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면허값 9500만→6400만원···'3800원 인생'이 무너진다
“아저씨, 거기다 차 대면 안 돼. 저 앞으로 빼.”
자주 갔던 단골 주유소였다. 황급히 도로변에 차를 세운 뒤 화장실로 뛰어가는 순간 직원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낯익은 직원의 낯선 목소리는 급한 생리 현상마저 잊게 하였다. “죄송합니다….” 차를 먼발치에 대고 종종걸음으로 다시 화장실에 갔다. 못마땅한 눈초리는 화장실에서 나와 차에 타는 순간까지 뒤통수에 꽂혔다.
2011년 7월 기자는 취재 목적으로 택시 운전 면허를 취득했다. 이후 7년여간 민심청취 취재를 위해 20여 차례 150시간 이상 택시를 운전했다. 파란색 기사 유니폼을 입고 황토색 택시 운전석에 앉아서 경험한 세상은 뒷좌석에서 봤던 평온한 풍경과는 매우 달랐다. 늘 가던 주유소의 친절했던 직원은 추상같이 무서웠고, 손님이 없으면 사납금 압박에 안절부절못하게 되는 고단한 삶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생리적 욕구 해결이었다. 삼시 세끼 규칙적으로 밥 먹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던 위장은 도무지 승객 스케줄에 맞춰 움직여 주지 않았다. 물은 아무리 조금씩 마셔도 화장실은 두세 시간마다 가고 싶어졌다. 마음 놓고 갈 수 있는 화장실을 찾는 것부터가 스트레스였다.
야간반 운행(오후 4시~오전 4시)은 택시기사들이 선호하는 시간대다. 택시 수요가 늘어나는 심야 바짝 일하면 사납금(평균 12만~14만원)을 채우기 한결 수월해서다. 하지만 늘 두려운 일이기도 했다. 택시기사들 사이에 이른바 ‘골뱅이’로 불리는 만취 승객 때문이다. 반말은 예사고 “재떨이를 달라” 등 기사를 하인 부리듯 부리기 일쑤다. 서비스가 마음에 안 든다며 5분여간 탄 뒤 요금도 내지 않고 가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길을 잘못 찾아 헤맬 때면 “아저씨 왜 사기 치냐”고 핏대를 세우는 승객한테 진땀 뺀 적도 있다.
힘들게 일해도 손에 쥐는 돈은 그리 많지 않다. ‘만근’(월 26일)을 채우면 받는 월급은 120만~130만원이다. 나머지는 매일 사납금 이상을 벌어서 쓸 만큼 채워야 한다. 자신을 택시 기본요금에 빗대 ‘3800원 인생’이라 부르는 거친 삶이다.
그런데도 택시 업계엔 사람이 몰렸다.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 자기 소유 개인택시를 살 수 있다는 노후보장책이 있어서다. 직장 생활하던 이들이 돈을 모아 개업해 ‘사장님’ 소리를 듣고 싶어하는 것처럼 법인택시 기사들도 '택시 업계의 자영업자'가 되기를 원했다. 사납금 스트레스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주ㆍ야간 교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시간에 일할 수 있어서다. 아무나 개인택시를 몰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법인택시 기사로 최소 3년 이상 무사고 운전을 해야 개인택시 면허를 인수할 자격이 생긴다. 지방자치단체에선 무료로 면허를 발급했지만, 면허 신규발급이 묶이면서 택시 면허를 사려면 1억원 안팎의 자금도 필요했다. 개인택시 기사 면허의 존재는 어려운 근무 여건을 견디게 해주는 버팀목이었다. 김충식 오케이택시 대표는 “예전엔 개인택시를 갖겠다는 목표를 갖고 10년 이상 법인택시를 운전하는 장기 근속자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택시 업계에 사람이 오지 않기 시작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택시기사 삶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 점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든든한 노후보장책이었던 개인택시면허 시세가 몇 년 사이 급락 추세를 보여서다. 개인택시 매매 중개업체인 서울택시랜드에 따르면 지난해 초 9500만원 안팎을 오갔던 개인택시 시세는 6400만원까지 떨어졌다.
최근 택시기사들이 카카오모빌리티, 타다 등 새로운 운송 서비스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여러 가지 분석들이 나오지만 가장 큰 이유는 수십 년간 쌓여온 시장의 신뢰를 바탕으로 형성된 비교적 예측 가능했던 노후가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으로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김기용 서울택시랜드 대표는 “타다, 카풀 등 택시를 대체하는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한 이후 개인택시 면허를 사려는 사람이 줄어 거래 건수도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한국만 승차공유 시장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갈라파고스 현상’에 대한 해법은 승차공유 규제는 풀되, 예측 가능했던 삶이 무너진 이들을 어떻게 연착륙시키느냐에 달렸다. 하지만 한쪽은 “퇴출 아니면 대안이 없다”고 외치고 있고, 반대쪽은 “혁신산업 발목 잡지 말라”고 반발하고 있어 평행선만 달리고 있다. 그러는 사이 세계 각국에선 새로운 승차공유 서비스가 속속 등장하며, 혁신적 유니콘(기업가치가 10억 달러를 넘는 스타트업)을 키워내고 있다. 이미 자율주행차 시대로 굴러가는 바퀴는 브레이크 없이 가속도가 붙고 있다. 그런데도 이를 중재해야 할 정부는 적극적인 노력 없이 정치권과 업계 눈치만 보고 있다.
“전통산업을 살려야 혁신산업이 산다.” 지난 19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던 이재웅 쏘카 대표가 했던 말이다. 갈등의 한쪽 당사자 얘기이긴 하지만 귀담아들은 만하다. 어찌 됐든 고단한 삶을 살아온 택시 기사와 앞으로 달려나가야 할 업체 두 당사자가 알아서 갈등을 풀라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얘기와 마찬가지다. 모든 당사자가 테이블에 앉아 미래를 보고 사태를 풀어 나가는 진정한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한 시점이다.
ㅡㅡ지우지 말아 주세요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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