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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기억은 불공정… 한국은 그저 ‘내로남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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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중부 꽝남성 하미 마을의 위령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한국 군인들에게 학살 당한 주민 135명을 기린다. 한국 군인의 만행을 비석에 새겼었지만, 재원을 댄 참전군인단체가 반발해 연꽃 문양의 대리석으로 관련 부분을 가렸다. 더봄 제공

베트남 중부 꽝남성에 있는 하미 마을은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 다낭과 호이안 해안과 가까운 휴양지다. 호화 리조트가 즐비한 중심가에서 벗어나 논길을 따라 10분쯤 걸으면 위령비가 나타난다.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8년 1월 학살당한 민간인 135명의 이름이 비석에 적혀 있다. 88세 여성도 있고, 갓 태어나 이름조차 없는 아이도 있다. 

누가 이들을 죽였는지는 기록돼 있지 않다. 학살 만행을 저지른 건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 군인들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사실을 비석 뒷면에 새겼다. 증오해서가 아니라 화해를 건네기 위해서였다. 위령비 조성 기금을 댄 한국의 참전 군인 단체는 끝까지 잔인했다. 학살을 사과하기는커녕 한국 관련 문구의 삭제를 요구했다. 주민들은 위령비 뒷면에 연꽃 문양의 대리석을 덧대 진실을 감추었다. ‘가해자 없는 추모비’는 역사의 진실에 가닿지 못한 반쪽 짜리 기념물로 남아 있다. 

15년을 끈 베트남전의 포성은 1975년 멎었지만, 전쟁의 기억은 여전히 선연하다.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그 기억이 어떻게 존재하는가를 추적한 책이다. 베트남계 미국 작가 비엣 타인 응우옌(48)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교수가 썼다. 보트 피플 출신인 그는 1975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베트남전 직후 베트남과 미국 사회 이면을 이중간첩의 시각으로 그린 장편소설 ‘동조자’로 2016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이번 책은 ‘모든 전쟁은 두 번 치러진다’는 발상에서 출발한다. 처음엔 전쟁터에서, 두 번째는 기억 속에서다. ‘기억 전쟁’을 파헤치려고 미국, 베트남, 한국의 소설, 영화, 사진, 기념관 등 문화 기록 유산을 10년간 살핀 저자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베트남전쟁은 우리 안에서 떠나지 못하고 새로운 전쟁의 비극을 낳고 있다.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죽은 이들의 수도’라 불리는 베트남 쯔엉선 국립묘지. 베트남 전쟁으로 희생된 5만 여명이 안장돼 있다. 가지런하게 정돈돼 있는 비석과 묘지들은 전쟁의 참혹한 고통을 감추고 있다. 더봄 제공

베트남전의 기억은 공정하지 않다. 제멋대로 왜곡되고 미화됐다. 타자의 기억은 무심하게 폐기됐다. 미국 입장에서 베트남전은 역사상 유일하게 패배를 맛본 치욕이다. 미국은 기억 전쟁에선 승리했다. 할리우드 영화는 베트남전에서 미국이 저지른 폭격과 잔학 행위에는 눈 감았다. 밀림에서 베트공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미군 병사의 비극만 조명했다. 일방적 희생자인 척했다. 영화를 본 미국인들의 애국심은 치솟고 죄책감은 사라졌다. 

베트남도 기억의 왜곡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전쟁에서 승리한 베트남은 영웅 만들기에 골몰했다. 호찌민 주석의 시신은 투명한 관에 안치돼 하노이 시내 중심부에 전시돼 있다. 혁명 영웅의 시신은 이를 테면 국뽕의 상징물이다. 전쟁에서 희생된 수백만의 생명, 생존자들의 고통을 베트남은 제대로 성찰하지 않는다. 

한국은 어떠한가. ‘베트남전은 미국의 요구에 등 떠밀린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것이 그간 주류가 세운 프레임이다. 소설, 영화 등에서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 군인들은 무력하고 나약한 객체로 묘사된다. 한국군이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진실’은 외면한다. 저자는 그런 한국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한국은 피해자였던 적이 없다. 주인에게 잘 배운 용역이자 대리인, 측근이었다.” 한국은 일본을 향해선 과거사 문제를 들이밀지만, 베트남전 당시 저지른 과오는 적극 사과하지 않는다. 저자는 한국이 과거사를 대하는 태도가 ‘내로남불’이라고 꼬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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