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예찬 오픈카’ 지프 랭글러 파워탑, 나쁜 남자의 착한 선택
[사진제공=FCA코리아]‘순간이동’ 버튼 두 개 눌렀을 뿐인데 다큐멘터리 채널로 들어왔다. 몸은 번잡한 도시에서 스티어링휠을 잡고 있지만 유체 이탈한 영혼은 아프리카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처럼 지붕이 없는 ‘무개(無蓋) 오프로더’를 타고 때로는 정글을 때로는 초원을 누빈다.
어벤져스 히어로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순간이동 퍼포먼스를 보여 준 마법사는 FCA코리아가 국내 수입·판매하는 지프(Jeep) 랭글러 파워탑이다.
랭글러는 ‘세계 최초 SUV 오픈카’다. 지난 2016년 8월 출시된 레인지로버 이보크 컨버터블이 세계 최초로 ‘SUV 컨버터블’이라는 세그먼트를 개척했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랭글러의 원조이자 SUV의 원조라 부르는 미군(美軍) 지프는 제2차 세계대전에 처음 투입될 당시부터 지붕이 없었다. 지프 후손으로 1987년 첫 출시된 랭글러도 차체와 루프를 연결한 결합 볼트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지붕을 떼어낼 수 있었다.
랭글러는 배다른 영국 형제인 랜드로버 디펜더와 함께 다큐멘터리 채널 단골 출연자다. 정글, 사막, 초원을 가리지 않고 주파할 수 있는 강력한 오프로드 성능과 지붕과 문을 모두 떼어내 활용성과 개방성을 높일 수 있는 오픈 에어링 기능 덕분이다.
랭글러 파워탑은 오픈 에어링 기능을 더욱 향상시킨 오픈카다. 세단이나 쿠페 베이스로 만든 오픈카(컨버터블, 카브리올레, 로드스터, 스파이더)와 달리 지붕은 물론 도어와 리어 윈도우까지 떼어낼 수 있다. 높은 전고로 시야도 탁 트여 오픈 에어링의 즐거움이 배가된다. 낭만과 자유를 만끽하게 해주는 ‘오픈카 제왕’인 셈이다.
랭글러 파워탑은 오픈 드라이빙을 더욱 편리하게 만들어준다. 지프 브랜드 최초로 전동식 소프트탑(천 소재로 만든 지붕)을 적용한 게 대표적이다. 룸미러 위쪽에 있는 버튼만 누르면 시속 97km에서도 지붕을 2열까지 접을 수 있다. 지붕은 파노라믹 선루프보다 더 길고 더 넓게 젖혀진다.
기존 모델의 도어나 리어 윈도우를 탈거하려면 볼트 24개를 풀어야 하지만 랭글러 파워탑은 4개만 빼내면 된다.
FCA코리아는 지난 1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광장에서 열린 랭글러 파워탑 출시행사장에서 도어와 리어 윈도우를 제거하는 퍼포먼스도 열었다. 성인 남자 4명이 투입돼 3분 만에 작업을 완료했다. 기존 모델의 경우 성인 남자 2명이 도어와 리어 윈도우를 떼어내는 데 30분 정도 걸린 점을 감안하면 탈부착 시간이 5배 가량 빨라진 셈이다.
전장x전폭x전고는 4885x1895x1850mm다. 실내공간을 결정하는 휠베이스는 3010mm다. 뒷좌석 공간은 성인 3명이 충분히 앉을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하다.
올뉴 랭글러는 누가 봐도 한눈에 랭글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기존 모델과 닮았다. 민간용 지프 원조 CJ 모델의 전통을 계승한 7슬롯 그릴, 키스톤 모양의 그릴 상단, 아이코닉한 원형 헤드램프, 사각 테일램프 때문이다.
그러나 기존 랭글러보다 더 세련돼졌다. 그릴 위에 있던 지프 엠블럼은 사라졌다. 헤드램프에는 바깥 둘레를 감싸는 광륜 형태의 주간주행등이 장착했다.
헤드램프 아래 있던 전방 방향 지시등은 거대한 사다리꼴 프런트 펜더 앞쪽으로 자리를 옮기고 LED 방식을 채택했다. 범퍼 중앙에 있던 안개등은 범퍼 양쪽 끝 방향으로 이동했다. 차체 중심 부위에 몰려있던 6개의 원형 램프를 분산시켜 더 넓게 강인해 보이도록 다듬은 셈이다.
LED 사각 테일램프은 사각형 구조로 전통을 계승했지만 중앙 부위를 오목하게 만든 모래시계 모양을 채택해 세련미를 향상했다. 후방 카메라는 트렁크에 달린 스페어타이어 휠 중앙에 숨어있다.
실내는 클래식과 모던의 조화를 추구했다. 스티어링휠과 원형 송풍구 모양은 그대로다. 대신 센터페시아 디스플레이 아래에 있던 두 개의 송풍구를 좌우 양측 송풍구와 일렬로 배치해 균형감을 살렸다.
기존에 커다란 버튼과 다이얼 때문에 단순하고 투박했던 센터페시아도 8.4인치 터치스크린과 조작편의성을 높인 버튼 및 다이얼로 전통을 살리면서 현대적인 감각을 강조했다. 룸미러는 프레임을 없애 세련미를 살렸다.
