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電 비중은 쏙 뺀채… 정부 "재생에너지 35%로 확대"
정부가 현재 7~8% 수준인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40년 30~35%로 대폭 늘리기로 했다. 2017년 세운 '2030년 재생에너지 20%' 목표치에서 더 늘려 잡은 것이다. 원전 비중은 밝히지 않은 채 기존 원전은 더 이상 수명을 연장하지 않고, 신규 원전은 짓지 않는 방식으로 줄이겠다고만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9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안'을 공개했다. 에너지기본계획은 5년 주기로 수립하는 에너지 분야 최상위 법정 계획으로, '에너지 헌법'으로 불린다.
정부는 2차 에너지기본계획 때 내놓은 2035년 원전 비중 29%, 재생에너지 비중 11%를 5년 만에 뒤집었다. 계속되는 비판과 논란에도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탈(脫)원전·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이 최상위 에너지 정책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정부는 미세 먼지와 온실가스 발생 주범으로 꼽히는 석탄 발전은 감축하기로 했다. 신규 석탄발전소는 짓지 않고 낡은 시설은 폐지한다. 원전·석탄 발전을 줄이고, 값비싼 재생에너지·LNG를 대폭 늘리면 전기요금 인상 압박은 커지게 된다. 하지만 정부는 원전·석탄 발전 비중 전망과 전기요금 인상 요인에 대해서는 계획안에서 밝히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정당화하기 위한 짜맞추기식 계획"이라고 비판했다. 정부가 이날 주최한 공청회에서도 "에너지 정책을 다시 짜라"는 반발이 나왔다.
원전 재개 vs 반대… 공청회장의 두 목소리 - 19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 공청회에서 그린피스 회원들(앞쪽)이 ‘RE(Renewable Energy·재생에너지) 100 이행’이란 현수막을 들고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지지했다. 반면, 경북 울진 주민(뒷줄) 등은 ‘신한울 건설 재개’ 구호가 적힌 옷을 입고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주장했다. /연합뉴스
"정부의 탈원전 정책 때문에 저희뿐만 아니라 480여 개 협력사 모두 어렵습니다. 장비 팔아서 직원들 월급 주는 형편입니다."
19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3차 에너지기본계획 공청회에 참석한 두산중공업의 한 직원은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고 있는지 (정부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공청회는 정부의 탈원전 등 에너지 정책을 비판하는 성토장이었다. 울진 주민들은 '신한울 (원전) 건설 재개' 문구가 적힌 옷을 입고 나와 구호를 외쳤다. 패널 토론 때는 일부 참석자가 "산업부랑 교수랑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탈원전 마피아 주최로 졸속 추진하는 3차 에너지기본계획에 반대한다"고 고함치는 바람에 공청회가 잠시 중단됐다. "정권은 언젠가 바뀌니 공무원들이 감옥 갈 각오하고 정책을 추진하라"는 지적에는 박수가 나오기도 했다. 한 참석자는 "대통령이 바뀐다고 하루아침에 에너지 정책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게 말이 되느냐"고 따지기도 했다.
◇탈원전 정책 성토장 된 공청회
공청회가 끝난 뒤 원자력정책연대, 사실과 과학, 행동하는 자유시민,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범국민 서명 운동본부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장유덕 울진군의회 부의장은 "3차 에너지기본계획 공청회가 대통령 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행정적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며 "산업부는 이해관계자 의견을 수렴했다고 하지만 원전업계는 물론, 지역 주민 의견을 물어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강창호 원자력정책연대 법리분과위원장은 "대통령 공약보다 법이 우선 돼야 하는 것 아니냐"며 "나중에 정권이 바뀌고 원전 정책이 바뀌면 그때는 어떻게 되느냐"고 했다. 이들은 탈원전 등 에너지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원자력정책연대는 탈원전 정책에 대한 취소 소송과 헌법 소원을 내겠다고 했다.
공청회에 참석한 최연혜 자유한국당 의원은 "미세 먼지 해결엔 원전이 가장 좋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는데 가스와 태양광으로만 대처하려 한다"고 말했다.
◇재생에너지 비중, 7%→35%로
정부는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40년까지 30~35%로 확대하기로 했다. 지난 2월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전문가 태스크포스'(TF)가 권고한 수치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과도한 목표라는 지적에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전망한 2040년 전 세계 평균 재생에너지 비중이 40%라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확대 계획에 대해 "비현실적인 희망 사항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IEA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40%는 수력발전을 제외하면 24%에 그친다. 현재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7% 수준이라고 하지만 태양광·풍력만 보면 1.6%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부생가스·바이오·폐기물이다. 3차 에너지기본계획 연구 용역을 맡은 임재규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재생에너지 비중 30~35%가 가능하다고 100% 단정 짓지는 못한다. 도전적인 목표"라고 했다.
◇5년 만에 확 바뀐 '에너지 백년대계'
전문가들은 에너지 정책의 최상위 계획인 에너지기본계획은 에너지 안보, 경제성, 환경성 측면이 모두 고려된 장기 정책이 돼야 하는데도 이에 대한 비전은 없고, 재생에너지 확대 계획만 늘어놨다고 비판했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대선 때 정해진 탈원전 정책을 '절대선(善)' '불가침' 영역으로 정해놓은 것일 뿐"이라며 "탈원전이라는 꼬리가 에너지 정책 몸통을 뒤흔드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탈원전 비판을 피하기 위해 원전에 대해선 최대한 언급을 않았다"며 "원전 발전 비중도 제시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2040년까지 수요 관리를 통해 최종에너지 소비량을 2017년 수준으로 절감하겠다는 목표도 현실을 무시한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2040년 산업부문 에너지 소비를 전망치보다 20% 줄이겠다는 목표에 대해 철강업계 관계자는 "공장 문 닫고 해외로 나가라는 것이냐. 탈원전·재생에너지 확대에 맞추려 에너지 수요를 억제하려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공청회 패널로 나온 김녹영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원 실장은 "우리나라는 에너지 다(多)소비 산업 구조를 갖춘 데다 최근엔 이상기후 때문에 에너지 소비는 더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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