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왜곡 논란 '나랏말싸미' 관객 반응에 걱정이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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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왜곡 논란 '나랏말싸미' 관객 반응에 걱정이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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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나랏말싸미> 메인 포스터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01.

조철현 감독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한 번에 누군지 떠오르지 않았던 것은 그가 지금껏 한 번도 연출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신, 다른 익숙한 누군가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은 다른 동명의 인물이 꽤 오랫동안 영화계에 몸담고 있었다는 사실 덕분이었으리라. 감독이기 이전에 수많은 한국영화 제작에 앞장 서 왔고, 수백 편의 외화 자막 번역을 도맡아 온 인물이 바로 조철현 감독이었다. 그는 영화판에 발을 들인 지 30년이 넘어서야 자신이 직접 영화를 찍어보겠다는 생각을 한 셈이고, 그가 데뷔작으로 선택한 소재는 '세종과 훈민정음'이었다.

이 영화를 연출하는 데 있어 그가 가장 고심한 부분은 그의 동상이 광화문에 서 있을 만큼 국민들에게 친숙하고 잘 알려져 있는 세종(송강호 분)이라는 인물을 신선하게 재정립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높은 곳에 앉아 있던 인물을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다는 감독은 세종이라는 인물이 "자기 능력의 한계를 체감하고 우울해 하는 등 교과서에서 본 상투적인 모습이 아닌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받아들여지길 바랐다"고(2019년 1월 16일 <씨네21> [2019년 한국영화?] <나랏말싸미> 조철현 감독 - 갈등, 질투, 화해와 협업으로 완성되는 팽팽한 파트너십).
 

 영화 <나랏말싸미> 스틸컷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02.

영화 <나랏말싸미>는 문자와 지식을 권력으로 독점했던 시대를 배경으로 모든 신하의 반대를 무릅쓰고 백성을 위한 훈민정음을 창제했던 세종의 마지막 8년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내는 작품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평소 알고 있었던 '세종과 훈민정음 창제'와는 다른 모습의 그림이 그려진다. 훈민정음의 창제가 세종대왕의 온전한 업적이 아니라, 조선 왕조의 억불 정책으로 인해 핍박 받고 있던 승려 중 하나였던 신미(박해일 분)라는 한 스님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 영화는 한글 창제라는 소재에 조선시대의 불교라는 다소 익숙하지 않은 소재를 결합해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간다.

영화 초반부에서 해인사 팔만대장경 원본을 가져가려는 일본 대사들과 이를 저지하는 신미 스님의 내러티브를 삽입하면서 그의 역할을 드러냄과 동시에 불교 경전을 이루는 인도의 고어인 산스크리트어의 소리 글자로서의 가치를 끌어다 쓴다.

"중국의 압박, 신하들의 반발 같은 요소는 기존 사극에서 숱하게 봐왔기에 진부하게 느껴졌다. 신미대사는 <조선왕조실록>에 67번 정도 언급되지만 단 한 번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멸시 속에서 묘사된 인물이라 눈길이 갔다."(<씨네21> 조철현 감독 인터뷰)

그의 영화에 따르면, 무지한 백성들이 자유롭게 지식을 주고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한 문자를 원했던 세종과 그 문자를 통해 불교 문화의 새로운 부흥을 꿈꿨던 신미의 계획이 교합해 탄생한 것이 바로 '훈민정음'인 셈이다.

03.

일단, 영화 내부적으로 세종이 훈민 창제에 대한 목적을 갖게 만드는 장치와 이를 저지 당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큰 좌절을 겪게 되고 이에 반하여 높은 의지를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은 큰 이견이 없을 정도로 잘 구조화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한문을 기득권 세력이 권력을 유지하는 대상으로 삼으며 훈민정음 창제에 격렬히 반대하는 이유로 내세우는 부분이나 고려 후기 백성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낸 팔만대장경의 의미와 세종이 한글을 창제하고자 하는 이유가 맞닿아 있는 부분이 서로 잘 호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 세종의 한글 창제에 팔만대장경이 그 이유로서 타당한지, 또 선행하는 요소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부분은 가정되어야 한다.

유교 문화에 억압당한 불교 문화의 복원을 이유로 신미 스님을 회유하는 소헌왕후(전미선 분)와 그 대가로 사대문 안에 절을 하나 지어달라는 신미.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서까지 한글 창제에 나서고자 하는 세종의 모습 또한 마찬가지다. 영화의 구조 상 유교를 숭배하는 조선에서 임금이 이 거래를 받아들인다는 의미에는 그만큼 한글 창제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는 것이 담길 수 있다. 모든 신하의 반대와 국가의 기반이 되는 유교 사상을 뒷전으로 놓고서라도 그리 하겠다는 의지. 물론, 여기에도 위의 내용과 같이 가정에 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영화 <나랏말싸미> 스틸컷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04.

