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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보틀' 상륙에 울고 웃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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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미국 커피 브랜드 블루보틀 국내 1호점 앞에 고객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이석우 기자

서울 성수동은 커피계의 ‘애플’ 블루보틀의 입점으로 한층 ‘힙’한 동네가 됐다. 새로움을 맛보려는 ‘인싸’들이 긴 줄을 만들면서 낡은 골목에도 활기가 돈다. 당장 인근 주변 상가들은 블루보틀이 문을 연 이후 매출이 늘었다. 성동구도 블루보틀을 환영한다. 상권 활성화로 ‘힙 플레이스’ 성수동의 수명은 늘어나게 됐다. 화제를 몰고 다니는 임차인을 맞은 건물은 가치가 뛰어올랐다. 건물주는 블루보틀 프리미엄을 톡톡히 누린다. 이른바 ‘블세권’(블루보틀이 가까운 지역)에 편입된 주변 건물들도 호재를 맞았다. 2호점 예정지인 종로구 삼청동은 블루보틀로 지역 상권이 되살아나길 기대하고 있다. 블루보틀이 내건 지역사회와의 상생은 벌써 효과가 나타난 것처럼 보인다.

건물 전체를 사옥으로 쓴다더니…
지난 5월 14일 블루보틀 1호점이 입점한 지하 1층 지상 4층의 건물을 찾았다. 블루보틀이 들어서기 전에는 세입자가 많았다. 1층에만 식당 세 곳이 영업을 하고 지하에는 노래방과 검도장, 발 마사지숍이 있었다. 2층은 통신대리점 사무실, 3~4층은 방 80개 규모의 고시원이었다. ㄱ씨(70)는 1996년 12월부터 이 건물 1층에서 오리고깃집을 했다. 남편 퇴직금으로 1억원을 만들어 이전 세입자에게 권리금을 주고 내부 설비를 다시 했다. 다행히 장사가 잘됐다. 맛집으로 입소문이 났고 동네에서 인심을 얻었다. 동네 단골들의 도움 덕에 조류독감 위기도 넘겼다.

임대료 걱정도 없었다. ㄱ씨는 19년 동안 한 건물주와 계약을 했는데, 임대료 인상은 딱 한 번뿐이었다. 호박밭 터에 직접 건물을 올린 건물주는 ‘다들 내 집에 들어와 장사를 잘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분쟁은 없었다. ㄱ씨의 식당은 2017년 11월까지 21년 동안 한자리를 지켰다.

2015년에 유명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법인으로 건물주가 바뀌었다. ㄱ씨는 월 임대료를 30만원 올려 새 건물주와 계약서를 다시 썼다. 2016년 5월 ㄱ씨는 새 주인으로부터 가게를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임대료를 올려주겠다고 했지만 건물주 측은 직접 건물을 써야 한다며 계약 연장을 하지 않았다.

ㄱ씨를 비롯한 세입자들과 건물주의 다툼이 시작됐다. 특히 ㄱ씨의 식당처럼 수십 년이나 된 식당의 권리금이 문제였다. 권리금 정산 요구에 대해 건물주는 줄 수 없다고 맞섰다. ㄱ씨가 건물주로부터 제시받은 이사비용은 70만원이었다. 명도소송이 이어졌고 세입자들은 패소했다. 애초에 세입자에게는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다. 세입자들이 디자이너 사무실에 찾아가 어려움을 호소했지만 소용없었다. 상인회에서 쓴 탄원서와 주민들의 서명운동도 결과를 바꾸지 못했다.

노래방을 시작으로 건물에 있던 점포들이 떠났다. 30년 동안 장사를 했던 칼국숫집과 2011년 문을 연 샤브샤브집도 명도소송 끝에 합의를 하고 가게를 비웠다. 마지막까지 남았던 ㄱ씨는 성동구의 중재를 통해 합의를 하고 나왔다. 칼국숫집과 샤브샤브집은 다른 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지만 ㄱ씨는 식당을 접었다. 집도 지방으로 옮겼다. ㄱ씨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몸이 안 좋아져 병원에 다니고 있다”며 “지금도 건물만 보면 심장이 떨려서 아예 먼 곳으로 이사를 왔다”고 말했다.

