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대신 채증 카메라 들었다…패싸움 대치동 교회 주일 풍경
소화기 난동 교회, 경찰 기동대도 출동
성경책 대신 채증 카메라와 팻말, 현수막을 들었다. 예배를 앞둔 교회 앞에서는 날선 구호가 울려 퍼졌다. 간간히 욕설도 튀어 나왔다. 나흘 전 교인 70여명이 충돌하고 소화기 분사까지 벌어진 서울 강남구 대치동 S 교회의 ‘주일’ 풍경이다.
양측의 갈등은 2016년부터 3년째 이어지고 있다. 담임목사측은 원로목사측이 수십억원대 횡령을 저질렀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담임목사측 관계자는 “2008년 원로목사가 공시지가 30억원짜리 땅을 130억원에 사면서 횡령이 있었을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원로목사측은 "담임목사측의 일방적 주장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의혹을 수사한 수서경찰서는 지난 2월 해당 사건을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의혹 제기 이후 양측은 수차례 물리적 충돌을 빚었고 소송전으로 이어지면서 감정의 골은 깊어졌다.
5일 오전 10시50분 대치동 S교회. 원로목사측 교인 100여명과 이들을 막는 담임목사측 교인 30여명이 2층 출입문을 두고 대치했다. 이날 오전 10시쯤부터 모인 원로목사측은 팻말을 들고 2층으로 진입하려했고, 담임목사측은 대형 현수막을 펴 막았다.
양측은 불법 행위를 채증하기 위해 서로에게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담임목사측 관계자는 "교회 입구에만 CC(폐쇄회로)TV가 9대 설치돼 있다"며 "이렇게 하지 않으면 억울한 일을 당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충돌에 대한 우려로 제3기동단 소속 1개 기동대 50여명이 주변을 지켰다. 기동대 관계자는 "지난 1일 이후 갈등이 커져서 주변을 지키고 있다"며 "지난해에도 이런 일이 여러번 있었다"고 말했다.
교회에서 고성이 퍼지고 경찰 기동대까지 나타나자 인근 주민들의 이목이 쏠렸다. A씨(60)는 "주말마다 이렇게 소란스럽다"며 "사정은 복잡하다지만 매주 저렇게 싸우니 보기 안좋다"고 말했다.
이날 대치는 오전 11시 10분쯤 원로목사측이 철수하면서 마무리됐다. 이후 양측은 각각 1층과 2층에서 예배를 진행했다. 한 교회의 교인들이 같은 시간에 따로 예배를 하는 난감한 상황은 1년째 이어지고 있다. 오랜 갈등으로 교인들이 떠나면서 2만명(등록 교인 기준)에 이르렀던 교회의 규모도 양측 합쳐 2000여명 규모로 급감했다.
교회 재정 문제로 2016년부터 시작된 양측의 갈등은 지난 1일 이뤄진 당회를 기점으로 폭발했다. 지난 1월4일 법원은 S교회 담임목사인 박모 목사를 직무정지 처분했다. 이어 4월에는 법원이 강모 변호사를 박 목사의 직무대행으로 선임했다. 원로목사측 관계자는 "강 변호사는 법적으로 정당성을 갖고 있다"며 "법원 판결까지 부정하는 담임목사측은 법치주의를 파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담임목사측은 목사가 아닌 변호사가 주최한 당회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담임목사측 관계자는 "병원을 운영할 수 있는 건 면허증이 있는 의사 뿐이듯 교회 운영도 성직자인 목사가 해야한다"며 "세상에 변호사가 교회 일을 결정하는 경우가 어디있느냐"며 반발했다. 교계에서도 성직자가 아닌 이를 직무대행으로 지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S교회 사태는 교회법과 법원의 결정이 충돌하는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양측이 직무대행 권한을 두고 공방을 벌이고 있지만 일각에선 결국 이권 다툼이 갈등의 시작이라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인은 "교회가 한참 클 때는 헌금 수입이 월 수억원대에 이르렀다"며 "양측에 목사와 장로들은 물론 그 자식들까지 가세해서 갈등을 벌이고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한편 원로목사측이 오는 8일 다시 당회를 소집한다고 예고하면서 재충돌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원로목사측 관계자는 "소화기 난사 같은 불법 행위 때문에 이뤄지지 못한 당회를 이번주에 다시 열 예정"이라며 "방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남궁민 기자 namgung.min@joongang.co.kr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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