결정적으로 이 영화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은 모든 장면을 관객들이 오롯이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이 이야기가 완전한 픽션이 아니라는 큰 벽을 넘어서야 한다는 점이다. 영화의 가장 처음에 등장하는 '이 영화는 훈민정음 창제설 가운데 하나를 영화적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라 문구다. 감독은 이 영화의 모든 설정이 기정 사실과도 같은 주류의 창제설을 인정하고 허구로 제작되었다고 해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을 마치 기존의 창제설에 의문을 제기하듯 스크린 위에서 구현해내고 있다.

실제로 영화에서는 훈민정음 창제의 중요 지점에 있어야 할 세종의 역할을 많은 부분 신미 스님에게로 이양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두 사람이 ' ? '을 살려둘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 대립을 시작하게 되는 때부터는 한글 창제의 주체에 대한 의심이 강하게 두드러지기 시작하며, 세종대왕이 신미 스님의 의견에 동조하는 듯 '살리자'고 말하는 순간에 그 주체는 신미 스님이 되어버리고 만다. 뿐만 아니라, 모음의 '작대기' 활용이나 합자의 과정에 있어서도 한글 창제의 중요 지점은 모두 신미라는 승려 개인을 향한다.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한글 반포와 관련해 세종이 모든 백성이 읽고 쓰는 나라, 중국을 뛰어넘는 나라 등의 훈민 정음의 의미와 전파의 목적, 그 활용의 의의 등에 대해 자신의 포부를 강하게 밝히는 듯 포장되지만, 이미 그 과정에서 신미 스님이 훈민정음의 주인이 되어버린 후에는 별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되어버린다.

05.

다만 이 영화에서 한글 창제의 과정, 세종과 신미, 두 인물의 관계 밖에서 자신의 서사를 만들어 나가는 소헌왕후의 모습 하나만큼은 인상적으로 느껴진다. 오히려 실제 세종의 모습이 그녀의 모습을 닮아 있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진취적이고 명견을 가진 듯한 인물로 그려지는데, 그녀를 그려내는 데 있어서 만큼은 조철현 감독이 의도했던 기존의 틀을 깨고 신선함을 불어넣는 일에 성공한 듯 싶다.

일종의 구조화와도 같은 두 인물의 브로맨스 대신 선택한 가장 높은 이와 가장 낮은 이의 끊임없는 대결 구도의 가운데 서서 그 균형을 유지해주는 역할 또한 소헌왕후의 몫이라 할 수 있다. 과거의 공통 분모를 갖고 있는 신미와 현재의 공통 분모를 가진 세종의 사이에서 두 인물의 극단적인 이분법을 상쇄하며, 마지막에는 두 대결 구도가 대화합의 장면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세종과 신미가 서로는 알아차리지 못하는 각자의 약점을 잘 보듬어 두 인물의 접점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부여 받는 것이다.
 

 영화 <나랏말싸미> 스틸컷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06.

이 영화 <나랏말싸미> 중에는 '사대부에게는 왕도 넘을 수 없는 금도가 있습니다.' 라는 대사가 나온다. 궁 내에 승려들을 들인 뒤 신하들 몰래 훈민정음을 창제하고자 하는 세종을 견제하는 신하 정인지(최덕문 분)의 말이다. 영화 속 이야기와 영화 밖 실제의 구분에 대한 이야기는 오랫동안 진행되어 온 풀리지 않는 논의 가운데 하나다.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작품을 연출하고 그 소재를 활용하는 데 있어 성역은 없어야 한다는 쪽과 픽션이라고 하더라도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쪽의 다툼이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나라 역사에서 세종대왕이라는 인물의 업적과 훈민 정음의 역사적 가치를 생각한다면, 영화 <나랏말싸미>는 이 부분에 대한 깊은 고민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작품 <나랏말싸미>의 경우에는 온전한 픽션에도 속하지 않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재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면, 그 다음으로는 '굳이'라는 측면의 물음과 이후에 파생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영화에 대한 평가는 관객들 각자의 몫에 달려 있겠지만, 영화가 끝나고 가장 먼저 들려온 극장 관객의 실제 반응이 '이거 진짜로 그렇다는 거야'였다는 점에서 걱정부터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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