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국채 60조 넘어… 4년뒤 국가채무비율 46.4%
내년 513조 슈퍼예산 편성… 재정건전성 빨간불
정부가 29일 513조5000억 원에 이르는 ‘초(超)슈퍼 예산안’을 편성한 것은 재정을 마중물로 성장잠재력을 끌어올려야 할 뿐 아니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복지 수요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중 무역분쟁과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대외 리스크가 커짐에 따라 정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전문가들은 확장적 재정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나랏돈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재정건전성이 급격히 악화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슈퍼맨’ 역할 요구 받는 정부
현재 한국 경제는 수출, 투자 등에서 부진을 겪으며 좀처럼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예산을 풀어 기업 투자를 촉진하고 국민의 가처분소득을 늘려 소비를 확대하려는 이유다.
그간 한국 경제를 떠받들던 수출은 반도체 업황 부진으로 지난해 12월부터 마이너스 성장을 나타내고 있다. 이달 1∼20일 수출 역시 전년 대비 13% 이상 떨어져 9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수출이 부진하자 기업 투자도 주춤해졌다. 설비투자는 올해 2분기(4∼6월)까지 5개 분기 연속 감소했다.
당분간 수출과 투자가 살아날 가능성도 높지 않다. 한국의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은 미중 무역 갈등이 장기화하며 2분기 성장률이 27년 만에 최저치였다. 각국의 보호무역주의와 일본 수출 규제 등 돌발적인 위험 요소도 산적해 있다. 국내에선 일할 수 있는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데다 경제의 허리 격인 30, 40대 고용이 부진에 빠지면서 내수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 법인세 19% 감소, 비어가는 나라 곳간
정부는 이 같은 글로벌 경기 하강 국면을 극복하기 위해 ‘감내 가능한 수준’에서 적극적으로 재정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세계 평균과 비교해 국가채무비율 등이 양호한 만큼 예산을 최대한 동원해 경제 회복에 투입하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초슈퍼 예산’으로 주요 재정건전성 지표는 일제히 사상 최악 수준으로 악화됐다. 버는 돈보다 써야 할 돈이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이번 예산안이 국회에서 확정되면 내년 국가채무는 올해 740조8000억 원에서 805조6000억 원으로 64조8000억 원 증가한다. 이는 관련 통계가 집계된 1997년 이후 가장 큰 증가폭이다. 국내총생산(GDP)에서 국가채무가 차지하는 비율은 39.8%로 올해(37.1%)보다 2.7%포인트 늘어난다. 역시 역대 최대 규모다.
지난해와 올해 30조 원 안팎이던 적자국채 발행한도는 60조2000억 원으로 껑충 뛴다. 대내외 경제 여건의 악화로 법인세수가 18.7%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등 수입이 달리자 적자국채를 대거 발행해 쓸 돈을 마련하는 것이다.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성 기금을 제외한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사상 최대치인 72조1000억 원으로 늘어난다. GDP 대비 적자 비율은 ―3.6%로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과 같은 수준으로 돌아간다.
○ ‘국가채무비율 40% 초반 관리’ 목표 무산
이날 국무회의에서 확정된 2019∼2023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2021년부터 2023년까지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3.9% 선에서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문재인 정부 임기 마지막 해인 2022년 44.2%로 오른 뒤 2023년에는 46.4%까지 상승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정부는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국가채무비율을 40%대 초반 수준에서 관리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이 목표가 흐지부지됐다.
문제는 재정건전성이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세계 경제의 회복 모멘텀이 부족한데도 정부는 2021년 이후 세계 경제가 회복되고 혁신성장 정책의 성과가 나타나 세수가 늘고 재정이 안정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2020년 세수 전망은 내년 한국 경제가 2.6% 성장할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일부 투자은행 전망처럼 2%대 초반으로 성장률이 하락하면 세수는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정부 재정 투입이 성장률 상승과 세수 증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숫자를 예측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는 “실제로는 국가채무비율 등이 50%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는 만큼 정부가 현실적인 예측과 전망을 통해 국민에게 정확한 재정 상황을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송충현 balgun@donga.com·최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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