 홍콩 특별대우 취소' 우려도 나와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중국 정부가 시위 사태로 시끄러운 홍콩 대신 이웃 도시 선전(深천<土+川>)을 키우고 싶어하지만, 법치주의와 정보의 원활할 흐름이 보장되지 않는 한 이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9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지난달 말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국무원은 선전을 '중국 특색사회주의 선행시범구'로 건설하겠다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 가이드라인은 선전을 2025년까지 경제력과 질적 발전 면에서 세계 선두권 도시로 키우고, 2035년까지 종합적인 경쟁력에서 세계를 리드할 도시로 만들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다.
가이드라인은 글로벌 기업이 선전에 본사나 지사를 설립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국제 기준에 맞는 비즈니스 법규와 투자, 인수합병 등에 우호적인 정책을 시행하도록 했다. 해외와 홍콩의 인재를 끌어들일 조치도 마련된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이 계획으로 홍콩의 위상이 흔들릴 것이라는 점을 노골적으로 부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야심을 실현하기에는 현실적인 장벽이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법치주의의 문제가 지적된다.
중국 경제 전문가 마크 윌리엄스는 "홍콩의 법규를 본떠서 중국 본토에 복제할 수는 있겠지만, 이 법규가 공정하고 예측할 수 있게 시행된다는 보장이 없다"며 "당국이 언제든지 자본 흐름을 제한할 수 있는 곳에 '글로벌 금융허브'를 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지적했다.
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현재 글로벌 금융허브로서 홍콩은 1위인 뉴욕과 2위인 런던에 이어 3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선전은 한참 뒤처진 14위를 기록했다.
홍콩과 선전의 근본적인 차이 가운데는 투명한 정보 흐름 수준도 꼽힌다.
기업 경영과 금융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가 투자 결정 등의 기반이 되는 정보의 투명하고 자유로운 흐름인데, 중국의 검열 시스템인 '만리방화벽'(Great Firewall)은 이를 근본적으로 막고 있다.
'홍콩 인권법안' 통과 촉구하는 홍콩 시위대 (홍콩 로이터=연합뉴스) 8일 홍콩에서 미국 의회에 '홍콩 인권민주주의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시위대가 성조기를 앞세우며 행진하고 있다. bulls@yna.co.kr중국 정부가 이러한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홍콩을 억누르고 선전을 키우려는 무리한 계획을 추진한다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홍콩은 역외 최대 위안화 거래의 장이며, 전체 중국 기업 기업공개(IPO)의 절반 이상이 이뤄지는 곳이다.
지난해 중국 본토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의 65%가 홍콩을 통해 이뤄졌으며, 중국 해외투자의 70%가 홍콩을 거쳐 단행됐다.
이러한 홍콩의 막강한 경제적 지위는 사실 미국이 1992년 제정한 '홍콩정책법' 때문에 가능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은 홍콩의 주권반환 이후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보장한 1984년 중국과 영국의 공동선언을 존중해, 홍콩정책법을 통해 관세나 투자, 무역, 비자 발급 등에서 홍콩에 특별대우를 보장하고 있다.
일국양제는 1997년 홍콩 주권 반환 후 50년간 중국이 외교와 국방에 대한 주권을 갖되, 홍콩에는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한 것을 가리킨다.
홍콩정책법에 따르면 홍콩의 자치 수준이 이러한 특별대우를 정당화할 정도로 충분하지 않을 경우 미국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통해 홍콩의 특권을 일부 또는 전부 보류할 수 있다.
실제로 홍콩 시위 사태 격화 속에 미국 의원들에 의해 지난 6월 발의된 '홍콩 인권민주주의 법안'은 미국이 매년 홍콩의 자치 수준을 평가해 홍콩의 특별지위 지속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만약 중국의 홍콩 사태 무력개입 등으로 이 특별대우가 취소된다면 글로벌 금융허브로서 홍콩의 지위는 치명적 타격을 입게 된다.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으로서도 그 타격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국 학자는 "서방국가가 홍콩에 부여한 경제와 무역의 특권은 한 국가에 부여한 것과 맞먹는다"며 "서방국가가 이러한 특권을 취소한다면 홍콩은 죽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ss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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