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을 찾아라···'51구역 습격사건' 벌어질까
‘51구역’ 주변 상공을 인공위성으로 2005년 촬영한 사진. 넓은 흰색 부위는 말라붙은 호수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공
1996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는 호전적인 외계인과 이들을 막으려는 지구인들의 전쟁이 큰 줄거리를 이룬다. 거대한 우주선과 레이저 무기를 사용하는 외계인을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의 구닥다리 컴퓨터 바이러스와 미사일·기관포로 무장한 전투기로 상대한다는 게 황당하다는 평도 있다. 하지만 화려한 폭발 장면과 박진감 넘치는 공중전, 그리고 단결한 지구인이 사악한 외계인을 물리친다는 설정은 충분히 매력적이어서 인기를 끌었다.
이 영화에는 특히 눈에 띄는 장면 하나가 있다. 외계인의 공격이 현실화한 뒤 대응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과거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과 우주선을 과학자들이 연구 중이며, 그 장소가 바로 ‘51구역(Area 51)’이라고 주인공의 아버지가 미국 대통령에게 따지고 드는 장면이다. 대통령은 상상과 소문일 뿐이라며 차분히 설명하지만, 대화를 듣던 국방장관은 그런 시설이 있음을 대통령에게 시인한다. 51구역에 관한 대중의 정서를 정확히 반영한 장면이다. 외계인은 이미 지구에 온 적이 있으며, 이를 미국 정부가 숨기고 있다는 얘기다.
51구역에 관한 의심의 역사는 꽤 길다. 시작은 ‘로즈웰 사건’이다. 1947년 6월 미국 뉴멕시코주 로즈웰이라는 마을 근처에서 농부인 윌리엄 브래즐이 무언가가 불시착한 뒤 만들어진 잔해를 발견했다. 그는 지역 경찰에 신고했고, 잔해를 수거한 미군은 처음엔 외계인의 우주선과 연계되는 단어인 ‘비행접시’라고 했다가 하루 만에 기상관측용 기구라고 정정해 발표했다. <인디펜던스 데이>뿐만 아니라 1990년대에 미국 등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미스터리 TV 시리즈인 에도 51구역이 등장한다. 미국의 달 착륙 장면을 51구역에서 조작해 찍었다는 주장도 제기되면서 51구역은 말 그대로 정부에 의해 진실이 은폐된 공간으로 오명을 얻게 됐다.
그런데 의심의 대상이기만 했던 51구역에 직접 쳐들어가 진실을 밝히자는 도발적인 주장이 제기됐다. 한두 사람의 망상이 아니다. 지난 6월 말 매티 로버츠라는 한 미국인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이 제안에 지난주까지 204만명이나 ‘참여’ 의사를 밝혔다. 목표로 한 ‘공격’ 날짜는 이달 20일이다.
로버츠가 내건 구호는 비장하다. SNS 첫 페이지에는 “51구역을 습격하라, 그들은 우리 모두를 막지 못한다(Storm area 51, They can’t stop all of us)”라는 문구가 걸려 있다. 거대한 인파가 51구역으로 밀고 들어가면 군대라도 완전히 방어하긴 불가능할 것이고, 결국 진실이 밝혀질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이 제안이 현실화할지는 미지수다. 51구역을 관리하는 미국 공군은 이곳이 침입에 대항할 수 있도록 ‘치명적인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을 언론을 통해 밝혔다. 민간인들에게 살상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은 낮지만 군이 민간인들의 집단적인 침입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미국 정부는 51구역의 존재에 관해 별다른 확인조차 해주지 않다가 2013년 비밀 군사 실험기지라는 점을 시인했다. 이 기지를 주로 이용한 건 은밀함이 요구되는 군용기다. 성층권인 21㎞ 고공을 비행하는 U-2, 마하 3.3에 달하는 초고속 비행이 가능한 SR-71, 그리고 스텔스 폭격기 등이 이 기지에서 뜨고 내렸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의 설명에도 51구역에 외계인과 그들이 타고 온 우주선이 있을 것이라는 일부 대중의 믿음은 여전하다. 외계지적생명체 탐색계획(SETI)을 이끄는 미국 과학자인 세스 쇼스타크 박사는 최근 SETI 홈페이지를 통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SETI는 지적능력을 가진 외계생명체가 있다면 전파를 사용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전파를 찾는 전 세계적인 연구 조직이다.
쇼스타크 박사는 외계인이 있다면 그 비밀이 정부에 의해 독점되긴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외계인은 미군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수십억명 사람들 앞에 나타날 수 있다”며 “사람들 대부분은 카메라가 달린 휴대전화를 지녔다”고 지적했다. 쇼스타크 박사는 또 “로즈웰 사건 이후 70년 동안 51구역에는 수천명 직원이 일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다수의 사람에게 노출된 비밀은 유지되기 어렵다는 논리는 ‘달 착륙 조작설’에 대응하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입장과도 일맥상통한다. 아폴로 계획에 동원된 인력이 75만명에 달하는 상황에서 달 착륙 조작과 같은 치명적인 비밀이 정말 있다면 그것을 수십년간 숨기는 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국내 우주과학계의 한 관계자는 “지적생명체가 우주 어딘가에 존재할 수 있다는 천문학적 추론과 그들이 타고 온 우주선이 정부에 의해 어딘가에 은폐돼 있다는 주장은 완전히 결이 다른 얘기”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외계인의 지구 방문설은 주류 과학계에선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달 20일 51구역 앞에 외계인의 실체 공개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모여들 가능성은 여전하다. 정부가 정보를 독점한다는 불신이 만든 폭발력이 그들을 사막 한가운데 군사기지로 이끌 수 있다는 얘기다. 지역사회에서는 이들이 머물 숙박시설 정비에 들어갔다는 보도도 나온다. 51구역의 진실을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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