기어레버 옆에는 2H(2륜고속), 4H(4륜고속) 오토, 4H 파트타임, 4L(4륜저속)을 선택할 수 있는 레버가 따로 있다. 기어를 중립으로 놓으면 구동모드를 바꿀 수 있다. 여기에 Tru-Lok 전자식 프런트 리어 디퍼렌셜 잠금장치, 전자식 프런트 스웨이바 분리장치까지 갖췄다. ‘4륜 폼’만 잡는 SUV와 ‘차원이 다른 오프로더’라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센터페시아에는 오프로드용 라이트 등 외부 장치와 연결할 수 있는 4개의 AUX 스위치가 따로 마련됐다. 실내를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는 모파 플로어 매트도 적용했다.
[사진제공=FCA코리아]
시승차는 2.0ℓ 터보차저 직렬 4기통 가솔린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를 장착했다. 최고 출력은 272마력, 최대토크는 40.8kg.m다. 연비는 8.2km/ℓ다.
2.0ℓ 엔진이지만 기존 V6 3.6 엔진 성능(284마력, 35.4kg.m)에 맞먹는다. 최첨단 냉각 기술, 윈드쉴드 각도를 조정한 공기역학 디자인 설계로 연료 효율성도 개선했다.
타이어는 미국 BF굿리치가 만든 머드-터레인 타이어(255/75P17)로 승차감을 개선한 오프로더용이다. 미쉐린이 인수한 BF굿리치는 미국항공우주국(NASA) 우주왕복선용 타이어를 만든 곳으로 유명하다.
차고가 높아 운전석에 앉으려면 차량 안쪽에 부착된 손잡이를 잡아야 한다. A필러(앞 유리창과 앞문 사이의 비스듬한 기둥) 하단에 있던 사이드미러 위치는 윈도우 쪽으로 살짝 상향 조정됐다. 작은 움직임이지만 운전자의 눈과 가까워져 시인성이 더 좋아졌다. 벨트라인은 기존보다 낮아져 측면 시야가 넓어졌다.
스티어링휠은 일반 온로드 도심용 SUV라 여길 정도로 기존보다 가벼워졌다. 움직이는 데 많은 힘이 들지 않는다. 다만 방향지시등 레버는 소재 질감이 아쉽다. 속이 빈 플라스틱 손잡이처럼 손맛이 가볍고 작동할 때도 딸깍거리는 소리가 부자연스럽게 난다. 세련되게 진화한 인테리어에 어울리지 않는다.
7인치 TFT 컬러 디스플레이로 구성된 계기판에는 속도 게이지, RPM 게이지, 내비게이션 등 차량 정보가 나온다. 화질이 우수해 운전 중에도 한 눈에 차량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2H 모드에서는 오프로더가 맞나 싶을 정도로 가볍게 움직인다. 가속페달 응답성은 빠르다. 가속페달을 밟으면 시원하게 내달린다. 노면을 타기는 하지만 비교적 만족스러운 승차감을 선사한다. 노면 소음은 오프로더라 여길 수 없을 정도로 적다. 소프트탑을 닫은 상태에서 들리는 바람소리는 일반적인 SUV보다는 큰 편이지만 귀를 거슬릴 수준은 아니다.
주변 소음을 줄여주는 액티브 노이즈 컨트롤 시스템, 오프로더용이지만 승차감을 개선한 타이어도 정숙성에 기여한다. 여기에 알타인 프리미엄 스피커 9개로 구성된 오디오 시스템이 웅장하면서도 깨끗한 음질로 드라이빙의 재미를 더해준다.
국도에서 4H 모드로 바꾸자 차체 움직임이 좀 더 묵직해지면서 안정감 있게 주행한다. 지그재그 구간을 통과할 때도 좌우 흔들림이 적어 불안감을 주지 않는다.
[사진제공=FCA코리아]
인공 오프로드 구간에서는 4H·4L 모드로 불규칙 험로를 재구성한 범피 코스, 비스듬한 자세로 주행하는 사면 경사로 코스, 헛바퀴를 돌게 만드는 롤러 코스를 체험했다. 일반적으로 울퉁불퉁한 구간에서는 4H, 경사각이 크거나 큰 힘을 필요로 할 때는 4L을 선택한다.
4H 모드만으로도 범피 코스, 사면 경사로 코스는 쉽게 통과했다. 2H 상태에서는 헛바퀴가 도는 롤러 코스에서도 4H로 바꾸자 롤러의 방해를 뚫고 전진했다.
안전성도 향상됐다. 제동 보조 시스템을 갖춘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풀-스피드 전방 추돌 경고 플러스 시스템, 사각지대 모니터링 시스템, 후방 교행 모니터링 시스템을 갖췄다.
랭글러 파워탑은 강력한 오프로더 성능과 오픈 에어링 기능으로 자연과 하나 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를 선사한다. 온로드에서는 패밀리 SUV로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편안함과 안락함과 안전함까지 갖췄다.
그래서일까? 뒷좌석 시트에 적용된 영유아용 카시트 결합 장치인 ISO FIX도 달리 보인다. 2010년 이후 출시된 차량에 채택해야 하는 의무사항이지만 가족이 아니라 혼자 모험을 떠나는 ‘나쁜 남자용 오프로더’였던 랭글러의 변화를 상징하는 것처렴 여겨져서다.
나쁜 남자를 위한 오프로더에서 ‘패밀리 온·오프로더’로 진화한 랭글러 파워탑은 가족과 함께 여행이 아니라 모험을 떠날 수 있는 든든하고 낭만적인 동반자다.
ㅡㅡ지우지 말아 주세요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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