ㄱ씨가 나가자 건물 리모델링 공사가 시작됐다. 붉은 외벽으로 새롭게 단장한 건물에는 미국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블루보틀이 들어섰다. 건물 전체를 사옥으로 써야 해서 임대를 줄 수 없다던 디자이너 측의 설명과 달랐다. 왜 거짓말을 했느냐고 따져 물을 세입자는 없었다. 세입자가 떠난 뒤 성동구는 블루보틀과 지역 상생발전 협약을 맺었다.

리모델링 전 블루보틀 입점 건물 전경/다음 로드뷰 캡쳐

건물 시세·상가 매출 상승 ‘블세권’ 형성
블루보틀 입점은 연일 화제를 불러 모았다. 블루보틀 국내 1호점은 어디가 될 것인가에 대한 관심도 뜨거웠다. 강남에 첫 매장을 열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블루보틀은 성수동에 둥지를 틀었다. 블루보틀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성수동의 지역적 특성이 블루보틀 브랜드 철학과 잘 맞는다”고 설명했다. 불루보틀이 택한 성수동은 다시 한 번 ‘힙 플레이스’의 위치를 공고히 만들었다. 김영준 상권분석 전문가는 “블루보틀이 입점지역에 소비자를 끌어들일 영향력을 지닌 것은 사실”이라며 “성수동은 블루보틀을 찾는 사람들이 즐길 만한 콘텐츠가 있는 상권이어서 지역과 블루보틀이 상생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블루보틀이 입점한 건물도 ‘핫’하다. 인테리어 콘셉트와 디자인까지 뉴스가 됐다. 블루보블이라는 ‘키 테넌트(사람을 끌어들이는 핵심 점포)’ 입점으로 건물 가치가 상승했다. 성수동 인근 부동산 중개인은 “블루보틀로 동네 인지도가 높아지는 효과도 있지만,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사람은 건물주”라며 “임대료가 0원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블루보틀 효과’는 금세 나타나기 시작했다. 블루보틀 덕에 유동인구가 몰려 주변 상가 매출과 건물 시세가 동반 상승한다는 ‘블세권’이 형성됐다. 실제 블루보틀 인근 커피머신 판매 매장과 인근 가죽공예 전문점은 매출이 늘었다. 커피머신 업체 관계자는 “커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블루보틀을 찾고 자연스럽게 기계를 둘러보러 오는 경우가 많다”며 “우리뿐만 아니라 주변 상인들 대부분이 매출이 올랐다고 한다”고 말했다. 블루보틀 입점이 확정된 이후 주변 임대료도 상승했다. 최근 블루보틀 인근에서 영업을 시작한 점주는 “블루보틀 효과를 감안해 상대적으로 높은 임대료를 책정해 계약을 맺었다”며 “그래도 블루보틀로 상가에 활기가 돌아서 만족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임대료 상승을 동반한 블루보틀 효과를 모두가 반기는 것은 아니다. 블루보틀 건물에 있던 세입자들은 떠났지만 블루보틀 뒷골목에는 비슷한 처지의 세입자들이 남아있다. 이들은 주로 성수동 내 공장노동자를 상대로 영세한 ‘밥집’을 운영하는데, 임대료가 오르면 버틸 여력이 없다. 해당 지역은 성동구가 지정해 관리하는 젠트리피케이션 위험지구가 아니기 때문에 보호받기도 어렵다.

김강 예술과 도시사회 연구소 대표는 “블루보틀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블루보틀을 악용하는 기획부동산이 문제”라며 “이미 블루보틀 핑계로 판을 키워 부동산 매매로 한몫 잡으려는 세력들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출처 https://news.v.daum.net/v/20190518133107913?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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