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게 해줄 테니 빚 대신 갚아라’ 한국휴렛팩커드의 갑질
계약 빌미로 하도급대금 대납 요구
공정위, 과징금 2억1,600만원 부과하고 대납금 3억7,000만원 반환도 명령
글로벌 정보통신(IT) 기업인 휴렛팩커드의 한국 법인이 우월적 지위를 악용해 하도급대금을 수주사업자에게 떠넘긴 사실이 적발돼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자신이 지급해야 할 하도급대금을 해당 거래와 무관한 수급사업자에 대신 지급하도록 요구한 한국휴렛팩커드에 재발방지 등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2억1,600만원을 부과했다고 11일 밝혔다. 한국휴렛팩커드가 ‘우리와 체결할 계약으로 수익이 발생할테니 우리가 지급해야 할 대금을 대신 내라’는 갑질을 했다는 게 핵심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한국휴렛팩커드는 2011년 말 KT로부터 플랫폼 구축 사업을 수주한 후 총 11개 수급사업자에게 서비스, 인프라 구축 등을 부문별로 위탁했다. 이 과정에서 8개 수급사업자와는 서면으로 하도급계약을 체결했으나, 3개 수급사업자(A사, B사, C사)와는 서면을 발급하지 않고 업무를 위탁했다. 이후 이들이 2012년 12월 위탁 업무를 완료했음에도 한국휴렛팩커드는 6억4,900만원에 달하는 하도급대금을 즉시 지급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꿍꿍이가 있었다. 한국휴렛팩커드는 2013년 11월 수급사업자 E사와 향후 진행될 사업 관련 계약 체결을 빌미로, A사에 지급할 용역 대금 3억1,460만원을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당시 설립 2년째인 중소사업자 E사는 새로운 프로젝트 관련 계약을 체결하고자 한국휴렛팩커드와 협의 중이었다. 원청과 하도급 관계라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대납을 강제한 셈이다. 실제 한국휴렛팩커드는 E사에 A사와 체결할 계약명, 10개월 분할 지급 방식 등 조건을 지시했고 E사는 이 지시에 따라 A사에 총 3억1,460만원을 지급했다.
또 한국휴렛팩커드는 B사와 C사에 지급해야 할 KT용역 하도급대금 3억3,440만원을 또 다른 수급사업자인 D사에게 지급하도록 지시했다. 이후 D사가 이에 대한 반환을 요청하자 한국휴렛팩커드는 일부를 E사에 떠넘겼고, E사는 D사에 5,500만원을 지급해야 했다.
공정위는 “자신의 요구에 따르지 않을 경우 향후 주요 거래처를 잃을 것을 우려한 수급사업자에 하도급대금을 대신 지급하도록 한 것”이라며 “IT 서비스 분야에서 원사업자가 영세한 중소업체에 미래 하도급계약 체결을 빌미로 경제적 부담을 지운 행위를 제재한 첫 사례”라고 설명했다.
공정위의 이번 시정명령에는 E사가 한국휴렛팩커드를 대신해 지급한 대납금 3억6,960만원을 다시 E사에 반환하라는 내용도 담겼다.
세종=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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